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강일홍 기자] 영화의 성공은 외적 요인을 무시할 수 없다. 아무리 작품성이 뛰어나도 불운이 겹쳐 망하는 일은 부지기수다. 영화는 대표적 경험재 콘텐츠다. 직접 경험해야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재화(財貨)이기 때문이다. 엔터 산업 자체가 고위험군 콘텐츠이긴 하지만 '한방의 기회'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대체로 예측이 가능한 일반재와 다르다. 경험재의 특성상 입소문도 매우 중요한 요소다. 호평이 나면 '나 혼자 뒤처질세라' 겪어보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영화는 특히 드라마와 공연 뮤지컬 등 다른 대중문화 콘텐츠보다도 개봉시기나 경쟁작 여부, 사회적 분위기 등에서 변수가 더 많이 작용하는 편이다. 배급사 개봉일정 조정이나 개봉관 확보 등이 원만하게 진행되는 중에도 돌발변수는 늘 상존한다. 툭하면 주연배우가 사회적 지탄을 받을 논란에 휘말리기도 한다. 제작자들이 오랜 기간 공을 들여 좋은 작품, 만족할 만한 작품을 만들어 두고도 마지막 순간까지 피 말리는 시소게임을 벌이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 '극한직업', 역대 흥행순위 2위-역대 코미디영화 랭킹 1위 '새로운 흥행기록'
영화 '신과 함께2-인과 연'은 2018년 1227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1편 '죄와 벌'(1441만)에 이은 연타석 쌍천만의 기록을 세우며 1000만 관객 작품의 위엄을 굳건히 지켰다. 흥행몰이 이후 하정우 주지훈 등 주역들에 대한 관심 못지 않게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도 제작자로서 주목을 받았다. 이는 전편-후속편 개념이 아닌 시리즈 형태의 국내 첫 흥행작이란 점과 판권 확보 등 철저한 사전기획의 성공이란 점에서 한국 영화계에 또다른 의미와 족적을 아로새겼다.
성공과 실패의 중간을 넘나드는 변수가 많은 만큼 결과도 천양지차다. '신과 함께' 제작자 원동연 대표는 쌍천만 히트를 기록한 뒤 필자와 인터뷰에서 "하루에도 지옥과 천당을 수없이 경험했다"고 말했다. 그는 2011년 9월 개봉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1232만)를 히트시키며 승승장구했지만, 영화 '대립군' 흥행실패로 수십억의 빚을 졌다. 파산 직전에 내몰린 그는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며 '신과 함께'에 사활을 걸었다. 가장 힘들고 절박한 순간에 대박을 치며 부활했다.
"솔직히 말해 '대박'과 '쪽박'을 사이에 두고 죽다 살아났죠. '대립군' 실패 후 영화계를 떠날 수도 있다는 불안함으로 심한 공황장애와 우울증에 시달렸어요. 자다가 숨을 제대로 쉬고 있는지 두려울 정도로 심각해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고요. '광해' '대립군' 등 사극을 제작한 뒤 '역사저널 그날'(KBS1) 패널로 1년간 출연하게 됐는데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건 바로 저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싶었어요. 주변에선 전혀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정말 누구보다 절박했거든요."
◆ 배우 류승룡-이병헌 감독-김성환 제작자, 막다른 골목서 기사회생 '패자 3人'
올해도 영화계의 예상을 뒤엎은 일은 또 있다. 바로 '극한직업'이다. 1월 23일 개봉된 이 작품은 형사들이 마약범 검거를 위해 치킨집을 운영하며 잠복 근무한다는 독특한 설정으로 기대감을 극대화시킨 블랙코미디다. 19일 현재 1476만 관객을 넘고 역대 흥행 2위에 오르는 이변을 일으켰다. 천만 관객을 돌파한 뒤 영화관계자들조차도 놀라워하는 분위기다. 실패를 딛고 일어서면 더 주목을 받게 돼 있다. 영화계에서는 '극한직업'으로 재기한 3인의 '패자부활'을 언급하기도 한다.
이병헌 감독은 2014년 첫 상업영화 '스물'로 인정을 받았다. 앞서 '과속스캔들'(각색)과 '써니'(스크립터& 각색) 등에서 보여준 저력까지 함께 빛났다. 하지만 지난해 '바람바람바람'(119만)으로 쓴맛을 봤다. 관객들은 '극한직업'이 같은 블랙코미디라도 전작인 '스물'보다 객관적 기준에서 못 미치는 대신 'B급 정서'를 낮춰 대중성을 확보했다고 호평하기도 한다. 좋은 평가는 흥행결과가 말해주지만 어쨌든 역대 흥행순위 2위, 역대 코미디영화 랭킹 1위라는 새로운 역사를 썼다.
류승룡과 제작자 김성환도 알고 보면 이번 작품이 '삼세번'을 판가름할 카드였다. 류승룡은 '7번방의 선물'과 '명량' 이후 그닥 내세울 작품이 없는 궁색한 처지였고, 더구나 직전 영화 '염력'은 100만도 못 넘겨 천만 배우의 자존심을 구겼다. 김성환 대표 역시 류승룡과 함께 한 영화 '최종병기 활'(700만)로 흥(興)했다가, '도리화가'(30만)로 망(亡)했다. 영화 흥행에는 왕도가 없다지만, 그래서 막다른 골목에서 기사회생한 '패자 3人'의 부활이 더 도드라져 보이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