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강일홍 기자] 영화 '사랑은 없다'(장훈 감독)는 반민정, 김보성, 정소영, 박노식, 이철민 등이 출연한 작품으로 2016년 11월 7일 개봉됐다. 과거의 영광 속에 살던 영화배우이자 40대 가장 동하(김보성)가 첫사랑 은정(반민정)을 만나는 이야기다. 안타깝게도 관객수는 겨우 284명(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공식)에 불과했다.
영화로는 차마 언급하기 낯뜨거울 만큼 초라한 성적표임에도 대중적 관심과 호기심은 컸다. 배우 조덕제가 촬영 도중 합의되지 않은 상황에서 상대 여배우(반민정)의 속옷을 찢고 바지에 손을 넣어 신체 부위를 만지는 등의 강제추행치상 혐의로 기소되면서다. 두 배우는 끝없는 진흙탕 싸움을 벌였고, 영화계를 넘어 껄끄러운 사회적 이슈로 번졌다.
영화촬영 현장에서 시작된 성추행 논란은 이후 여성계 및 일부 영화단체 등이 가세하고 목소리를 내면서 영화계에도 갈등과 파장을 몰고왔다. 당시 익명 A씨로 언급된 반민정과 조덕제의 성추행 공방은 고의성 여부에 따라 법의 판단도 바뀌는 등 진통을 겪었다. 2016년 12월 열린 1심에서 검찰은 조덕제에게 징역 5년을 구형했지만 판결은 무죄였다.
◆ 정당한 연기행위 '1심 무죄' vs 고의성 인정 '2심 유죄', 최종 결론은 유죄
1심 판결 후 여성단체들은 "여성에 대한 폭력을 법원이 묵과한 것"이라며 반발했다. 여배우 측의 요청에 따라 공개재판으로 전환된 2심에서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여성 방청 연대' 회원 80명이 직접 재판을 지켜보기도 했다. 2017년 10월 13일 서울고등법원은 조덕제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를 선고했다.
'2심 유죄' 판단은 단순 연기행위가 아닌 고의성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1심을 뒤집은 이 판결은 또다른 논란을 불렀다. 감독의 지시에 따른 연기를 한 배우가 성추행범으로 몰리는 일이 타당한지에 대한 지적이다. 이는 조덕제의 입장을 고스란히 대변한 셈이지만, 유죄 판결 직후 일부 영화인단체와 여성단체의 압박에 굴복했다는 주장까지 불거졌다.
앞서 1심 재판부는 "강제 추행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선 상대 여배우의 진술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 전체 스토리, 감독의 의도, 그리고 배우가 연기 기준으로 삼는 시나리오, 콘티, 감독의 지시 등 모든 고려사항을 전제로 판단해야 한다"면서 "성추행 혐의는 감독의 지시에 따른 연기 행위로써 정당행위로 판단된다"고 판결문에 적시했다.
◆ '희망의 불씨' vs '주홍글씨' 진실공방, 40개월 공방 뒤에도 여전히 진행형
상대 여배우 반민정이 대법원 정문 앞에서 처음으로 실명을 밝히고 나선 것은 2015년 4월 조덕제가 영화촬영 현장에서 성추행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지 40개월 만이다. 반민정은 지난 13일 대법원이 강제추행치상 등 혐의로 기소된 조덕제의 상고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하자마자 직접 나서 쌓인 속내를 털어놨다.
반민정은 "익명으로 법적 절차를 밟아 문제를 해결하는 동안 (조덕제는) 2심에서 유죄판결이 나자 성폭력 사건의 사실관계를 왜곡하고 이재포 등을 동원해 나에 대한 악의적인 허위사실을 지속해서 유포했다"면서 "(이로인해) 대중들이 저에 대한 편견을 갖게 했고 이것은 악플 등 추가 가해로 이어져 삶을 유지할 수조차 없게 됐다"고 울먹였다.
누군가에겐 '희망의 불씨'가 또다른 누군가에겐 '주홍글씨'로 남을 수 있다. 반민정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며 성폭력 피해자들과 연대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조덕제는 "(대법원) 판단을 받아들이지만 존중할 순 없다"며 영화촬영 당시 영상을 SNS에 공개했다. 법정 싸움이 끝났는데도 양측의 공방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원인은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