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강일홍 기자] 최양락(55)은 특유의 능청스런 입담을 가진 원조 개그맨 출신 방송인이다. 한때 방송가를 뒤흔든 '알까기'는 지금도 그의 상징브랜드로 통할 만큼 뜨겁게 반향을 일으켰다. 그가 데뷔 20여년 만에 친정 MBC로 돌아와 재기에 성공한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이를 계기로 그는 MBC 라디오 표준FM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 진행을 맡았고 이후 14년간 DJ로 입지를 다졌다. 하지만 2016년 5월 14년간 진행한 프로그램에서 일방적 하차 통보를 받고 물러났다. 당시 그는 라디오를 그만 둔 후 두 달이 넘도록 충격을 극복하지 못하고 술로 시름을 달래 안타까움을 안겨줬다.
그런 최양락이 입가에 환한 미소를 머금고 지난달 라디오 DJ로 다시 돌아왔다. tbn 한국교통방송 '최양락의 탄탄대로'가 바로 복귀 프로그램이다. 그간의 근황과 속내가 궁금했다. 인터뷰 요청을 했더니 다행스럽게도 흔쾌히 반겼다. 스페셜인터뷰는 지난 20일 서울 여의도 KBS 신관 커피숍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누구보다 애착이 컸던 라디오를 그만 둔 뒤 마음고생을 많이 하지 않았나.
그거야 뭐 다들 아시니 굳이 말로 다시 리바이벌하고 싶진 않고요. 요즘엔 고진감래란 고사성어를 새삼 실감하고 느낍니다. 힘든 날들을 견디고 나니 좋은 일도 생기네요. 정말 바빠졌어요. 지상파 TV 예능과 드라마 출연, 지역방송 MC와 라디오 DJ, 그리고 CF까지 스케줄이 넘칩니다. 무엇보다 라디오 진행을 다시 맡으며 모든 응어리가 풀렸어요. 비온 뒤 땅이 굳듯 아내와도 더 행복해졌어요.
최양락은 지난달 11월 26일부터 tbn 한국교통방송 '최양락의 탄탄대로' DJ를 맡고 있다. KBS2 예능 '살림하는 남자들 시즌2'는 지난해부터 아내 팽현숙과 출연중이다. 지역방송인 대전 KBS '거북이늬우스' MC로도 활약한다. 이런 인기에 힘입어 최근 팽현숙과 부부CF를 덤으로 찍었다.
-돌고 도는 게 인생이고, 방송은 개편 또는 프로그램의 형편과 상황에 따라 수시로 바뀌지 않나.
호주로 이민을 떠났다가 되돌아와 재기에 성공한 프로그램이 '알까기'였어요. 이 '알까기'가 방송가에 화제가 되자, MBC에서 라디오 DJ를 맡겼어요. 일약 상승한 인기를 활용한 기용이었죠. 해보니 라디오는 TV와 다른 묘한 매력이 있더라고요. 라디오에 모든 열정을 쏟아부었고, 그게 14년이나 됐어요. 퇴출이 일방적이었다는건 실무 PD들조차 이해가 안될만큼 최소한의 절차없는 돌연한 조치였기 때문이죠. 지난 몇년간 숨 막힐 만큼 답답했죠.
최양락은 KBS '유머1번지' '쇼비디오자키' 등으로 폭발적 인기를 누린 원조개그세대 선두주자다. 원래 MBC 개그맨 콘테스트로 데뷔했지만, 실제 KBS 개그 터줏대감으로 자리매김했고, SBS 개국 때 한 차례 더 이적했다. 이후 돌고돌아 '알까기'로 다시 MBC 예능맨이 된다. 라디오 진행을 계기로 굳건해보였던 그의 입지는 '반강제퇴출'로 무너졌다. 친정인 MBC와 두번씩이나 등을 돌린 셈이 됐다. 다만 당시까지 공감해온 MBC 라디오 스태프와는 지금도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고보니 그 일로 결국 MBC와는 영원한 애증의 관계가 됐다.
저는 KBS에서 입지를 세웠지만 마음의 고향은 MBC예요. 데뷔 직후 MBC에서 8개월동안 마땅히 출연할 무대가 없이 방치됐는데 KBS에서 손짓을 하더라고요. 지금은 방송사 영역이 없지만, 그땐 소속감이 엄격했고 친정을 떠나는 마음이 편치는 않았죠. 어쨌든 MBC에서 KBS로 그리고 SBS를 거쳐 마지막으로 다시 MBC로 돌아왔고, 라디오를 오래 진행하면서 모든 애정을 다 쏟아부었어요.
그의 MBC 공채개그콘테스트 1기 데뷔 동기는 이경규 엄용수 등 모두 8명이다. 이중 최양락이 1등을 했고, 이경규는 8등으로 간신히 턱걸이 했다. 대상을 받고도 MBC에서 활동 영역이 없어 회의를 느끼고 있을때 경쟁사 KBS 조의진 PD(후에 예능국장 및 본부장 역임)가 '젊음의 행진'으로 불렀다. 후에 '부채도사'로 승승장구한 장두석과 KBS로 이적했다. SBS 개국때 한차례 적을 바꾼 뒤 MBC로 컴백했다.
-오랜만의 라디오 컴백은 여러면에서 상징성을 갖고 있다. 방송사도 바뀌었는데 과거 분위기와 특별히 달라진 게 있다면?
라디오는 어느 순간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더라고요. 신속함과 순발력면에서 녹화하는 TV와는 비교가 안되거든요. 그만두고서야 그걸 알았어요. 그만큼 많은 애정을 쏟았던 거죠. 다시 돌아온 지금 분위기는 시작부터 더할 나위없이 좋습니다. 고맙게도 제작진이 라디오 프로그램 명칭을 작명하는 것까지 저한테 일임할 만큼 배려해줬어요. '탄탄대로'의 의미는 도로교통 중심 방송이란 상징성 말고도 제 개인적으로는 더이상 흔들림없이 달리자는 다짐도 들어있어요.
최양락은 새로 라디오 진행을 맡게 된 이후 "손편지를 보내주는 청취자들이 많아 용기가 난다"고 말했다. 라디오를 떠난지 3년만에 돌아온 최양락의 귀환에 청취자들이 적극 호응한다고 했다. 실제로 방송사는 바뀌어도 청취자들은 선호하는 진행자를 찾아 채널을 선택하는 추세다.
-아내 팽현숙씨와 진행하는 TV '살림하는 남자'는 단순 해설자 느낌인데도 묘한 재미가 느껴진다. 둘만의 특별한 비결이 있나?
인생은 새옹지마라는 말이 실감납니다. 퇴출당할 땐 다시 이민이라도 가고싶을 만큼 속이 상했거든요. 혹독한 고비를 잘 넘기고 나니 따스한 봄햇살이 비추네요. 무엇보다 아내의 위로와 격려가 가장 큰 힘이 됐죠. 지난해부터 KBS '살림하는 남자'에 함께 출연하면서 부부금실이 두배로 커졌어요. (새옹지마, 塞翁之馬:인생의 길흉화복은 변화가 많아 예측하기 어렵다는 뜻)
-벌써 데뷔 40년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방송인으로서 활동 여력은 어디까지 라고 생각하는지?
인생은 항상 지금 이 순간인 거같아요. 30대~40대 때를 생각하면 지금 제 나이는 후반전이라고도 할 수도 있는데 백세시대엔 아직 청춘이에요. 건강하게 함께 호흡할 시청취자들이 저와 함께 있는한 기대를 저버려선 안되죠. 송해 선생님과 비교하면 아직 그 절반도 못했어요. 오랜기간 직접 경험을 해보니 방송은 해도 안해도 스트레스더라고요. 그걸 피할 수 없다면 방송인으로서 계속 활동하는게 좋지 않을까요.
-아내(팽현숙)가 사업가(순댓국 등 요식업)로 성공하지 않았나. 노후준비는 걱정 안해도 될듯하다.
그 부분은 늘 고맙죠. 어쩌면 제가 경제관념이 별로 없어서 아내가 대신 나섰는지도 모르고요. 순댓국집은 홈쇼핑 판매까지 성공한 셈이지만, 수익이 많아서 유지하는 건 아니에요. 직원들 급여주고 현상유지를 해가는 그 자체만으로 행복합니다. 이웃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잖아요. 저는 아내 사업이 잘 굴러가도록 조용히 외조한다는 기분으로 하고 있고요.
그의 아내인 방송인 팽현숙은 요식업 외에도 부동산 관련 투자로 성공한 연예인 중 한명이다. 실제 부동산투자 분석 등 관련 서적을 출간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양락은 바로 이 점을 우려했다. 어느순간부터 부동산 관련 투자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 때문이다. 선의의 정보교환이나 조언 조차도 왜곡돼 비쳐져 TV나 신문에서 전문가 인터뷰 요청이 와도 과거처럼 선뜻 하지 않는다고 했다.
-방송에서 비치는 부부의 콘셉트도 좀 바뀌었다. 과거처럼 부부가 다투고 서로 깎아내리는 스타일이 아니라, 위로하고 챙겨주는 분위기다.
많이 부드러워졌지요. 한때 '자기야 저주'란 말이 있었잖아요. 연예인부부가 함께 출연한 뒤 갈등을 겪고 갈라서는 일 때문이었는데요. 사실 우리 부부도 이 프로그램을 출연한 뒤 많이 다퉜죠. 방송 콘셉트가 '우리 행복해요' 보다는 주로 '우리 이렇게 싸우고 살아요'이다보니 실제보다 과장해서 상대의 약점을 들추다 진짜 싸움으로 이어졌으니까요. 지금은 그게 반면교사가 됐어요. 어쨌든 살아남은 부부잖아요.
'자기야 저주'란 SBS 예능프로그램 '자기야'에 출연한 스타부부들이 잇달아 이혼소식을 알리며 생긴 말이다. 이재은을 비롯해 쥬얼리 이지현 부부, 이유진 부부, 양원경-박현정, 배동성-안현주, 이세창-김지연, 김혜영-김성태, 김지훈-이종은 부부가 이혼했다.
-부부가 각기 다른 대학에서 서로 '교수'와 '학생'으로 적을 두고 있다고 들었는데 무슨 얘긴가.
제가 라디오를 그만 둔 뒤 한동안 마땅히 할 일이 없었잖아요. 아내의 권유를 받아 공부를 좀 더 하기로 했죠. 그런데 팽현숙 씨가 다니는 학교에서 연기지도 교수 제안이 왔어요. 뒤늦게나마 저도 공부를 더 하고 싶은 충동이 생겼죠. 이후 어찌어찌 하다보니 아내와 딸(최하나)까지 가족끼리 얽히고 설키는 상황이 됐네요. 한쪽 대학에서 선생과 학생으로, 다른 쪽 대학에선 학생과 선생이 되면서 부부가 '피장파장 신분'이 된 셈이죠.
최양락은 관동대 연기과 겸임교수이고 팽현숙은 이 학교 방송연예과 2학년에 재학중이다. 거꾸로 팽현숙은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겸임교수(부동산금융)로 강의를 하고 최양락은 이 학교 학생이다. 서로 학과가 달라 부부가 같은 교실에서 교수와 학생 신분으로 마주치는 '불상사'는 피했지만, 엄연히 두 대학교에서 서로 뒤바뀐 핑퐁 신분을 유지하고 있다. 또 딸 하나씨는 열린사이버대 영어과 교수다.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여러가지 소회가 남다를 것같다. 마지막으로 방송인으로서,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팬들에게 바라는게 있다면?
마음을 비운다는건 참 어려운 것같아요. 무엇보다 지금 순간을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는걸 깨달았죠. 처음 라디오를 중단했을 때는 워낙 충격을 받아서 그런지 방송인 생명이 끝난 것처럼 두려웠어요. 아내가 옆에서 늘 마음을 비우라고 조언했지만 들리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어느순간 비우고 나니 다시 채워지더라고요. 아마도 이제 이순(60세, 耳順: 귀가 순리대로 들린다, 공자)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니 철이 든 모양입니다. 앞으로도 집착하지 않고 덤이라고 생각하면 편할 것같습니다.
최양락의 표정은 밝았다. 인터뷰 내내 열의와 자신감이 넘쳐보였다. 필자와 최양락은 90년대부터 방송사를 오가며 20여년간 서로 가까이서 지켜봐온 사이다. 방송 카메라 앵글 속이 아니면 대체로 '좋다 싫다' 표정에 둔감한 편이었던 그의 이런 변화는 매우 이례적이다.
필자는 2016년 7월 '최양락의 외압 의혹 속 라디오 도중하차' 내용의 기사를 쓴 뒤 MBC 측으로부터 명예훼손 언론중재위 제소를 당한 바 있다. MBC는 <최양락 씨는 방송국 내부의 정기 라디오 개편 절차에 따라 방송에서 하차하게 된 것이었다>는 내용의 반론보도를 요구했고 이를 관철시켰다. 당시 필자는 아내 팽현숙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고객 주차 관리를 하는 그의 모습과 심경 등을 보도한 바 있다.
최양락은 이에 대해 "형식과 절차는 중요치 않다"고 했다. 그는 "돌이켜보면 40년 연예계 활동을 하며 수없는 부침을 겪었다"면서 "나이를 먹어보니 인기는 거품에 불과하고 결국 사람 사는 보람과 기쁨은 사람간의 정(情)과 의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문득 스페셜인터뷰이로 가장 적합한 인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