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강일홍 기자] 배우 김승현(37)은 지난 연말 '2018 KBS 연예대상'에서 우수상을 탄 뒤 온가족이 함께 부등켜 안고 울었다. '미혼부'(未婚父)라는 꼬리표를 달고 대중의 관심에서 사라져 지낸 지 15년 만의 감격은 이를 지켜본 시청자들한테도 뭉클한 감동을 안겼다.
그는 1997년 신세대를 겨냥한 캐주얼 의류 'STORM' 잡지 모델로 데뷔한 뒤 SBS 시트콤 '행진'(99년), SBS FM '텐텐클럽'(99년), KBS '슈퍼 TV 일요일 일요일은 즐거워'(2002년) 등에 출연하며 그야말로 최고 인기 하이틴 스타로 주목을 받았다.
2003년 그는 한창 승승장구하던 시기에 고교시절 여친과 '철없는 사랑'으로 아빠가 된 사연을 뒤늦게 고백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부모는 동생으로 입적하려고 했지만, 김승현은 부끄러운 아빠가 되지 않기 위해 아이(김수빈)의 존재를 세상에 당당히 밝혔다.
대가는 혹독했다. 청춘스타의 이미지는 추락했고, 그의 존재는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잊혀져 갔다. 옥탑방 생활을 하며 재기를 위한 몸부림의 안타까운 사연이 처음 알려지기까지 무려 15년이나 걸렸다.
이후 아버지 김언중 씨를 비롯한 어머니 백옥자, 동생 김승환, 딸 수빈 양과의 알콩달콩 살아가는 한 가족 모습이 방송을 타면서 그의 존재는 다시 부각됐다. 그가 출연하는 리얼버라이어티 '살림하는 남자들 시즌2'는 시청률 7~8%를 오르내리며 KBS 효자 예능프로그램이 됐다.
데뷔 이후 드라마와 가요 순위 프로그램 인기 MC로 활약하던 모습은 물론 미혼부 사연이 알려진 뒤 기자회견까지 가까이서 지켜본 필자로서는 그의 환한 미소가 누구보다 반가웠다. 그동안의 심경과 속내도 궁금했다. 자연스럽게 이어진 스페셜인터뷰는 지난 7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더팩트> 사옥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우선 축하한다. 지난 연말 '연예대상'에서 상을 받은 뒤 만감이 교차했을 것같다.
네 감사합니다. 너무 많은 분들이 축하해줘서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제가 그동안 인기란 게 거품이란 걸 누구보다 뼈져리게 느끼며 살았잖아요. 두 번 다시 대중의 관심을 받을거라곤 생각을 못했거든요. 저한테는 연예계 데뷔 이후 처음받는 상이고 온 가족이 함께 받은 거라 더 의미가 크죠.
김승현은 대중으로부터 외면 당한 뒤 누구보다 '추락의 아픔'을 고통스럽게 느끼며 살았다. 그는 "무명생활도 거치지 않고 화려한 조명을 많이 받았기에 더 어둡고 혹독했다"고 말했다. 그는 수상소감으로 "가족과 딸이 곁에 있어서 버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어떤 실감나는 변화가 생겼는지 궁금하다. 주변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을법도 하다.
불과 며칠 사이임에도 해가 바뀌면서 크게 달라졌다는 느낌이 들긴 해요. 어떨떨하죠. 다만 걱정스러운 건 부모님들이에요. 저야 인기의 부침을 모두 겪어봐서 괜찮은데 부모님들은 언젠가 관심이 시들해지면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죠. 인기란 그 마력이 짜릿한 만큼 외면당하면 더 아프잖아요. 지금은 저 혼자가 아니라 온 가족이 다함께 주목을 받고 있어서 그 부담이 더 큰 것같아요.
'살림남'에는 2017년 5월 '시즌2'부터 출연했다. 처음엔 딸 수빈양과 둘을 중심으로 미혼부의 일상을 그렸다. 그러다 함께 생활하는 가족들이 자주 등장하고 아버지 김언중 씨와 어머니 백옥자 씨가 스토리의 한 축을 이뤘다. 매니저이기도 한 동생 승환씨도 자연스럽게 가세했다.
-'살림남2'에 출연하는 가족들 중에서도 아버지 김언중씨의 활약이 대단하다. 독특한 캐릭터에 시청자들이 더 호응하는 것같다.
아버지는 원래 말수가 많지 않으셨어요. 방송을 하시면서 변하신 거죠. 처음 몇 번은 카메라를 의식해서인지 "좀 적극적으로 하라"고 간섭하듯이 주문을 했어요. 제가 오랜기간 위축돼 자신감이 없는 모습이 싫으셨던거죠. 그래도 맘에 들지 않으니 당신께서 적극적으로 말씀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스타일이 독특하신 것도 사실이죠. 모두 당신의 세상과 앵글에 맞춰 말씀하시는 편이거든요. 아버지의 분명한 한 가지는 가식이 없다는 거예요.
-평소 아버지와 소통이 잘 되는지 궁금하다. 방송에선 워낙 권위적 스타일이라 실제 가족들과 갈등을 빚지는 않나?
TV를 보신 분들이 그런 질문을 많이 해요. 더구나 제 동생 승환이와 아들만 둘이잖아요. 권위적인 아버지랑 많이 부딪칠거란건데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어려서부터 자식들에 대한 사랑이 유독 남다르셨기 때문에 우리가 다 이해해요. 스타일이 좀 다를 뿐 속마음을 알거든요. 모든 부모님 마음이 다 그러시겠지만 오직 자식 잘되기를 바라는 거니까요.
-'살림남' 가족 스토리는 매우 자연스럽다는 평가다. 부모님이 일반인 출연자라 혹시 촬영하면서 어려움은 없나.
솔직히 말씀드리면 촬영 중 고비가 없었던 건 아니에요. 부모님께서 일반인 초보 방송인이어서 제작진과 갈등이 있었어요. 제작진은 좋은 장면을 찍기 위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주문을 하고, 그래도 맘에 안들 땐 더러 불편한 말을 쏟아낼 때도 있잖아요. 부모님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셔도 그런 상황을 제가 받아들이기 힘들었거든요. 그만 두고 싶었을 때도 있었으니까요. 동고동락하면서 지금은 모두 양해가 돼 괜찮아졌어요.
'살림남'의 인기는 김승현의 부모님이 등장하면서 급상승했다. 보통 가정과 다른 독특한 캐릭터의 가장 김언중 씨가 톡톡히 한몫을 했다. 평소 가족들과 주고받는 스타일이 그대로 비쳐지면서다. 제작진은 "꾸미지 않은 순수함이 시청자 흡인력을 이끌어냈다"고 했다. 하지만 아들 김승현은 "촬영 초기 의욕만 앞섰을 뿐 카메라를 의식하다보면 어설픈 상황이 많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면서 "지금은 두분 다 저 보다 더 능숙해지셨다"고 웃었다.
-시청자 눈에는 아들을 바라보는 부모의 애틋함이 종종 감동으로 비친다. 가장 힘들어 하시는 게 뭔가?
잘나가는 다른 연예인들과 제가 비교될 때 가장 힘들어 하셨죠. 정상을 한번 밟았다가 추락했으니 어쩌면 저보다도 부모님이 더 마음 아팠을거예요. 그래서 한동안 TV를 안보신 적도 있어요. 언젠가는 다시 일어서주기를 기대하며 내색을 안하셨는데 '살림남' 하면서 자주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이제는 당신들께서 더 연예인답게 행동하시니 저는 할말이 없죠.
김승현은 잡지모델로 활동하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오랜 절친인 최창민과 함께 SBS '인기가요' VJ로 발탁되며 연예계에 진출했다. 그는 송혜교-최창민(1기)에 이어 이요원과 VJ2기로 활동했다. 당시 무명이었던 송승헌 소지섭과는 스톰 모델로 활동하기도 했다. KBS '뮤직뱅크'는 아나운서 황유선과 MC를 맡았고, SBS 라디오 '텐텐클럽'에서는 배두나 양미라 박진희 등과 DJ로 활약했다.
-부모가 더 연예인 같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그러고 보면 주변에서 많이 알아봐서 좀 불편할 수도 있겠다.
부모님이 광고를 찍었는데 엄청 좋아하셔요. 저만 빼고 양친과 남동생이 다 등장하는 '김' 광고예요. 기뻐하시는 건 저도 좋은데 이마저 걱정이 돼요. 너무 좋아하시는 모습이 혹시라도 부정적 이미지로 비칠까 봐서죠. 온가족이 다 방송에 노출되다보니 불편하다기 보다는 장남으로서 근심이 더 많아요.
이런 모습은 인터뷰 도중에도 곳곳에서 배어났다. '살림남'을 통해 다시 주목을 받으면서 그는 예전 못지않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신중했다. 필자가 달라진 분위기에 대해 언급하자 그는 "앞으로도 데뷔 때 마음먹었던 초심을 결코 잃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승승장구하다 추락한 건 미혼부라는 사실이 밝혀진 뒤 벌어진 일이다. 딸 수빈 양이 지금 딱 그 나이쯤인데 아빠를 이해하나?
힘들었던 시기가 분명 있었죠. 제가 사실상 활동을 중단하면서 경제적 어려움이 많았으니까요. 대신 또래 아이들보다 일찍 철이 들어 아빠를 많이 이해 해줘 고맙죠. 아기 때부터 부모님한테 맡겨 키울 수 밖에 없는 부득이한 현실을 알고 있어서이겠지만, 딸을 생각하면 늘 마음 한켠이 안쓰러움으로 남아있어요. 그런데 딸은 딸대로 아빠를 안쓰러워하죠.
그는 97년 데뷔 후 단숨에 하이틴 스타로 떠올랐지만 2003년 돌연 3살짜리 딸을 가진 미혼부 사실을 고백하며 방송활동을 중단했다. 그 딸 수빈 양이 올해 김포대학(미용전공)에 진학했다. 졸업 후엔 아빠를 돕는 딸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한다. 김승현은 "딸이 갓난 아기일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성년이 돼 세상 얘기를 함께 주고받는 나이가 됐다"면서 뿌듯해 했다.
-대중적 활동은 거의 못했지만 연예계 인맥은 탄탄한 편이다.
힘든 시기를 거치면서 항상 먼저 양보하는 게 몸에 밴 것 같아요. 눈치를 보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부터 그게 편하더라고요. 성격상 털털해서 주변에 친구들은 많은 편이죠. (탁)재훈이형을 비롯해서 이현도 이수근 오만석 심지호 등 격의없이 지내는 연예계 선후배들이 많아요.
배우와 가수, 개그맨, MC, 모델, DJ 등 김승현이 교류하는 연예계 인맥은 다양하고 폭넓다. 특히 만능 스포츠맨답게 야구팀 축구팀 농구팀 등 연예인동아리 모임에 적극 참여해 유대관계도 끈끈하다. 그는 "활동이 뜸할 때 가장 큰 힘이 돼준 동료들"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결혼에 대한 입장을 듣고 싶다. 가족들의 기대와 본인 생각이 궁금하고 올해 목표가 있다면?
부모님 기대치는 엄청 높죠. 지금 당장이라도 결혼하라고 성화시거든요. 물론 저도 더는 늦출 생각이 없어요. 좋은 여성분 만나면 부모님 기대대로 빨리 하고 싶죠. 문제는 아직 사귀는 상대가 없다는 거죠. 다행인건 수빈이도 적극 지지해줘요. 올해는 예능을 넘어 연기자로 입지를 다지고 싶어요. 잘 될 것같은 기대감도 있어요. 어쨌든 벌써 하나 둘씩 제의가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죠.
김승현의 성공적 재기를 가장 기뻐한 사람은 힘든 시절 함께 동고동락하며 그를 지탱해준 가족이다. 그는 "부모님은 말할 것 없지만, 사춘기를 넘어 막 성인이 된 제 딸이 기뻐해줘서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이는 인터뷰어로서 필자에게도 충분히 공감되는 부분이다.
김승현은 한때 대중적 관심에서 멀어지긴 했지만 공백기간을 그냥 허송세월로 허비하지만은 않았다. 지난해 그는 두편의 영화(올 개봉 예정)에 출연했다. 늘 그랬듯이 배역은 작아도 연기자로 재기하려는 노력을 포기한 적이 없다.
군 복무기간을 포함한 처음 3년을 제외하면 대학로 연극무대를 중심으로 연기자로서 꾸준히 내실을 다졌다. 또 드라마 조단역은 물론 재연 드라마 출연 제의도 마다하지 않은 것은 언젠가는 본업인 연기자로 다시 돌아가야한다는 의무감 때문이다.
김승현은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면 나이들어서도 변함없이 연기를 하고 싶다"면서 "연예대상에서 받은 상은 우선 힘든 시기를 꿋꿋이 잘 버텨준 보답이라고 스스로 위로한다"고 했다. 인터뷰 내내 겸손함을 잃지 않은 채 "유명 연예인이 아닌 배우가 되고 싶다"는 그의 마지막 말이 귓전을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