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일홍의 연예가클로즈업] '웨이터 변신' 배우 한지일의 '행복한 인생유전'

남은 인생 건강하게 열심히 살면서 보답하고 갚아야죠. 배우 한지일(사진 오른쪽)이 고희의 나이에 호텔 레스토랑 웨이터로 변신해 화제다. 사진은 미국 셔틀버스 운전기사 시절. /한지일 제공

[더팩트|강일홍 기자] "제 사연이 알려지고 나서 며칠 숨가쁘게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네요. 여기저기 찾는 분들이 많아 휴대전화에 불이 났어요. 일도 해야하는데 일일이 전화를 다 받을 수도 없고, 눈치가 보이네요. 그래도 저를 잊지 않고 많은 분들이 '힘내라'며 격려해주고 위로해주니 힘이 납니다. 웨이터 생활이요? 많은 일들을 해봤지만 이렇게 힘든 줄 몰랐죠. 지금은 다 포기하고 잊은지 오래 됐는데도 조명받고 관심받던 배우 시절은 늘 그리움이죠."

1970~80년대를 풍미한 스크린 스타 한지일(71)이 고희를 넘긴 나이에 호텔 레스토랑 웨이터로 변신해 또 한번 세인의 주목을 받고있다. 호텔 유니폼을 차려입은 그의 왼쪽 가슴에 'HAHN J H'와 'HOTEL DOUBLE A'라고 쓰인 자주색 명찰이 달려 있다. 그의 본명 '한정환'의 이니셜이다. 경희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출신으로 데뷔 당시 '몸짱' '학사배우'로도 시선을 받았으며 처음엔 '한국의 이소룡'이란 의미로 한소룡을 예명으로 썼고 지금의 한지일로 바꿨다.

1972년 '바람아 구름아'라는 국내 첫 모터사이클 영화로 데뷔한 그는 78년 '경찰관'으로 대종상 신인상을 수상하며 배우로 입지를 굳힌다. 한지일은 요즘도 사석에서 '이두용 감독, 임권택 감독과 일할 때가 제일 행복했다'는 말을 자주 할 만큼 자신을 대형 배우로 키워준 은인들을 잊지 못한다. '경찰관'에 이어 '물도리동' '길소뜸' '아다다' 등의 작품으로 정상급 배우로 자리잡았고 대종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아제아제 바라아제' 이후 영화제작자로 변신한다.

한지일은 홀로 미국생활을 하면서 뷰티용품 세일즈맨, 리커스토어, 대형마켓 박스보이, 호도과자 점원, 농수산 특산물 장돌뱅이 등 24가지 직업을 전전했다. 국내 웨이터 생활을 시작하며 호텔 레스토랑 서빙 도중 외국인 고객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한지일 SNS

◆ 베트남서 3년-미국서 11년, 박스 보이-호도과자 점원-셔틀버스 기사 등 27가지 직업 전전

특히 극영화 제작에 몰두하면서 90년 새로운 틈새 영역으로 자리잡은 홈비디오 제작에 매달렸다. 진도희 등 스타 에로배우들을 발굴, '정사수표' '젖소부인 바람났네' 등으로 그는 90년대 성인비디오시장의 황제로 군림한다. 사업 성공은 화려했던 과거 배우 이미지를 지우고 에로계의 거물로 인식되는 감독이 됐다. 인생유전이라고 하더니 정점에서 추락은 금방이었다. 1998년 IMF 위기와 파고를 넘지 못하고 회사가 휘청거리면서 빚더미와 이혼 등 가정사가 겹쳤고, 몇 번의 법정공방으로 100억대의 재산이 날아갔다.

택시기사, 주유원, 건설현장 막노동 등으로 전국을 전전하면서도 끊임없이 재기를 꿈꿨다. 그가 당장 급한 생계를 위해 잠시 공백을 가진 사이 성인비디오 시장은 드라마적인 요소가 풍부한 극영화 스타일을 버리고 일본이나 북미유럽권의 영향을 받아 노골적이고 단순한 섹스신이 장악했다. 특히 인터넷 성인방송국이 우후죽순 등장하는 '인터넷 바다'로 환경이 크게 뒤바뀐 2000년대 이후 그에겐 열정이자 삶의 원천이었던 비디오시장은 아예 설 자리를 잃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걸 다 잃고 포기한 한지일은 무작정 해외로 떠났다. 베트남에서 3년, 미국에서 11년 등 무려 14년간 해외에 머물렀다. 블라인드 청소, 화장품 영업사원, 뷰티 흑인용품 세일즈맨, 리커 스토어, 양품점, 나무 자르는 일, 대형마켓 박스보이, 호도과자 점원, 셔틀운전기사, 농수산 특산물 장돌뱅이 등 27가지 직업을 전전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22회 부산국제 영화제 '신성일 특별회고전' 참석을 계기로 일시 귀국한 뒤 지인들의 권유로 국내 정착을 결심했다.

한지일은 지난해 10월 22회 부산국제 영화제 신성일 특별회고전 참석을 계기로 일시 귀국한 뒤 지인들의 권유로 한국을 떠난 지 14년만에 국내 정착을 결심했다. /한지일 제공

한지일은 1972년 바람아 구름아라는 국내 첫 모터사이클 영화로 데뷔, 78년 경찰관(아래 오른쪽 작은 사진)으로 대종상 신인상을 수상하며 배우로 입지를 굳혔다. /영화 스틸

◆ 70~80년대 최고 스타배우 한지일, 데뷔 후 50년 돌고돌아 레스토랑 웨이터 '주임 한정환'

충무로는 한지일이 청춘과 인생을 바친 곳이고, 최정상급 배우로 조명을 받았던 무대다. 그곳에 그는 50년을 돌고돌아 레스토랑 웨이터 '주임 한정환'으로 섰다. 늘 꿈속 그리움의 영화촬영 현장이 아닌 호텔 더블에이 스카이라운지 '어 뷰 테라스'다. 웨이터는 이미 경험한 수없이 많은 직업 중 하나일 뿐이지만 더 내려갈 곳도 없는 그의 처지에선 고마움이고 보람인 직업이다. 무엇보다 간간이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는 팬들을 위한 마지막 희망의 끈이 돼야 했다.

"언젠가는 연예인으로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죠. 부끄럽지만 해외를 전전하며 그런 꿈과 소망을 버릴 수가 없더라고요. 인기나 관심을 다시 받는다는 그런 욕심이 아니라, 아주 사소하게라도 한지일이란 배우의 추억을 되새김질 할 수 있을까 하는 저만의 희망사항이었죠. 꿈과 현실은 엄연히 다르잖아요. 지금 저는 저를 위로해주고 끌어안아준 많은 분들한테 송구스럽고 민망하지만 정말 행복합니다. 남은 인생 건강하게 열심히 살면서 보답하고 갚아야죠."

한지일에게는 남들이 갖지 못한 소중한 자산이 있다. 데뷔 이후 50년 넘게 한결같이 해온 이웃사랑 봉사다. 스타배우로 지낼 때는 물론 IMF사태로 빈털터리가 됐을 때도 멈춘 적이 없다. 심지어 미국에서 파트타임을 하며 온갖 고생을 할 때도 이어졌다. 그에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고, 그래서 결코 외롭지 않다. 웨이터 변신도 알고보면 나이에 걸맞는 봉사의 일환인 셈이다. 그를 잘 아는 지인들이 이런 진성성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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