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일홍의 스페셜인터뷰㊻-임하룡] "다이아몬드 스텝 밟다 평생 발목 장애"

영원한 젊은 오빠. 임하룡은 젊은 오빠 이미지도 좋지만 마음씨 좋은 이웃집 아저씨 캐릭터만이라도 잘 살리겠다고 말했다. /이새롬 기자

늦깎이 '평생 연기자' 꿈꾸는 '젊은 오빠' 감초 인생

[더팩트|강일홍 기자] 까만 교복에 삐딱하게 쓴 모자, 빨간 양말을 신고 신나게 다이아몬드 스텝을 밟던 임하룡(66)은 예순 중반의 나이가 된 지금도 여전히 불량기 충만한 청춘 캐릭터가 익숙하다. 20년째 개그맨 아닌 배우로 활동 중이지만 그를 따라다니는 이미지는 여전히 흔들흔들 춤을 추는 '영원한 젊은 오빠'다.

중장년 시청자들이라면 90년대 중반까지 '헐랭이' '쉰옥수수' 등의 별칭으로 불리며 TV를 주름잡던 임하룡을 잊을 수 없다. 당시 심형래 최양락 등과 함께 예능스타로 군림했던 이들을 취재하기 위해 매주 한 두 차례씩 KBS 별관 희극인실을 찾았던 필자에게도 그의 좌충우돌 익살유머는 선연히 각인돼 있다.

대학시절 연극무대까지 거슬러가면 임하룡은 어느덧 연기인생 40년을 훌쩍 넘긴 베테랑이다. 그럼에도 연기만큼은 늘 신인의 자세로 매달리는 노력파로 정평이 나 있다. 그는 "지금도 카메라 앞에만 서면 간이 바짝 쫄아드는 느낌"이라면서 "나만 그런 건지 연기는 왜 하면 할수록 어려운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임하룡은 최근 종영한 OCN 16부작 드라마 '구해줘2'에서 마을 이장 역을 연기해 또 한 번 맛깔스런 감초연기로 각광을 받았다. 평생 연기자의 꿈을 실현하고 있는 임하룡을 직접 만났다. 스페셜 인터뷰는 지난 5일 서울 강남 신사동 카페 애술린라운지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센 이미지, 기회가 주어진다면 범죄 스릴러의 악역을 해보고 싶네요. 임하룡의 스페셜인터뷰는 지난 5일 서울 강남 신사동 카페 애술린라운지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이새롬 기자

-최근 종영한 드라마 '구해줘2'는 오랜만에 출연한 드라마다. 한동안 뜸했는데 얼마만인가?

그렇게 느끼는 데는 아마도 영화 공백이 좀 길어서일 거예요. 2015년 개봉된 '장수상회' 이후 4년째 쉬고 있거든요. 그래도 드라마는 1년에 한 두 작품씩 꾸준히 했는데 제가 주목을 받지 못했나요? 지난해 '계룡선녀전'을 했고, '욱씨남정기' '또 오해영' '브라보 마이라이브' '시간이 멈추는 그때' 등에도 출연했어요. 저한테는 모든 작품이 다 소중하고 의미가 있지만 이번 '구해줘2'에는 특별한 추억이 깃들었어요. 잊지 못할 작품으로 오래오래 기억 될 것 같네요.

지난달 27일 종영된 OCN 수목드라마 '구해줘2'에서 임하룡은 극 중 마을이장 박덕호 역을 연기했다. 동네 일에 누구보다 앞장서고 나보다 이웃의 민원을 먼저 해결하려는 열정 넘치는 인물이다. 맛깔스런 감초연기로 박덕호 캐릭터가 갖고 있는 복합적인 감정을 고스란히 시청자들에게 전달해 드라마의 몰입도를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날 인터뷰 자리에는 영화감독 출신 이권 PD가 함께해 "임하룡 씨 같은 멋진 연기자분들과 작품에 매달려 지내는 동안 너무 행복했다"고 거들었다.

-오랫동안 예능 이미지가 굳은 개그맨 출신 배우인데 진지한 캐릭터의 연기자로 다시 인정받는다는 게 어렵지 않나.

정곡을 바로 찌르시네요. 20년 넘게 배우로 활동하면서 섭외를 받을 때마다 실감하는 게 바로 그거예요. 코믹한 이미지를 벗고 진지한 모습으로 탈바꿈하고 싶은데 매번 희망사항에 그치는거죠. 물론 연기를 할 수 있는 지금 상황만으로도 너무 행복하고 감사한 일이지만 여러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죠. 행여 기회가 주어진다면 무시무시한 범죄 스릴러의 악역을 해보려고요.

임하룡은 이미지 변신을 위해 한때 TV 예능 프로그램을 포기한 적이 있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다 둘 다 잃는 상황이 우려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임하룡은 또 "연기를 해보니 감성적 몰입도가 매우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면서 "관객 입장에서도 배우 이미지가 극중 배역과 매칭 되지 않으면 아무래도 어색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인생작은 2005년 개봉된 영화 웰컴투 동막골. 임하룡은 순박한 인민군 하사 역으로 출연한 이 작품으로 그해 청룡영화제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이새롬 기자

-그동안 30여편의 영화에 출연한 걸로 알고 있다. 배우로서 관객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자신의 영화는?

아무래도 '웰컴투 동막골'을 먼저 꼽아야죠. '배우 임하룡' 하면 관객들이 먼저 기억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어요. 배우로 방향을 튼 이후 저한테는 사실상 인생작이니까요. 또 장진 감독의 유쾌한 상상영화로 주목받았던 '굿모닝 프레지던트'에는 이순재 고두심 장동건 한채영 등과 출연했어요. 저는 고두심 씨 남편 역할을 맡았는데 관객(255만) 반응도 좋았지만 배우로서 모처럼 기쁨과 보람을 함께 느꼈던 작품이었죠. 김하늘 강동원이 귀여운 사기꾼과 순박한 시골청년으로 등장한 '그녀를 믿지 마세요'도 꼭 기억해둘만한 작품이에요.

임하룡에게 배우로 깊이 각인된 작품은 2005년 개봉된 영화 '웰컴투 동막골'이다. 당시 그는 동명작품 연극에 출연한 뒤 배우 신하균과 나란히 영화에도 연달아 캐스팅 됐다. 앞서 그는 99년 영화 '얼굴'에 출연하며 본격적으로 스크린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영화 '그녀를 믿지 마세요' '범죄의 재구성' 등의 단역을 거쳐 '웰컴투 동막골'에서 순박한 인민군 하사 역으로 출연했다. 이 작품은 8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고, 그해 임하룡은 청룡영화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작품 안에서는 이웃집 아저씨 같은 호감 이미지가 매력인데 아직도 '젊은 오빠'란 호칭이 낯설지 않다. 어느 쪽이 더 마음에 드는가.

마음이야 늘 이팔청춘이죠. 50대 나이 때만 해도 '쉰 옥수수'란 별명이 싫었는데 예순 중반을 넘긴 지금은 그런 호칭조차 정겹게 느껴져요. 이제는 '젊은 오빠'라고 불러주면 너무 고마워서 손이라도 덥석 잡아주고 싶어집니다. 작은 배역이든 큰 역할이든 작품 속에 등장하는 제 모습이 바로 팬들에게 비치는 이미지 잖아요. 욕심 같아서야 '영원한 젊은 오빠'로 계속 남고 싶지만 '마음씨 좋은 이웃집 아저씨' 캐릭터만이라도 잘 지키고 보존해야죠.

임하룡(원안, 왼쪽에서 두번째)은 지난달 27일 종영된 OCN 수목드라마 구해줘2에서 극 중 마을이장 박덕호 역을 연기했다. 사진은 지난 5월 드라마 방영 직전 제작발표회 당시. /이동률 기자

-발목 관절이 악화된 이유가 젊은 시절 춤을 너무 많이 춰서 생긴 후유증이라고 하는데 무슨 얘기인가.

나이 들면 무릎 관절이 안 좋다는 분들이 많잖아요. 전 무릎은 아직 멀쩡한데 발목관절이 시원찮습니다. 춤을 많이 춰서 그래요.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틈만나면 발목을 좌우로 꺾는 개다리 춤(트위스트)을 많이 췄거든요. 그땐 그게 제 삶의 일부였고, 남들보다 잘한다는 칭찬을 들으니 틈만 나면 흔들어댔어요. 개그맨으로 잘 나갈 때는 '트위스트'가 야간업소 주 레퍼토리였고요.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그 시절 입으로 병뚜껑을 잘 따던 친구들은 벌써 틀니에 의존하고, 발목을 많이 쓴 저는 오직 걷기 운동만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임하룡은 심형래 최양락 故 김형곤 등과 함께 '7080 코미디 4대천왕'으로 군림했다. 각자의 영역에서 활동하면서도 슬랩스틱 개인기나 애드리브보다는 유일하게 연극무대에서 다진 탄탄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재미를 뒷받침해온 맏형이다. 뭐니뭐니 해도 그의 주특기는 춤이다. 개그 전성기에는 툭하면 다이아몬드 춤을 춰 무대를 휩쓸었다. '추억의 책가방'이나 '내 청춘을 돌려다오' '귀곡산장' 같은 코너에서 비친 '젊은 오빠' 캐릭터는 바로 이 춤과 관련이 있다.

-연예계 '부자(父子) 연기자'의 길을 걷고 있다. 선배로서 아버지로서 조언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저는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해주신 말씀 중에 '항상 자중자애 하라'는 얘기를 가슴에 새기며 살았어요. 내 주장보다는 주위 분들 말을 더 귀담아 듣고 매사 신중하게 행동하라는 것인데요. 그래서 때로 소심하다는 말을 듣기도 하지만, 얼굴이 알려져 늘 평판이 따라다니게 되는 연예인으로 살아가려면 이 말은 꼭 새겨야할 금과옥조라고 믿어요. 아들한테는 굳이 강요할 생각이 없지만 아마 때가 되면 스스로 터득하게 되겠죠. 다행스럽게도 아들의 심성이 제 기대치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은 것 같더라고요.

임하룡의 외아들 임영식은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했다. 아버지와 같은과 동문이다(임하룡은 군복무 후 복학하지 않아 제적당한 뒤 97년 명예졸업장을 받았다). 영화 '포화 속으로' '기술자들' '살인자의 기억법' 등에 출연했고, 최근엔 MBC 드라마 '아이템'에 열혈 형사 정진만 역을 연기했다. 그룹 소리얼 출신 류필립 등과 4인조 감성 보컬그룹 '엄브렐라'를 결성해 음악활동도 병행 중이다. '엄브렐라'는 배우 조현재, 추상미, 가수 채은정 등이 소속된 웰스엔터테인먼트가 야심 차게 기획 중인 그룹으로, 오는 6월 첫 싱글 발매를 목표로 하고 있다.

임하룡은 최근 종영한 OCN 16부작 드라마 구해줘2에서 마을 이장 역을 연기해 또한번 맛깔스런 감초연기로 각광을 받았다. 인터뷰 자리에 잠시 합석한 구해줘2의 이권 PD(오른쪽)가 웃고 있다. /이새롬 기자

-연기나 가수활동을 하면서 예술적 감각을 발휘하는 연예인들이 많은데 요즘 미술과 회화에 심취해 있다고 들었다.

사실 제 원래 꿈은 화가였어요. 연예계에 진출한 이후론 하도 정신없이 살다 보니 감히 실행하지 못했을 뿐이죠. 학창 시절 미술반에서 그림을 그리며 예술적 감성을 키운 게 큰 도움이 됐어요. 스케치같은 습작을 주로 해오다 도구나 물감 사용법 등 뒤늦게 체계적인 회화공부를 했는데 스케줄이 없을 때는 동호인 화실에서 하루 3~4시간씩 작품활동을 해요. 제 그림은 주로 아크릴화이고 완성 작품만 현재 50점 가량 됩니다.

임하룡은 최근 동료배우 김애경과 함께 살롱 앙데팡당전(Salon des Independants)에 참가해 눈길을 끌었다. 앙데팡당전은 135년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권위의 프랑스 유명전시회다. 한국을 넘어 '아시아 최초'라는 큰 의미를 가진 이번 전시회에는 프랑스 앙데팡당 회원들의 작품 10여 점을 포함해 총 250여 점이 출품됐다. 임하룡은 "세계적으로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는 곳에 참가한 것만으로도 영광"이라면서 "9월 중엔 인사동 토포하우스에서 첫 개인전을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에 '젤로'라는 이색 바를 운영하고 있는데 연예인들 사이에 어느덧 명소로 소문이 났다. 어떤 콘셉트인지 궁금하다.

일반 레스토랑과는 개념이 좀 달라요. 주로 지인들이 많이 오기 때문에 수익보다는 친목을 다지는 의미가 크죠. 누구라도 편하게 와서 차나 맥주를 마시며 유쾌한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저도 부담이 없고요. 처음엔 활동이 뜸한 가수들이 즉석 공연을 했는데 호응이 좋아 매주 수요일마다 고정 무대를 만들게 됐죠. 왕년의 인기가수가 등장해 추억의 히트곡을 부르거나, 실력있는 신인들이 신곡을 소개하는 무대로도 활용하고 있어요.

임하룡은 90년대 초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주택을 마련했다. 당시 목동에 살고 있던 그는 이 주택을 개조해 전업주부인 아내 김정규 씨에게 작은 레스토랑을 차려줄 셈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수년 뒤 주변상권이 확대되자 주택을 허물고 6층짜리 건물(지상5+지하1)로 지었다. 맨 위층엔 생활공간으로, 그리고 지하 1층에 평소 소망하던 카페 형태의 쉼터 겸 음악공간을 만들었다. 주로 신인가수들 중심으로 무대에 서지만, 박상민 김장훈 김혜림 이규석 홍경민 장은숙 등 수많은 유명 가수들이 찬조출연하면서 이색 명소가 됐다.

아, 쑥쓰럽구만, 바로 이런 춤을 추다가 발목에 장애 생겼다니까요. 임하룡이 자신의 유명한 다이아몬드 춤을 춰보이고 있다. /이새롬 기자

임하룡의 인간적 매력은 늘 상대를 먼저 배려하고 챙기는 이타심이다. 여기엔 천성적으로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품이 한몫을 하지만 배우로든 예능인으로든 누구라도 만나면 격의없는 친구처럼 대한다. 연예계 애경사에 자주 등장하는 연예인 중 한명으로 꼽히게 된 것도 이런 평소 스타일이 바닥에 깔려 있다.

그의 인품을 가늠해볼 만한 일화는 많다. KBS 희극인실 출신 후배 방송인 박수홍은 필자에게 "데뷔 직후 감자골 4인방 영구제명 사건으로 모든 선배들이 등을 돌리는 상황에서 유일하게 임하룡 선배님만 '어린애들도 아닌데 왜 이렇게 마녀사냥 하듯 몰아세우느냐'고 적극 변호를 했다"고 말했다. 행여 자신이 감수해야할 불이익보다는 후배사랑이 먼저였던 셈이다.

임하룡은 예능인에서 배우로 변신한 뒤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한 늦깎이 조연배우다. 그는 "배우라면 누구라도 주인공을 하고 싶은 소망을 갖고 있지만, 크고 작은 역할에 굳이 목을 매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평생 연기자의 꿈을 잃지 않으면 조연이라도 주인공보다 더 빛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타고난 재간둥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오락부장을 맡는 등 일찌감치 끼를 발휘하다 데뷔 후 개그계 '국민오빠'로 등극했다. 7080 개그세대의 교체기에도 임하룡은 후배들의 두터운 지지에 힘입어 '개그콘서트' 초창기 '봉숭아학당' 부활의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 감초연기자로 누구보다 행복한 '덤의 인생'을 살고 있다는 그는 인터뷰 말미에 "욕심없는 삶을 완벽하게 실천하는 게 마지막 소망"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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