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일홍의 스페셜인터뷰⑳-이애란] "뜨고 나니 힘든 일도 많더라"

앞에서 박수치고 뒤에선 헐뜯더라. 이애란은 갑자기 히트가수가 된 뒤 가요계 일부 가수들의 이중적 태도를 겪으며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김세정 기자

[더팩트|강일홍 기자] 가수 이애란(53)은 자그마치 20년의 역주행 신화를 일궈낸 가요계 상징적 인간승리의 주인공이다. 그가 부른 '백세인생'은 데뷔 25년 만에 신드롬을 일으키며 일거에 절정의 인기를 거머쥐었다.

'백세인생'은 최근 3년간 오승근이 부른 '내 나이가 어때서'와 함께 중장년 팬들을 뜨겁게 열광시킨 곡으로 평가되고 있다. 덩달아 2015년 이후 각종 음악방송과 가요 경연 프로그램까지 싹쓸이하는 이변을 만들었고, 시간을 초월한 스테디셀러가 됐다.

최근 이애란에 대한 관심이 다시 쏟아진 것은 후속곡으로 내놓은 신곡 '백년의 길'(김종완 작사 작곡)이 히트조짐을 보이면서다. '백세인생'에 이어 지난해 선보인 후속곡 '백년의 길'은 현재까지 유투브 조회수만 700만 뷰를 기록했다.

필자는 '백세인생' 히트 당시 그와 여러 차례 인터뷰 시도를 했지만 불발로 끝났다. 하루 방송 스케줄만 10개씩 쏟아져 수면과 식사시간까지 줄이고 뛰어다녀도 짬을 낼 수 없었던 탓이다. 갑작스럽게 쏟아진 빛과 조명에 누구보다 경황없이 달려왔을 터, 이젠 좀 여유로워졌을까.

'백세인생' 이후 그의 근황이 줄곧 궁금하던 차에 이번엔 후속곡까지 '쌍둥이 히트' 소식이 들렸고, 이에 대한 속내와 벼락 인기를 거머쥔 이후 시간들에 대한 심경을 듣고 싶었다. 이애란은 "기대 수명이 늘면서 삶의 욕구도 크게 바뀌었고, 그 틈새를 뒤늦게 파고든 것"이라고 했다. 새해 첫 스페셜 인터뷰는 지난 2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더팩트> 사옥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이애란은 새해 소망에 대해 제 이름을 내건 디너쇼를 꼭 해보고 싶다고 했다. 인터뷰는 지난 2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더팩트 사옥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김세정 기자

-3년 전 인터뷰하기로 했다가 워낙 바쁜 스케줄로 몇 차례 연기하다 결국 포기했다. 그런데 오히려 지금이 더 궁금하긴 하다.

자고 나니 하루 아침에 별이 된 느낌, 그걸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모르겠네요. 90년대 초 선배가수 김국환 씨가 '타타타'로 인기를 얻은 뒤 무용담처럼 얘기하는걸 들은 기억이 있는데요. 남의 얘긴 줄로만 알았던 그 '주체할 수 없는 인기'란 걸 얻고 보니 한마디로 제 정신이 아니었죠. 덕분에 지금 후속곡까지 승승장구하고 있긴 한데 그런 이유로 당시 강 기자님과 약속돼 있던 인터뷰를 못한 건 너무 아쉽고 죄송해요.

이애란의 성공은 국민 모두가 박수치는 희망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그의 성공비결은 '운칠기삼'(運七技三:사람의 일은 재주나 노력보다 운에 달려 있음을 이르는 말)이 아니라 25년간 한결같이 자신의 길을 개척한 우직함과 노력이 원천이다. 한번 맺은 인연을 소중히 하는 의리도 한몫을 했다. 이애란의 스케줄은 그때나 지금이나 소속사 대표 겸 작곡가인 김종완이 맡고 있다.

-인생 후반전에 소위 '트로트 4대천왕'(현철 송대관 설운도 태진아)이 부럽지 않을 인기를 누리고 있다.

데뷔한 이후 저한테는 아무리 아둥바둥을 쳐도 얻기 힘든 게 바로 인기였죠. 무늬만 가수로 살던 저에게 그게 어느날 하루 아침에 뚝 떨어질 줄 누가 알았겠어요. 이제는 어느 정도 적응이 됐지만 처음엔 감당하기조차 힘들더라고요. 4대천왕과 비교하는건 좀 교만한 것같고, 암튼 요즘 그 인기란 게 얼마나 엄청난 건 줄 새삼 실감하며 삽니다.

1990년 KBS에서 방영된 인기드라마 '서울뚝배기'의 OST를 녹음하면서 가수 데뷔하던 시절만 해도 그는 성공의 꿈에 부풀었다. 하지만 음반은 제작되지 못했고, 그가 부른 노래 역시 드라마에 삽입되지 못했다. 2006년 첫 음반을 내놓았지만 소리소문 없이 묻혔다. '백세시대' 히트까지 그는 무명설움을 주어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살았다.

이애란은 그만의 독특한 창법으로 가요계 신드롬을 일궈냈다. 이애란이 한 K-POP 행사에 게스트로 초대돼 입장하고 있다. /스타월드기획 제공

-'100세' 시리즈 노래가 가요계를 넘어 남녀노소 막론하고 누구나 주목하고 관심을 갖는 이유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무엇보다 고령화로 달려가고 있는 사회적 정서가 가장 크죠. 노래 가사가 지금의 현실 이슈와도 딱 연결되잖아요. 또 하나는 제 노래가 간접적으로나마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속마음을 전달하고픈 정서를 담았다고들 해요. 세상은 각박한데 하고픈 말을 제대로 못하고 살잖아요. 데뷔 때와 비교하면 늦었지만 가수로서는 절호의 기회가 온 셈이죠.

3인칭 화법 '못 간다고 전해라~'로 더 유명해진 '백세인생'은 두번 이름이 바뀌어 빛을 봤다. 원래 '저 세상이 부르면 이렇게 답하리'란 제목으로 김종완이 곡을 썼고 이애란이 불렀다. 이후 '저 세상이 부르면'으로 한 차례 바꿨다가 다시 '백세인생'으로 새롭게 편곡돼 2013년 이애란이 불렀다. 이전 분위기는 국악 느낌이 많았지만, 대중적 소구력을 위해 트로트 리듬을 많이 가미했다.

-'백세인생' 히트 이후 위상에 엄청난 변화가 생겼다. 지금은 달라진 게 많을텐데 무명시절 가장 서러웠던 게 있었다면?

무명가수끼리도 나름 '급'이 있어요. 첫 번째는 자신을 대표할 노래가 있느냐는 거예요. 저는 히트곡이 없으니 무대에 올라도 제 노래를 부를 수가 없어요. 누군지도 모르는 판국에 노래마저 낯설면 금방 시큰둥한 반응이 나오거든요. 결국 다른 유명가수의 히트곡을 불러야하고, 그래야 그나마 박수라도 치고 관심을 가져주니 그 설움을 어찌 말로 할 수 있겠어요. 당연히 금전적 대우는 밑바닥이죠. 경제적 어려움을 견디며 가수생활을 한다는건 쉽지 않은 일이에요.

뜨고 나니 뭐가 뭔지 정신이 없더라. 이애란은 더팩트와 인터뷰에서 여러 차례 가수생활을 포기하려 했던 아픈 사연들을 얘기하며 울먹였다. /김세정 기자

-가요계 '신드롬'을 만든 것은 독특한 창법도 한몫했다. 작곡가 김종완이 이를 눈여겨본 것으로 알려졌다.

히트를 하고 나서야 어떤 노래든 부르는 가수의 스타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죠. 노래도 가수와 궁합이 잘 맞아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가수 개개인의 노래실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해요. 김종완 선생님이 편곡을 하면서 저를 염두에 뒀다는건 작곡가로서 그만큼 안목이 있었던 거고 저한테는 더없는 행운이었던 셈이죠.

- 신곡 '백년의 길'은 '백세인생' 히트 이후 후속곡 성격이 강하다.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하다.

기본 바탕은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을 황혼에 빗댄 인생무상이에요. 아무래도 중장년 팬들이 많잖아요. 분위기는 정통 트로트를 표방했는데 우선은 살아온 인생을 반추해 보는 가사에 빠지고 친숙한 멜로디에 듣는 분들이 다들 좋아해요. 3년이란 짧은 기간에 두곡이 잇달아 호평을 받으니 얼떨떨하죠.

'백세인생' 이후 새로 발표한 '백년의 길'은 최근 급속히 상승하는 유튜브 조회수가 인기를 대변해주고 있다. 현재 698만을 찍어 700만에 육박하고, '황혼이 미워'(350만) '이것이 인생'(170만) 등 함께 수록된 곡들까지 포함하면 1000만을 훌쩍 넘었다. '백세인생'은 1719만 조회수를 달리고 있다.

이애란(오른쪽)은 강원도 홍천에서 나고 자랐다. 모교인 홍천 남면의 매산초등학교에 노래비가 세워졌다. 사진은 노래비 앞에서 동료가수 나윤정(왼쪽)과 함께. /스타월드기획 제공

-'백세인생'은 일본노래를 배꼈다는 표절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다. 일본서 배꼈다는 말도 있다. 무엇이 진실인가?

결론부터 얘기하면 표절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우리나 일본이나 같은 불교권 문화여서 '마음을 느긋하게 화내지 않고 입조심을 하면 수명이 길어진다'는 비슷한 사상이 깔려있잖아요. 일본에 전해진다는 '인세산판다여도'(人世山坂多旅道)는 굴곡많은 인생여행길을 언급한 거라고 들었어요. 제가 95년 '저 세상이 부르면 이렇게 답하리'란 제목으로 처음 불렀지만 별다른 반응이 없어 접었잖아요. 그 무렵에 한국의 어떤 가수가 김종완 선생님의 허락을 받고 이 곡을 일본에서 비슷한 느낌으로로 잠시 불렀던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게 20년이 훨씬 지나 엉뚱하게 '표절'로 언급된 것인데 말도 안되는 얘기죠.

인터뷰차 함께 <더팩트> 사옥을 방문한 김종완은 "노래가 뜨고 나니 일종의 이슈몰이로 제기된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와관련된 논란은 음악표절과는 무관한 것으로 확인됐다. 장수(長壽)의 마음가짐을 언급한 '인세산판다여도'에는 환력(還曆), 고희(古稀), 희수(喜壽), 산수(傘壽), 미수(米壽), 졸수(拙手), 백수(白壽) 등 이애란의 '백세인생' 가사와 흡사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나이대별 기준이 등장한다.

-소위 인기 가수로 뜨고 나서 더 힘든 일도 생겼다고 하는데 무슨 얘기인가?

처음엔 뭐가 뭔지 모르고 정신없이 쫒아다녔어요. 인기란게 이런거구나 정도 외엔 경험해본 적이 없으니 어떻게 해야할지도 몰랐고요. 방송출연이나 행사참석 등 기준이 애매해 시행착오도 많았죠. 가장 힘들었던건 가요계 동료들의 시기 질투였어요. 앞에선 축하한다며 박수를 쳐주고는 뒤에서 저를 헐뜯는 일이 많았거든요. 멀쩡한 저를 두고 대형 교통사고로 입원해 활동을 못한다며 미리 차단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어요. 뒤늦게 연락이 닿아 얘길 들어보니 '가수 누가 그러더라'고 해요. 모두 수십년간 가요계에서 인사하고 만나던 분들이어서 상처를 많이 받았죠.

더팩트 독자 여러분 사랑합니다. 이애란의 성공은 국민 모두가 박수치는 희망 아이콘이 됐다. 그는 현재 경기도 하남시에서 여동생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김세정 기자

-결혼을 미룬 이유가 궁금하다. 어느덧 50대 후반인데 아쉬움은 없나?

핑계같지만 노래에 빠져 지내다 보니 혼기를 놓쳤네요. 군인 출신 아버지가 전역 후에 홍천에서 담배농사를 크게 지었어요. 경험도 없이 일을 크게 벌렸다가 빚더미만 남기고 쫄딱 망했죠. 저는 집안의 장녀로 부득이 소녀가장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고요. 무명생활이 길어 늘 힘들고 쪼들렸으니 언감생심 결혼은 생각도 못했죠. 다행이라면 끝까지 가수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에요. 뒤늦게라도 성공했잖아요.

이애란은 현재 경기도 하남시에서 여동생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오랫동안 모시고 산 아버지는 2015년 96세로 작고했다. 그는 "아버지는 평생 제가 가장 노래 잘하는 가수로 알고 사셨다"면서 "연세로는 천수를 누린 셈이지만 하필이면 '백세시대'가 인기 폭발 직전에 돌아가셔서 그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새해 첫 스페셜인터뷰가 됐다. 지난해까지 가수로는 어느정도 입지를 다졌지만 그래도 아쉬움은 남을 것같다. 새해 소망이 있다면 얘기해달라.

맞아요, 왜 아쉬움이 없겠어요. 무명시절엔 '이애란'이란 이름 석자만 알릴 수 있다면 돈이고 뭐고 아무 욕심도 없다 했어요. 지난 3년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올해 목표를 정한 게 있어요. 아직 히트곡은 많지 않지만 제 이름을 내건 '이애란 디너쇼'를 꼭 해보고 싶은 소망이죠. 이미 업계에서 요청은 많이 받았지만, 겉만 번지르함이 아니라 팬들과 진정으로 교감하고 제가 만족할 그런 무대를 갖고 싶어요.

이런 날이 올 줄 누가 알았겠어요. 이애란이 팬클럽 회원들 중심으로 마련된 무대에서 공연하며 감격과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스타월드기획 제공

이애란은 강원도 홍천에서 태어나 어린시절 직업군인이었던 아버지의 귀여움을 많이 받고 자랐다. 초등학교때부터 노래 잘한다는 칭찬을 들으며 일찌감치 가수 꿈을 키웠다. 하지만 출발부터 가수의 길은 험난했다. 국악공부를 하려다 레슨비가 없어 포기한 일도 있다.

인터뷰 중 이애란은 필자에게 여러 차례 가수생활을 접으려했던 사연을 얘기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는 "기초도 다지지 않고 가수하겠다고 달려드니 몇몇 악덕 작곡가들이 생짜 신인가수를 키워주겠다며 부추기고 결국엔 안그래도 어려운 형편에 자꾸 악순환을 겪게 되더라"고 했다.

'백세인생'을 통해 스타덤에 오른 이애란은 불과 3년 전 무명시절에 비해 지금은 행사 개런티가 10배 이상 뛰었다. 그가 말하는 '상상조차 못했던 꿈만 같은 일'이 현실로 등장한 셈이다. 데뷔 25년만에 생애 첫 CF를 찍었고 조만간 '이애란의 백세맞고' 게임도 런칭을 앞두고 있다.

그의 가수 인생에 기적같은 대반전은 역시 '백세인생'이다. 덩달아 지금은 후속곡 '백년의 길'로 다시 한 번 이애란의 쌍둥이 히트를 예고하고 있다. 그가 들려주는 성공담은 자신의 신곡 '이것이 인생' 만큼이나 스페셜 인생으로 필자에게도 선명하게 각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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