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되지 않은 스타는 어떤 모습일까. 요즘 연예계는 스타도 많고, 연예 매체도 많다. 모처럼 연예인 인터뷰가 잡혀도 단독으로 하는 경우도 드물다. 다수의 매체 기자가 함께 인터뷰를 하다 보니 대부분의 내용이 비슷하다. 심지어 사진이나 영상도 소속사에서 미리 만들어 배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더팩트>는 순수하게 기자의 눈에 비친 그대로의 스타를 '내가 본 OOO' 포맷에 담아 사실 그대로 전달한다. <편집자 주>
'닥터 프리즈너'로 다시 한번 연기력 증명한 남궁민
[더팩트|문수연 기자] KBS2 드라마 '김과장' 종영 인터뷰 후 2년 만에 배우 남궁민을 다시 만났다. SBS 드라마 '리멤버-아들의 전쟁', '미녀 공심이'로 입지를 다지던 그는 당시 '김과장'으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배우 인생의 2막을 다시 시작하는 만큼 앞날에 대한 고민이 많아 보이던 그의 말이 떠올랐다. "다음 작품을 꼭 전성기로 만들고 싶다"는 각오였다. 그리고 2년 만에 만난 그는 이미 바람을 이룬 모습이었다.
21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한 카페에서 KBS2 드라마 '닥터 프리즈너'(극본 박계옥, 연출 황인혁)에 나이제 역으로 출연한 남궁민을 만났다. 이번 작품을 통해 '원톱 배우'로 확실히 자리매김한 남궁민은 들뜨지는 않은, 하지만 한층 여유로워진 모습으로 웃으며 등장해 작품과 배우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닥터 프리즈너'로 호평을 받았는데 저는 제가 앞으로 원톱으로 갈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해 생각해보고 이 작품을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극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인 만큼 제 연기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작품이 잘되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사실 드라마를 하다 보면 내부적으로 힘든 점이 많거든요. 대본이나 촬영이 호락호락하지 않죠. 그런 부분에 대해 조율하면서 다른 배우들과도 조화롭게 드라마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닥터 프리즈너'는 남궁민이 엄청난 작정을 하고 시작한 작품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에게 '꼭 하고 싶은 작품'인 건 분명했다. 내부적인 사정으로 촬영이 지연돼 대본을 받은 후 반년이 지나서야 첫 촬영을 시작했지만 그는 다른 작품을 미루고 '닥터 프리즈너'를 기다렸다. 그는 '닥터 프리즈너'를 "실패하더라도 감당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작품"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남궁민의 이러한 선택은 옳았다. 연기 호평은 물론 좋은 성적까지 기록했기 때문이다.
"작품을 오래 기다린 만큼 '이 작품이 괜찮을까' 걱정도 많이 했어요. 드라마가 잘 되지 않으면 아무리 그 안에서 열심히 해도 연기가 빛나지 않고 묻히거든요. 또 제가 돈을 받고 연기하는 상업 연기자인데 시청률을 상관하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시청률에 대한 부담도 어느 정도 있었는데 잘 나와서 다행이에요."
"이번 작품을 하면서 피드백을 못 받고 촬영할 때는 사실 자존감이 바닥에 떨어졌어요. 대사 한 마디도 마음에 안 들더라고요. 저 자신을 괴롭혔던 것 같아요. 그런데 연기라는 건 아무리 죽을 때까지 해도 완벽할 수 없거든요. 그걸 인정하는 순간 노력할 수 있는 계기가 되더라고요. 저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연기적으로 채우려고 했어요."남궁민은 '닥터 프리즈너'에서 '다크 히어로' 역할을 제대로 소화해내면서 찬사를 받았다. 과하지 않은 절제된 연기가 특히 돋보였다. 인터뷰 중 한 기자는 남궁민에게 "함께 작업을 했던 한 PD가 '남궁민은 인물의 감정을 절제하면서 풍부하게 드러내는 재주가 있다'고 하더라"라고 전했다. 기자를 통해 전해 듣는 칭찬에 남궁민의 얼굴은 금세 화색이 됐다. 그는 "칭찬은 많이 들었지만 이렇게 디테일하게 표현해주시다니. 제가 오늘 힘이 좀 없었는데 화이팅 해서 인터뷰해야겠다"며 자세를 고쳐 앉은 후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시청자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치열하게 자신과 싸웠기에 남궁민의 연기는 호평을 끌어낼 수 있었다. 극 중 "이 구역의 왕은 나"라는 나이제의 대사처럼 시청자들은 "드라마 구역의 왕은 남궁민"이라며 극찬했다. 남궁민은 칭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건 절대 안 된다"고 손사래를 쳤다.
"저는 제 연기가 누구보다 잘하고 못하고를 논할 수도 없을 정도로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배우 본인이 역할을 잘 소화하고 연출, 대본과 잘 맞았을 때 좋은 연기가 나오는 거잖아요. 그게 자기 힘만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저는 이 구역의 꼴등도 없고 왕도 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아직 멀었죠. 그리고 저는 비교 대상을 정하지는 않거든요. 제가 느끼는 부족함은 저 자신을 바라볼 때 느끼는 거거든요. 저 자신을 만족시키는 게 너무 어려워요. 그래도 계속 스트레스받으면서 연구하다 보면 좀 더 발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남궁민이 이렇게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만족을 모르는 욕심과 꾸준한 노력이 아닐까 싶었다. 대중도 후배 배우들도 그의 연기에 대해서는 입을 모아 감탄하지만 남궁민은 신인 시절을 떠올리며 "제가 처음 일 시작했을 때는 정말 연기를 못했다"고 혀를 내둘렀다.
"후배들이 저한테 '어떻게 하면 연기 잘하냐'고 물어보면 저는 '네가 나 연기 시작했을 때부터 했으면 나보다 다섯배는 잘할걸. 계속 노력하면 돼'라고 해요. 저 연기 정말 못해서 촬영장에서 쌍욕 많이 들었거든요. (웃음) 제가 연기한 지 20년 됐는데 25살 때는 촬영장에서 인간 이하의 대우도 많이 받았어요. 꿋꿋하게 '죄송합니다'라고 하면 씩씩하니까 더 욕을 많이 하더라고요. 그런데도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누가 연기를 시켜서가 아니라 제가 좋아하고 사랑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연기에 대한 남궁민의 목마름은 앞으로도 채워지지 않을 것 같아 보였다. '김과장' 인터뷰 때처럼 아직도 그는 "다음 작품에서 전성기를 맞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 그에게 "그래도 배우로서 본인의 위치에 대해 자평해 달라"는 질문을 하자 남궁민은 "객관적으로 보면 작품이 많이 들어오긴 한다. 남부럽지 않다. 이제는 작품이 저한테 먼저 오고 그다음에 감독님이 정해진다"고 답했다. 그러다 아차 싶었는지 그는 "그런데 그런 걸 생각하면서 살아본 적은 없다. 기사로 쓰면 저는 그냥 그런 놈이 될 수도 있으니 설명을 잘해 달라"며 능청스럽게 웃었다.
벌써 20년 차 배우가 된 남궁민은 오랜 시간 연기를 해온 만큼 매너리즘에 빠질 때도 있다고 털어놨다. 그럴 때마다 자신이 했던 작품들을 쭉 돌려본다는 그는 "그래도 여러 변주 속에서 잘해온 것 같다. 내가 타고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노력 속에서 변해왔구나 싶어서 만족한다"고 말했다. 이어 "저의 부족함을 알면서 10년, 20년 계속 자만심에 빠지지 않고 연기를 해간다면 지금보다 더 좋은 연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도 작품을 할 때마다 늘 한결같이 노력 중이었다. 일상 또한 연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평소에도 어떠한 행동을 할 때 자신이 불편한지를 파악해가며 깨달은 것들을 틈틈이 메모하고 연구했다. '닥터 프리즈너'를 찍는 동안 적은 메모만 150개에 달한다며 휴대폰을 꺼내 메모장을 보여주던 남궁민은 "'내가 알아낸 것 종합'이라고 쓴 것도 있다. 내 나름대로 보기 쉽게 기사 제목을 만들었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자신에게 엄격한 남궁민의 모습이 누군가에게는 힘들어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는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다. 연기를 해야 행복하고 그렇지 않을 때 불행하다는 남궁민은 "연기가 가끔 꼴도 보기 싫지만 이거 없이는 못 살겠다"며 "연기는 제게 행복을 주는 요소다. 연기를 안 하면 할 일도 없고 제 첫 직업이라 할 수 있는 것도 이것밖에 없다. 앞으로 흥행하는 작품만 하는 게 아니라 제가 대본을 보고 도전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면 여러 장르에 도전해보고 싶다. 기계도 기름칠을 안 하면 고장 나듯이 저도 계속 기름칠하고 담금질하며 작품을 하고 싶다"고 바람을 드러냈다.
munsuyeon@tf.co.kr
[연예기획팀 | ssent@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