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윤택(46·본명 임윤택)은 종편채널 MBN 자연 다큐멘터리 '나는 자연인이다'(이하 '나자연')의 아이콘이다. 이 프로그램이 방영횟수 300회를 넘기는 동안 그는 특유의 능청스러움과 맛깔스런 분위기를 이끌어내며 대세 예능스타로 떠올랐다.
'나자연'에 출연한 지 7년, 이제 그는 중장년 시청자들이 가장 만나고 싶어하는 인물 중 한 명이 됐다. 데뷔 시절부터 독특한 '한 박자 느린 개그'로 주목을 받다가 부침을 겪더니 이제야 비로소 제 자리를 잡은 느낌이다. 필자와는 2003년 SBS 7기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할 당시부터 인연을 맺은 사이라 더 눈길을 끈다.
전국 방방곡곡 산과 계곡을 누비며 색다른 체험다큐 주인공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윤택을 만났다. 인터뷰를 위한 만남은 그의 전성기 시절 개그폭소 장외콘서트가 펼쳐진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당시 필자가 공연기획자를 직접 소개해줌) 무대 이후 10여년 만이다. 스페셜인터뷰는 추석연휴 직후 서울 상암동 <더팩트> 편집국에서 진행됐다.
-'나자연'의 인기가 갈수록 상승세다. 오지나 다름없는 산중에 나홀로 사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지 몰랐다.
저도 매번 놀라고 있습니다. 사실 처음 시작할 때만해도 한 50회 정도 하면 고갈될 줄 알았죠. 그런데 벌써 7년째, 300회를 넘겼어요. 특이한 것은 '나자연' 방송을 보고 자연인이 되기로 결심한 분들이 많다는 거예요. 현장을 다니다 보면 짧게는 2~3년차, 많게는 5~6년차 자연인들을 심심찮게 만나거든요.
-은퇴자들이 늘면서 갈수록 자연인에 대한 관심도 크다. 그만큼 유사한 소재를 다루는 프로그램도 등장하고 있다.
가장 익숙하고 평범하면서도 물리지 않는 소재인 것 같아요. 우리 인구분포상 71년생이 가장 많다고 들었어요. 지금 47세인데 저랑 비슷한 나이대죠. 4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서서히 은퇴를 꿈꾸고, 자연인을 동경합니다. 최소한 이들의 나이가 55세가 되는 향후 8년까지는 지속적으로 관심이 커지거나 상승하지 않을까요. 귀농, 귀촌과 맞물려 자연친화 라이프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봅니다.
-7년 간 산속을 다니면서 과거에 없던 자연다큐 MC라는 타이틀로 주목을 받고있는데, 자연인이 많아지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처음에는 아무도 없는 산중에 초막 하나 짓고 사는 분들을 이해하지 못했죠. 전기도 없는 깜깜한 한밤중엔 더욱 그랬고요. 그런데 어느 순간 해발 800m 고지에서 달관의 삶을 유지하는 이유가 저절로 깨달아지더라고요. 채우는 것보다 비우는 게 훨씬 힘들다고 하는데 그 심오함을 알겠더라니까요. 요즘엔 저도 모두 내려놓고 털어내는 '무소유 삶'이 점점 친숙해지는 걸 느껴요.
윤택은 인터뷰 도중 여러차례 '무소유'를 언급했다. 그는 "연예계 최고 정상에서 인기를 누렸을 때보다 지금이 훨씬 행복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쫒기는 삶이 싫어 가족과 좀더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싶어 이 프로그램 외에는 일체 고정프로그램을 잡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미 방송을 통해 사연이 공개되긴 했지만 주로 어떤 분들이 산속에 머무는지 궁금하다.
갖가지 사연을 가진 분들이 도망치듯 자연과 함께하며 희망을 되찾은 경우가 많죠. 불치병에 걸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을 안고 산을 찾았다가 건강을 회복한 분들한테는 삶 자체가 행복이에요. 불행한 사고로 가족을 잃었거나 불륜으로 아내와 헤어진 분들, 사업 실패나 인간적 배신감에 아예 죽자는 심정으로 세상과 단절한 케이스도 있고요. 그런데 공통점은 그런 분들이 모두 자연속에서 새로운 희망과 행복을 얘기한다는 게 신기하죠.
-'나자연' 같은 자연다큐가 특별한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는가?
인간은 원래 자연에서 살았지만 재물에 욕심이 생기고 이를 채우기 위해 거대 콘크리트 도시를 만들었다고 하죠. 동물의 왕국처럼 어쩔수 없이 약육강식의 물고물리는 삶을 살아야하고, 꿈과 야망을 키우기 위해 누군가를 짓밟는 일도 많고요. 그런 삶을 살고있는 대다수 사람들은 은연중 도시탈출을 동경한다고 봐요. 당장 떠나지 못해도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의 사연만 들어도 간접 힐링이 된다는 분도 많고요. 신선한 공기와 맑은 물을 보면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없잖아요.
-오랫동안 산속을 찾아다니며 자유롭게 사는 사람들과 만나면서 그렇게 살고 싶은 생각은 없나?
엇? 눈치채셨군요. 원래 남의 일에 관심을 갖다가 어느 순간 닮아간다고 하잖아요. 방송으로 맺은 자연인들과 인연이 깊어지면서 저 또한 그들의 삶에 동화됐다고나 할까요. 치열한 현대 도심생활에 지친 분들이 너도나도 '이제는 좀 쉬고 싶다'고 합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딱 10년 후면 어디선가 반자연인으로 사는 제 모습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윤택은 수년 전 언젠가 돌아갈 자연인의 삶을 위해 수도권서 멀지 않은 곳에 3300㎡(1000평) 가량의 땅을 사뒀다고 한다. 지금도 연습삼아 주말이면 틈틈이 아들과 아내를 앞세워 감자와 옥수수를 심고 키우는 재미에 빠져있다.
-방영초기에 만났던 1세대 자연인 중 일부는 벌써 세상을 떠난 분들도 있다고 들었다.
초창기 찾아뵀던 어르신들 중 몇몇 분이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아직도 촬영 당시 기억이 생생한데 마음이 아파요. 한번은 우연히 자연인 따님을 만났는데, '아버님은 잘 계시느냐'고 물었더니 방송이 나간 뒤 제 얘기도 종종하셨고 이후로도 편안하게 즐기는 삶을 사시다 떠나셨다고 하더라고요.
-자연인이 만들어준 음식을 먹으며 항상 감동을 하던데, 정말 맛이 있어서 그런 건지 궁금하다.
일단 풍경이 다르잖아요. 자연인들은 평소 간단하지만 연중 계절별로 스스로 가장 자신있고 맛있게 해먹는 음식을 만들어 줍니다. 때론 낚시를 하는 재미도 있고, 키우는 닭을 잡거나 산에서 갓 채집한 먹거리로 직접 만들어 먹으니 새롭기도 하고요. 사실 밥 한그릇에 김치 하나만 있어도 정말 맛있어요. 깊은 산중 맑은 계곡에서 새소리 들으며 먹는 밥은 말 그대로 황제의 밥상이죠.
-이 프로그램의 장점은 자연 속에 사는 사람의 평범한 일상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것이다. 재밌는 상황을 위해 연출도 하나?
자연인과 현장에서 인터뷰 등을 하며 기본 방향을 설정하긴 해도 인위적인 연출은 하지 않아요. 제가 방송을 하면서 유일하게 대본없이 하는 프로그램이기도 하고요. 일단 '아버님' 또는 '형님'으로 붙임성 있게 대하려고 노력하죠. 다행스럽게도 거의 대부분은 저보다 나이가 많거든요. 최대한 짧은 기간에 친밀도를 높여야 마음을 열고 재밌는 상황을 만들 수 있으니까요.
-전국 오지를 돌다보면 특별한 에피소드나 기억에 남는 일이 있지 않나?
산속을 헤매다 커다란 구렁이를 만난 적이 있는데 다리가 후들거려 도망도 치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때 얼마나 크게 놀랐는지 이후 매일밤 '뱀꿈' 악몽에 시달렸어요. 또 경북 영양의 어떤 산에서는 물웅덩이를 건너 뛰다 발목이 돌아가는 바람에 사흘간 꼼짝 못하고 치료를 받은 뒤 간신히 촬영을 마친 적도 있었죠. 지나고 보면 다 잊을 수 없는 추억이죠.
-가장 궁금한 게 바로 독특한 '뽀글머리' 헤어스타일이다. 매번 관리하는 일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
많이 받는 질문중 하나가 바로 머리예요. 심지어 조상님 중에 흑인이 있느냐는 질문도 받아봤어요. 또 불편하지 않느냐고 하는데 저는 이제 너무 익숙해서인지 이 머리가 편해요. 데뷔할 때부터이니까 15년이 넘었네요. 지금도 두 달에 한번씩 단골 미용실에서 동네 할머니들과 수다를 떨며 파마를 하죠.
윤택의 트레이드마크는 파마를 한 뽀글머리 헤어스타일이다. 한번에 5~6시간씩 공을 들여야 해서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있는 단골집에서 파마를 한다. 8년째 같은 미용실이다. 개그콘테스트 아이디어를 짜던 중 평범한 외모로는 튀지 않을 것같다는 생각에 파마를 했다. 그런데 해놓고 보니 가수 전인권의 머리처럼 푸석푸석해 맘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둥글게 '세워달라'고 요청했고, 여기에 콧수염까지 길러 자신만의 유일무이한 헤어스타일을 창조했다고 한다.
-종편채널 프로그램 자존심을 살린 주역이 됐다. 가성비 좋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방송사 내부의 자체 평가는 어떤가?
역시 내편인 강기자님이 제 속마음을 척 꿰뚫어 보시는군요. 운좋게 모두에게 사랑받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된 건 정말 행운이죠. 그만큼 방송사에서도 격려와 배려를 많이 해주는 편이고요. 촬영스태프나 저나 늘 열악한 현장 상황이 힘들 때도 많지만, 이런 안팎의 칭찬이나 좋은 평가에 더 큰 보람을 느끼죠.
1991년 12월9일 민방 SBS가 개국한 직후 킬러 콘텐츠는 예능이었다. 특히 쇼프로그램과 접목한 신설 코미디프로그램은 상당한 기여를 했고, 덕분에 짧은 기간 내 KBS와 MBC와 대등한 위치에서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 그로부터 꼭 20년 만인 2011년 12월1일 종편채널이 탄생했고, 이후 수많은 실험적 프로그램이 명멸했지만 첫 번째 예능 수훈갑을 말한다면 MBN 자연다큐 '나자연'을 빼놓고는 명함을 내밀 수 없다.
-한때는 개콘세대를 주도하며 최고의 인기를 누린 개그맨이었다. 이후 활동이 좀 뜸했던 적도 있지 않았나?
아시다시피 연예계 '노예계약 파동'이 있었잖아요. 이 일로 방송활동을 3년간 못했는데 한창 인기를 누리던 시기라 많이 힘들었죠. 저를 포함한 많은 동료 개그맨들이 큰 피해를 봤지만 의미가 없었던 건 아닙니다. 이후 연예계에 권장계약서 약관이 만들어지는 등 부당한 관행이 사라지는 계기가 됐으니까요.
계그계 노예계약 파문은 2005년 엔터테인먼트 '스마일매니아'를 이끌던 개그맨 출신 박승대 대표가 소속 개그맨 14명과 갈등을 겪은 분쟁이다. 박승대는 대학로를 중심으로 독특한 후배 양성시스템을 통해 방송가에 세를 과시했지만 수익배분 및 사생활 제한 등의 논란이 제기된 뒤 후배들과 진통을 겪었다.
-데뷔 당시 방송계에서 주목을 받기는커녕 미미했다고 들었다. 개그맨으로 데뷔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
네, 맞습니다. 사실 저는 원래 개그맨이 꿈은 아니었어요. 일찍이 사업에 뛰어들어 큰 돈을 벌겠다는 야심이 있었어요. 제 주거래업체가 당시 잘 나가던 디지털조선, 애경, 해피랜드 등이었으니 나름 장밋빛 미래를 꿈꾸던 벤처사업가였죠. 끝내는 아버지 돈까지 끌어다 5억 원의 빚을 지고 막을 내렸지만요.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고 관광가이드와 막노동까지 하다 후배인 김형인을 만나 예상치 않게 개그계에 문을 두드리게 됐어요.
윤택은 개그콘테스트 당시 최종 합격한 9팀 중 장려상조차 받지 못한 꼴찌팀 멤버였다. 그런데 데뷔 후 1년이 채 안돼 스타덤에 오르는 이변을 만들었다. '웃찾사'(웃음을 찾는 사람들)의 콩트코너 '택아'가 바로 인생역전의 무대였다. 체육관 관장 역을 맡은 김형인과 함께 콤비를 이룬, 이른바 '한 박자 느린' 개그였다.
윤택은 2012년 1월 28일, 서울 마포구 홀리데이인 호텔에서 의류 관련 일을 하던 1살 연하의 아내 김영조 씨와 결혼했다. 마흔 살 늦은 나이에 의상협찬 등을 연결해주던 여성과 애틋한 마음으로 교감하다 결혼이란 인연을 맺었다. 그는 "성공한 사업가에서 신용불량자로 , 최고의 인기를 누리다 좌절을 겪고, 평범하지만 진정성을 담은 프로그램으로 다시 사랑을 받는 과정을 거듭했다"면서 "그 와중에 지금의 아내를 만나 행복한 가정을 일군 게 가장 잘한 일이고, 저야말로 어떤 욕심도 없이 다 내려놓는 자연인의 삶을 살게 될 것같다"고 말했다.
방송인 윤택은 붙임성이 좋다. 누구한테나 겸손하고 인사를 잘한다. MBN '나자연' MC 발탁도 이런 평판이 결정적으로 좌우했다는 후문이다. 스페셜인터뷰를 위해 이날 상암동 <더팩트> 사옥을 찾은 그는 편집국에서 만나는 기자들에게도 일일이 인사하고 환한 모습으로 사진을 찍어주는 등 특유의 붙임성을 보여줬다. 다시 한번 프로방송인다운 면모를 보는 것같아 흐뭇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