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성애 가득한 영화 '출국'으로 돌아온 이범수
[더팩트|성지연 기자] "이번 영화가 흥행을 한다고 해서 제가 재벌이 되는 것도 아니고…. 또 흥행이 안 된다고 해서 내가 망하는 것도 아니지 않나(웃음). 어느날 문득 '하고 싶은 걸 하자' 그런 생각이 들더라."
이범수(48)는 경력 28년, 출연 작품만 40여 편이 넘는 데다 인기를 얻은 작품들도 경력과 비례할 만큼 다양하다. 데뷔 이래 지금까지 안정적인 행보를 보여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난 2016년 개봉한 '인천상륙작전'(감독 이재한)도 누적 관객 700만 명을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했고 그가 출연한 드라마 '아이리스 2'(2013) '자이언트'(2010) 등도 큰 인기를 누린 바 있다.
하지만 이범수의 최근 선택은 의외다. 신인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저예산 영화를 차기작으로 정했다. 11월 14일 개봉하는 영화 '출국'(감독 노규엽)이다.
신작으로 돌아온 그를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한 카페에서 만났다. 대중적인 배우가 되고 싶은 것도 맞지만, 스스로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연기의 길을 가고 싶다고 말하는 이범수다. 그리고 자신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었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이번 영화에서 보여줄 수 있는 최대치를 모두 보여준 것 같다면서.
이범수가 최선을 다해 연기했다고 자신하는 영화 '출국'은 1986년 베를린에 유학 중이던 경제학자 영민(이범수 분)이 자신과 가족을 위해 북으로 가는 선택을 하지만, 이내 실수임을 깨닫고 코펜하겐 공항에서 위험천만한 탈출을 시도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하지만 탈출 실패 후, 헤어진 아내와 자녀들을 찾기 위해 나서며 벌어지는 비극을 그린다.
영화 속에서 이범수는 모든 것을 걸고 가족을 찾아 나서는 영민 역을 맡아 애절한 연기를 펼친다. 시사회에서 완성된 영화를 처음 봤다는 이범수에게 소감을 물었더니 굉장히 만족스럽다며 웃는다.
이범수는 "사실 걱정을 많이 했는데 생각보다 마음에 든다. 시사회에서 처음 완성된 작품을 봤는데 감독님 손을 꼭 잡아주고 싶더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여유로운 표정에서도 작품을 향한 애정과 만족도가 오롯이 묻어난다.
극 중 이범수가 맡은 역할은 경제학자 영민. 영민이란 인물은 인텔리인 동시에 가장이고 한 아이의 아버지다. 영민의 그런 모습이 실제 아버지인 이범수가 '출국'에 동요된 큰 이유기도 했다.
그는 "영민을 보면서 나랑 닮았다고 느낀 점이 매우 많았다. 출연을 결심하게 된 큰 이유 중 하나다"며 "아이가 있는 아버지로서 가족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남자의 이야기가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더라. 시나리오를 읽고 가시지 않는 먹먹함이 있었다. 영민이란 사람을 위로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결혼 후,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된 이범수는 '아버지'란 존재에 대한 생각의 변화가 있었단다. 만약 이범수에게 아이들이 없었더라면 '출국'이란 영화를 선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는 "아이를 낳는다는 것도 굉장히 놀라운 일이지만, 그 이후에 생기는 일들은 더 놀라운 일의 연속이다. 뭐랄까…. 웃기지만, 감동적이다"며 피식 웃었다.
이어 "아이란 존재는 맹목적으로 부모를 신뢰한다. 나를 맹목적으로 사랑하는 작은 존재를 위해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우리 아버지도 내게 그런 마음으로 사랑을 주셨겠구나 싶기도 하고…."라며 잠시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영민을 연기하며 이범수가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액션 스타'처럼 보이지 않는 것. 자칫하면 딸을 구하려고 고군분투하는 '테이큰'의 리암 니슨을 연상케 할 것 같아서였다.
그는 "리암 니슨처럼 멋있게 하지 않으려고 무척 노력했다. 영민은 그러면 안 되는 인물이다"며 "멋있어 보이려고 했다면 내 연기는 싸구려가 될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이범수는 또 "영민은 공부에만 열중했던 모범생이다. 그런 이가 태권도 유단자처럼 액션을 펼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처절한 아버지의 모습과 액션을 잘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고 전했다.
신인 감독, 거기에 조금은 진부한 스토리텔링의 '출국'을 선택한 이유도 물었다. 이범수의 경력이라면, 이범수의 인지도라면, 이범수의 연기력이라면 조금 더 영리한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복잡한 질문이었지만, 의외로 그의 대답은 명확했다. 흥행을 좇는 배우는 되고 싶지 않다는 확실한 연기 철학. 다만 대중과 소통하는 배우로 남고 싶다는 '천생 배우' 이범수였다.
이범수는 "'출국'의 시나리오를 2년 전에 받아보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흥행이란게 내 삶에 얼마만큼 의미 있는 것인가'하는. 물론 대중과 따로 노는 배우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아쉬운 게 사실이다"며 "전 작품('인천상륙작전')이 7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으니 다음 행보가 조심스러운 것도 있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이어 "나도 사람인지라 흥행에 대한 욕심도 났다. 반면에 이번만큼은 좀 더 과감하게 연기력을 보일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도 들더라. 설령 이 영화가 망한다고 한들, 내 인생을 크게 놓고 봤을 때 결국 이것 또한 경험이고 공부라는 생각이 들더라. 놓치면 후회할 것 같았다"고 대답했다.
이범수는 죽을 때까지 '영화인'으로 살고 싶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존경받는 영화인'이 그의 최종 목적지라고.
"어떤 형태로든 연기자, 영화인으로 살고 싶다. 존경받는 영화인이 되고 싶다. 아무리 유명하더라도 존경을 받지 못하는 선배는 아쉽다. 연기를 정말 사랑한다"며 "연기로 세상과 소통하고 세상과 대화하며 살겠다. 지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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