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스토리' 주연배우 김희애 인터뷰
[더팩트ㅣ강수지 기자] '우아하다'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데뷔 36년 차 배우 김희애(51)가 의미 있는 연기 변신을 꾀했다. 캐릭터, 캐릭터가 구사하는 언어 모두 도전 과제였다. 선배 배우들 사이에서 오랜만에 '막내'가 돼보는 따뜻한 경험도 했다.
김희애는 12일 서울 종로구 팔판길 한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났다. 김희애가 주연배우로 활약한 '허스토리'(감독 민규동·제작 수필름)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관련 재판 사상 처음으로 보상 판결을 받아낸 관부 재판을 그린 작품으로 27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허스토리'에서 1990년대 부산의 당찬 여사장 문정숙 캐릭터를 연기한 그는 극에서 사투리, 일본어를 유려하게 구사해야 했다. 문정숙은 관부 재판 당시 원고단을 지원한 실존 인물 김문숙 단장을 각색한 인물이다. 이번 작품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김희애다.
"최선을 다해서 연기했어요. 제가 해왔던 것과는 다른 캐릭터여서 관객분들에게 다른 면모를 보여줄 수 있어서 좋아요. 많은 분들이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처음에 사투리가 잘 안되니까 극 전체가 엉망이 되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사투리를 구사하는 여러 사람과 대화를 많이 해서 제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했죠. 일본어는 촬영 시작 석 달 전부터 연습했고요. 열심히 했는데 감독님 지적을 많이 받아서 속상했어요(웃음). 지금도 툭 치면 긴 대사를 바로 외울 수 있어요(웃음)."
"실존 인물이라 더 와닿았고, 연기하기가 조심스러웠어요. 아직 살아계신 분을 연기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잖아요. 언젠가는 꼭 누군가의 인생을 연기해보고 싶었죠. 굉장히 영광스러운 일이에요. 처음에는 문정숙 캐릭터의 당당하고 멋진 면모가 통쾌하고 대리만족이 돼서, 시나리오가 좋아서 작품을 하게 됐어요. 그런데 작품에 임하다 보니 몰랐던 역사적 이야기도 알게 돼 부끄러웠습니다. 연기를 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진심을 다해서 연기하는 것 밖에 없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허스토리'에는 다수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가 등장한다. 그 가운데에서도 배정길(김해숙 분), 박순녀(예수정 분), 서귀순(문숙 분), 이옥주(이용녀 분) 등이 관부 재판을 이어나가는 주축이 된다. 김희애가 연기한 문정숙은 이들과 함께 6년간 부산-시모노세키를 오가며 일본 정부에 당당히 맞서 함께 싸웠다. 김희애가 오랜만에 선배 배우들과 대거 호흡을 맞춘 소감은 어땠을까.
"다른 현장에서는 제가 늘 제일 선배였어요(웃음). 후배들이 '선생님'이라고 부르는데 제가 반항해도 계속 그렇게 부르더라고요(웃음). 이번에 선배들과 연기해서 큰 의지가 됐죠. 정말 편안하고 좋았어요. 또 작품을 보면서는 각기 다른 인생을 살아왔지만 같은 운명을 지닌 분들과 함께한 것이 큰 울림으로 다가왔죠. 할머님들과 동지애도 느껴졌고, 할머님들의 개성, 사연이 마음에 와닿았어요."
김희애의 도전은 일상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평소 자신에게 하루의 숙제를 내주고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것, 못했던 것을 차곡차곡 이뤄나가고 있다. 운동, 외국어 공부, 피아노 등은 물론이고 자연을 보면서도 배우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일을 해서 그동안 개인적인 시간이 많이 없었어요. 남들이 다 이미 한 것을 저는 이제 하는 거예요(웃음). 정신이 건강해야 몸도 건강하게 되는 것 같은데요. 이렇게 열심히 하는 게 정신 건강에도 좋은 것 같더라고요. 피아노도 치고 공부하면서 하루를 보내는데, 스스로 '행복하다' '너 멋있다' '대단하다' 칭찬도 해줍니다.(웃음). 제 자신이 잘 모르는 것이 있으면 부끄럽기도 하고 놀라기도 하고 겸손해지기도 하고 그래요. 그리고 칭찬받으면 정말 좋아요. 제 나이 되면 안 그럴 것 같죠?(웃음). 피아노 선생님이 '잘했다'고 말해주면 참 좋더라고요. 짬짬이 소소한 것들에 시간을 내면 나중에 큰 게 되는 것 같아요. 저에게 영양분을 주는 과정이에요(웃음)."
이번 작품을 통해 삶에 큰 자극을 받았다는 김희애다. 선배 배우들을 보며 "저에게도 오래 일할 수 있는 '기적'이 오길 바란다"는 김희애는 "후배 배우들에게 좋은 면모를 보이고 싶다"면서 쑥스러운지 "크크크"하고 웃었다. 배우로서도, 한 인간으로서도 궁극의 발전을 도모하는 김희애가 앞으로 어떤 작품, 활약으로 대중에게 귀감이 될지 기대가 쏠린다.
"'허스토리' 속 당당한 인간의 면모를 보여준 그들이 자랑스럽고 감동스러워요. 저도 그분들로부터 자극을 받았어요. 할머님들도 당당하게 목소리를 냈는데 저도 좀 더 똑똑해지고, 능동적으로 행동하고, 주변을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반성했습니다."
"제 나이 되면 체력이 확 떨어져요. 기억력도 없어지고요. 일을 오래 할 수 있다는 건 정신, 육체적으로 큰 축복이죠. 그리고 일을 오래 한다는 것은 저희 직업 특성상 정말 크게 감사할 일이에요. 제가 '오래 할 수 있을까? 가능할까?' 싶은데, 그러기 위해서는 열심히 뇌 운동을 해야 할 것 같아요(웃음). 운동도 열심히 하고요. 앞으로 제가 어떤 작품을 하게 될지 저도 궁금해요. 어렸을 때는 제가 지금 이 나이까지 현역으로 왕성하게 활동할지 몰랐던 것처럼, 저에게 행운이 주어져서 나문희 선생님, 이순재 선생님 등처럼 오래 연기할 수 있게 된다면 그 자체로 기적일 것 같아요. 당장 내일 일도 모르는 거잖아요. 노력할 거예요. 후배들에게도 좋은 면모 보여야죠. 크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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