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되지 않은 스타는 어떤 모습일까. 요즘 연예계는 스타도 많고, 연예 매체도 많다. 모처럼 연예인 인터뷰가 잡혀도 단독으로 하는 경우도 드물다. 다수의 매체 기자가 함께 인터뷰를 하다 보니 대부분의 내용이 비슷하다. 심지어 사진이나 영상도 소속사에서 미리 만들어 배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더팩트>는 순수하게 기자의 눈에 비친 그대로의 스타를 '내가 본 OOO' 포맷에 담아 사실 그대로 전달한다. <편집자 주>
판사 김준겸 役을 연기한 배우 문소리
[더팩트|종로=박슬기 기자] 흰 셔츠에 화장기 없는 얼굴. 그 모습만으로도 배우 문소리(45)의 가식 없는 성격이 잘 드러난다. 어떤 질문에도 거침없이 답을 한다. 덕분에 인터뷰는 시종일관 유쾌한 분위기다. "일을 할 때든, 아닐 때든 무조건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털어놨다.
8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문소리를 만났다. 그는 "오늘 인터뷰 자리 구도가 마치 재판장 같은 느낌이 든다"며 말문을 열었다. 15일 개봉한 영화 '배심원들'에서 문소리는 강한 신념과 법과 원칙에 따라 판결하는 판사 김준겸 역을 맡았다. 작품에 제일 먼저 캐스팅된 그는 판사 역을 위해 꽤 오랜 기간 준비했다.
"판사 역은 준비할 게 꽤 많아서 재밌더라고요. 여러 판사분들을 만나서 많이 묻고 연구했죠. 하지만 '판사처럼 보이고 싶다'가 아니라 관객이 저를 봤을 때 '판사다'라고 느꼈으면 했어요. 그래서 한동안은 법조계 종사하는 사람인 것처럼 법조계 뉴스를 다 살피고, 활자 중독자 수준으로 활자를 읽었어요. 종이를 넘기면서 글 읽는 모습마저 자연스러워하니까요."
오랜 시간 준비한 만큼 극 중 문소리는 목소리 톤부터 시선, 외모까지 판사 그 자체다. 그는 "어떤 배우가 판사 연기하는 걸 봤는데 시선 처리 하나만으로 완전한 판사였다"며 "그런 익숙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내면 채우는 연습을 많이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전작 '군산:거위를 노래하다'에서 '자유로운 영혼'인 송현 역을 맡아 배우 박해일과 이뤄질 듯 말듯한 '썸'을 표현했다. 반면 이번 작품에선 흔들림 없고, 대담한 판사 김준겸 역을 맡아 정반대의 매력을 보여줬다.
"확실히 작품할 땐 자유롭고 흔들리는 배역이 재밌긴 해요. 우리가 일상에서 흔들리면서 살 순 없잖아요. 중심을 잡고 살아가야하는데 작품이니까 마음껏 흔들리는 거죠. 그렇다고 김준겸이 재미없었다는 건 아니예요. 각자 나름의 매력이 있죠."
그는 작품 선택 기준으로 감독과 감독이 추구하는 바, 시나리오의 완성도를 먼저 본다고 했다. 문소리는 "감독과 잘 맞고, 그 프로젝트가 좋으면 어떤 배역으로 캐스팅 되든 상관없다. 시켜주는 건 뭐든 한다"며 웃었다.
영화에서 문소리는 판결을 하고, 심판을 한다. 반면 실제 그는 배우로서, 감독으로서 대중의 판단을 받는다. 그에게 "판단을 받는 입장으로서 어떻냐"고 묻자 "반응 하나하나에 신경 쓰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제가 출연한 어떤 작품이든 각자의 운명이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작품은 처음엔 사랑을 받다가 금방 인기가 식고, 어떤 작품은 나중에 회자되기도 하죠. 어떤 작품은 갑자기 해외에서 인기를 끌기도 해요. 저는 그렇게 작품마다 운명이 있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또 재밌게 일을 하는 거죠."
문소리는 인터뷰 내내 "일을 할 때 중요한 건 '재밌게 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그가 20년간 배우 일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인 듯했다.
"과거에는 힘들고 괴로워도 악착같이 참고 일을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일 못 해요. 힘들어도 재미가 있어야 해요. 제가 재미를 찾는 거죠. 이렇게 생각을 바꾸니까 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 같아요. 재밌어요."
문소리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대중의 뇌리에 깊게 박힌 캐릭터가 많다. 그의 데뷔작인 '박하사탕'(1999)은 아직도 회자되는 작품이다. 지고지순한 여성 윤순임 역을 맡은 그는 당시 청초한 모습으로 대중에게 얼굴을 알렸다. 이후 '오아시스'(2002)에서 중증뇌성마비장애인 한공주 역을 맡아 전혀 다른 얼굴로 나타났다. 이듬해 '바람난 가족'(2003)에선 어떤가. 남편을 두고 젊은 남자를 탐한 대담한 아내 호정 역을 맡아 또 한 번 충격을 안겼다. 이처럼 문소리에겐 다양한 얼굴이 있다.
"'강렬한 배역을 해야지' 하는 건 아니에요. 남들이 안 하는 캐릭터에 관심을 갖다 보니까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참 도전이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런 게 재밌더라고요. 제 성향인가 봐요. 선택하고 보면 남들이 하지 않는 걸 하는 것 같아요. 하하."
문소리는 충무로에서도 열정 넘치는 영화인으로 꼽힌다. 그는 2017년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를 통해 감독으로 데뷔했다. 이 작품으로 영화계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감독으로서도 성공적인 데뷔였다. 이처럼 그는 배우와 감독의 영역을 넘나들며 자신의 존재감을 뚜렷히 보여주고 있다. 그는 "감독으로서 특별한 계획이 있는 건 아니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 좋은 이야기들이 쌓이면 언젠가 또 작품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남편 장준환 감독과 작품 계획은 없냐"고 묻자 문소리는 여담이라며 에피소드를 풀어놨다. "남편이 어떤 배우에게 시나리오를 주러간다고 하길래 '저한테는 언제 줄 거예요?'라고 물었어요. 그러니까 자기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작품을 저와 함께 할 거라고 답하더라고요. 순간 굉장히 로맨틱했는데, 생각해보니까 최고의 작품이 언제 나올지 그게 최고의 작품일지 모르는 거잖아요. 저랑 언제 할지 모르겠다는 거죠. 하하하."
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가진 배우 문소리. 그에게 연기란 어떤 의미인지 궁금했다. 그는 "연기는 일이지"라며 웃었다. 그러더니 곧 "제가 재밌고, 좋아해서 하는 일"이라며 "재미가 없어지면 큰 일 나겠지만 재미가 있는 한 제가 계속 할 일"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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