2시간짜리 영화, 1시간짜리 드라마를 만들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들어갈까요. 관객들이 작품을 감상하는 시간에도 스태프들은 밤낮없이 누구보다 바쁘게 움직여야 했습니다. 하지만 표준근로가 도입되면서 이들에게도 '퇴근 시간'이라는 게 생겼습니다. 하지만 왠지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습니다. 과도기인 만큼 부작용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남들 일할 때 일하고 쉴 때 쉬는 게 왜 이들에겐 이토록 힘든 일인 걸까요. <더팩트>가 스크린, 브라운관 뒤에서 묵묵히 일하는 이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편집자주>
방송 분야도 이제 주 52시간
[더팩트|문수연 기자] 지난 2016년 TV 드라마 조연출이었던 이한빛 PD가 열악한 방송 제작 환경을 고발하며 세상을 떠났다. 이후 방송 스태프들의 근로 조건 개선에 대한 문제점이 대두됐고 스태프들이 하나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드라마 제작 현장에서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할 수 있게 됐다.
방송 분야 표준계약서 사용 지침은 2017년 관계부처가 발표한 '방송프로그램 외주제작 시장 불공정관행 개선 종합대책' 후속 조치의 하나다.
근로시간‧휴가 조항에서는 '근로기준법에 따른 근로시간(1주간 40시간, 상호 합의 시 연장 근로 12시간 포함) 준수'를 명시해야 한다. 대기 시간과 제작을 위해 이동하는 시간도 포함됐다. 연장 근로를 할 경우에는 스태프의 휴게 시간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
하지만 방송가에서는 근로기준법을 지키지 않고 있는 현장이 존재하고 있다. 최근 드라마 중에서는 tvN '아스달 연대기', SBS '황후의 품격', KBS2 '최고의 이혼' 등이 근로기준법 미준수로 고발당했다. 그러나 이전과 비교하면 최근 몇 년 사이 변화의 움직임이 시작된 건 분명하다.
현재 드라마 현장에 일하고 있는 스태프 A씨는 "최근 몇 년 사이에 많은 것들이 변했다. 제가 영화를 하다 처음 드라마를 시작할 때는 주변에서 모든 사람이 만류했다. 금전적인 것은 물론 처우도 안 좋다는 이유에서였다"라며 "실제로 해보니 드라마 현장은 9~10일 연속 촬영, 하루 20시간 촬영 등의 풍토가 만연해 있었다. 당시 영화 쪽은 표준근로법이라는 법적 가이드가 완성돼 있었고 실제로도 지켜지고 있었지만 드라마 현장은 달랐다. 하지만 지난해부터는 변화하고 있다는 게 체감된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갑을관계에서 스태프들은 '을'이다. '을'들이 일어나서 부당하다고 얘기하고 개선되면 좋지만 여태껏 분위기가 그렇지 못했다. 법적으로 효력이 생기고 제도가 밑받침돼야 목소리를 내는 것도 가능한 거다. 그런데 법적으로 개선되면서 제작사 대표, 연출 등 '갑'들이 눈치를 보고 의식하기 시작했고, 이후 분위기가 정말 많이 바뀌었다. 영화 현장만큼은 아니지만 지금은 예전과 달리 의식은 하고 있는 상황이다"라고 설명했다.
근로 시간 단축이 업계 특성을 무시하고 일괄적으로 시행되면서 오히려 제작환경이 열악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내다봤을 때 스태프들은 일단 반기는 분위기다. 다만 현재 과도기를 겪고 있는 만큼 체감상 변화는 미비했지만 제작사, 연출, 스태프 등 모든 이들이 근로 시간을 지키고자 하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실제로 현장은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A 씨는 그 예로 숙박을 들며 "PD는 '주어진 제작비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하느냐'로 역량을 평가받는다. 그래서 PD들은 기본적으로 아끼려고 한다. 그 안에서 개인의 성향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거다. 예전에는 제작비 절감을 위해 스태프들이 찜질방에 가서 자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고 전했다.
그러나 드라마는 영화와 달리 문화가 정착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현장 스태프들은 근본적인 이유로 '사전 제작'을 꼽았다. A 씨는 "제작사에서 드라마를 만들 때 지킬 거 다 지키면서 찍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한데 시간은 돈으로 살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주어진 시간 안에서 노동력을 쥐어짜 내서 찍는 거다.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사전 제작이 이뤄져야 하는데 문제는 그동안 사전 제작 드라마가 성적이 좋지 않았던 선례도 많았고, 흥행 보장이 되지 않아서 힘들다는 거다. 하지만 법적인 가이드가 생기면서 그걸 지키기 위해서라도 사전 제작을 하려는 분위기가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얼핏 보기에는 제작사가 드라마 제작 환경을 가장 저해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제작사의 고충도 상당했다. 제작사 관계자 B씨는 "제작사도 한계가 있다. 스태프, 배우 컨디션 고려하면서 제작하려면 몇 달이고 촬영해야 한다. 하지만 드라마는 방송 일자가 정해져 있어서 빨리 진행할 수밖에 없다. 제작사 입장에서 제작비는 줄어드는데 스태프 인건비는 높아지면 힘든 구조인 건 사실이다"라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제작일수가 늘어나면 비용과 시간 문제가 가장 크다. 장소 섭외도 다시 해야 하고 배우, 스태프들과 스케줄 조율도 해야 한다. 일수가 늘어나는 만큼 식비도 더 들고 기타 등등 추가로 들어가는 비용이 꽤 상당하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B 씨는 법적 제도가 생긴 만큼 그 안에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기 위해 제작사, 방송사가 연출, 스태프와 많은 논의를 하고 있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달라진 촬영 환경에 배우의 입장은 어떨까. 현재 활발히 활동 중인 한 배우의 매니저 C 씨는 "촬영 시간이 예전보다는 많이 짧아졌다. 예전에는 끝나는 시간 없이 주야장천 촬영했는데 요즘은 근로기준법을 지켜야 한다. 그래서 아침 신이면 밤부터 시작하는 식으로 바뀌었다"며 "무리하게 촬영하지 않아서 대기시간도 줄었다. 밤을 새우지 않으니 배우 컨디션도 좋아졌다"고 변화를 반겼다.
영상 분야에서도 가장 열악한 환경으로 꼽히는 방송가도 이제 변하고 있다. 관행으로 굳어진 만큼 한 번에 바뀌긴 힘들겠지만 의식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개선된 환경에서 좀 더 완성도 높은 작품이 탄생할 날은 이른 시일 내에 다가올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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