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사랑스러웠던 '윙깅이'와 '녤'이는 어디로 갔나
[더팩트|김희주 인턴기자] '돌판'(아이돌 판)에서 꽤 '돌잘알'(아이돌을 잘 아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이 있던 인턴기자의 믿음이 한 순간에 깨지던 날이었다.
내 마음속에 '저장'하다못해 '복사' '붙여넣기' 해 하드디스크 D드라이브에 1080P로 고이 간직해도 모자랄 11인은 덕후(팬)의 아가페적 사랑을 쉽게 채워줄 수 없었나 보다. 모니터 속에서 방긋방긋 웃던 그들은 일할 때만큼은 퇴근을 기다리는 여느 직장인들과 다를 바 없었다.
19일 서울 영등포구 서울 호텔 5층 파크볼룸에서 열린 '1¹¹=1(POWER OF DESTINY)' 기자간담회는 워너원과 취재진 이외에도 팬들로 북적였다. 프레스권을 갖지 못한 팬들은 워너원의 입장을 놓치지 않기 위해 흔히들 말하는 '대포'(대형 카메라)를 들고 취재진 보다 먼저 현장에 도착해 있었다.
"내가 저들을 대신해 우리 '윙깅이'(박지훈의 애칭)와 '녤'(강다니엘의 애칭) 그리고 '머랑둥이'(이대휘의 애칭)를 비롯한 열 한 명의 보석들을 낱낱이 파헤쳐야겠어!"라며 절로 비장해졌다. 기자간담회 현장에 들어서려 할 때 저지하는 손에 붙잡히기 전까지는. "저도 기자인데요?"라는 말에 "취재 기자를 한 명 신청하셨는데 두 분이 오셨네요"라는 싸늘한 대답을 들었기 때문이다.
앨범과 프레스킷은 일차적으로 선배의 손에만 쥐어졌다. 인턴기자에게 취재 현장은 차갑다 못해 오한이 들 정도로 냉정했다. 하지만 이에 굴한다는 것은 전직 '국민 프로듀서'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저도 기자 맞다 구요"라고 소심하게 말하며 자발적으로 프레스킷과 워너원 앨범을 가지고 들어섰다. 펼쳐본 앨범에는 멤버 하성운의 포토카드가 담겨 있었다.
"이 험난한 가요계에서 내 '첫 아이돌' 하성운만은 꼭 지키리!"라며 결의를 다지는데 포토타임이 시작됐고, 이어 본격적인 토크타임이 이어졌다. 동시에 '돌팬'(아이돌 팬)의 환상이 부서져 버리는 역사적 한 시간도 시작됐다.
먼저, 첫 현장이었던 tvN '톱스타 유백이' 제작발표회 때와 사뭇 다른 흐름에 당황하며 키보드에서 잠시 손을 떼야했다. 더 놀라운 것은 키보드에서 잠시 손을 떼도 따라갈 수 있었던 현장의 분위기였다. 배우들의 말, 토씨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 '미친 속도'로 키보드를 두드렸던 이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팬분들께 감사했습니다" "워너블을 사랑하기에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좋은 질문 감사드립니다" 그들이 워너블(워너원 공식 팬클럽)을 얼마나 사랑하고 취재진에게 얼마나 감사했는지 아주 뼈저리게 느낄 만큼 반복된 말에 결국 메모장을 닫았다.
'팬' '감사' '사랑'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들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이 형식적인 답변들을 어떻게 기사로 녹여내야 하는지 당황하는데, 이럴 수가. 나보다 더 당황한 인물이 바로 내 앞에 있었다.
"왜 제가 했던 질문을 진행자 선에서 차단하시는 거죠?" 날카로운 질문에 고개를 돌렸다. 딱 봐도 경력이 엄청날 것 같은 포스를 뿜는 선배 기자가 마이크를 들고 있었다. "그건 진행자분이 판달할 문제는 아닌 것 같고, 워너원분들은 제 질문에 답을 해주시죠"라고 덧붙여진 말에 진행자는 당황한 채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앞서 그가 끊었던 질문은 워너원의 음원 유출에 관한 내용이었다.
'옹배우' 옹성우는 역시나 배우적 면모를 일찍이 드러내고 싶은 것인지, 마치 대본을 읽고 있는 것처럼 예상가능한 대답을 했다. "저희도 모르겠습니다. 드릴 수 있는 말씀이 없어 죄송합니다"라는 그의 말은 '팬' '감사' '사랑'의 범주에 '죄송'이라는 키워드를 하나 더 추가시켰을 뿐이었다.
2년 동안 갈고 닦은 11인의 엄청난 팀워크를 자랑하려는지 열 한명은 모두 한 시간동안 서로를 쳐다보기에 바빴다.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10인이 대답할 것이라는 낙천적 믿음이 아주 굳은 모양이었다.
그나마 기억에 남는 멤버는 이대휘와 윤지성이었다. 이대휘는 취재진의 질문에 하나하나 성심성의껏 대답하려는 모습을 보이며 틀에 박힌 질문을 조금이라도 순화하려 애썼다. 또한 다른 멤버가 질문을 곤란해한다 싶으면 가장 먼저 마이크를 잡고 대기했다. 개인적으로 '청춘'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는 윤지성 또한 서글서글한 웃음으로 취재진의 질문에 응했다.
메모장을 공허하게 배회하던 손은 이쯤에서 마무리 해야 할 것 같다. 그들이 나에게 전한 바가 없으니 나도 그들을 대신해 전할 것은 없다. 기억에 남는 것은 한마디 말뿐이었다. 워너원 활동 마무리를 앞둔 소감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해맑게 웃으며 "섭섭 시원해요"라던 강다니엘의 대답.
'팬'에서 '기자'로 한 발짝 나아가는 과정에서 겪어야 하는 쓰디쓴 현실 자각을 하게 한 말이었다. 가수의 어떤 면모와 모습도 실망하지않고 껴안으려는 팬들의 사랑은 기자에게는 기대할 수 없는 것이었다. 객관적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그들은 '전직 덕후'에게는 그저 '그사세'(그들이 사는 세상)를 살고 있는 또 하나의 연예인일 뿐이었다.
워너원 분들, 저도 '섭섭 시원'하네요. 다음에 만날 땐 자신의 이야기를 더 들려주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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