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헌 "다른 작품서 '분명 대본에 없을 것'이란 생각 든 배우들 있었다"
[더팩트|권혁기 기자] 대한민국에서 연기 잘하는 배우라고 하면 딱 떠오르는 배우들이 있기 마련이다. 누군가는 송강호를 꼽을 것이고, 다른 이는 최민식, 황정민, 설경구 등을 생각할지도 모른다. 김윤석을 좋아하는 팬도 있을 것이며 한석규나 유해진, 오달수, 김혜수, 이정재, 정우성, 류승룡을 '연기 잘하는 배우'의 기준으로 꼽을지도 모른다.
그 중에서 배우 이병헌(48)은 연기로 비난할 수 없는 배우임은 확실하다. 연기 외적인 부분 때문에 신문 사회면에 등장한 적이 있는 그는 항상 정공법을 선택했다. 자신을 둘러싼 잡음에 대해 공식 사과하고, 실망한 팬들에게는 연기로 보답했다.
오는 17일 개봉될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감독 최성현·제작 JK필름)도 이병헌의 진국 연기를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이병헌은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주먹 하나 믿고 평생을 살아왔지만 자존심만 남은 한물간 전직 복서 김조하를 연기했다.
이병헌은 김조하 그 자체였다. 이병헌은 매 작품마다, 전작의 느낌을 지우고 새롭게 태어나는듯 하다. 그는 지난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팔판동 한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나 자신만의 연기 노하우에 대해 "대본을 많이 읽는다기보다는 그냥 아이디어를 계속 생각하는데, 디테일을 찾으려고 하면 끝도 없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것만이 내 세상'은 특히 이병헌의 지인들이 실제 이병헌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말한 작품이기도 했다.
"제 얘기라기 보다는, 다른 영화들을 봤을 때 순간순간 '어떻게 저런 생각을 했지?'라는 생각이 드는 연기가 있어요. '저건 분명 대본에 없었을 거야'라는 배우는 그 대본에 완전히 빠져들었다는 의미죠. 그렇게 하면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게 있다고 봅니다. 저는 그렇다고 믿어요. 그러다보면 그냥 '조하는 이렇게 할 것 같아'라고 생각하게 되죠. 디테일을 연구한다기 보다는 캐릭터에 젖어 들고 상황에 잘 스며들었다면 연기는 따라온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은 '그것만이 내 세상'에 촬영 동안 조하로 살았던 이병헌과 나눈 일문일답.
-완성된 영화를 본 소감부터 얘기한다면?
억지스럽지 않은 웃음과 눈물 코드가 잘 버무러진 가족영화라고 생각합니다. 흔히 말하는 JK필름 영화의 성격, 신파에 뻔한 공식이라고 할 수 있는 그 부분에 대한 선입견은 없어요. 기자회견 때도 얘기했지만 뻔한 것이라는 것은 모든 영화에 다 있거든요. 아주 드물게 그런 공식을 깨려고 하는 작품이 있지만 대부분이 그 공식을 따라간다고 봅니다. '결'이 어떻게 다르냐는 것이죠. 다른 배우가 캐스팅이 됐다면 자기만의 표정과 감정으로 다른 결을 보여줄 뿐이지 다 비슷한 게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대부분의 영화에 좋은 놈이 있고 나쁜 놈이 있죠. 정의가 있고 그걸 따라가는데 결국에는 공식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부분인거죠. 웃음과 눈물이 있다고 늘상 봐온 영화라고 구분지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저도 개인적으로는 억지 웃음이나 눈물을 짜내는 영화를 싫어하는데, 웃고 나서 '내가 왜 웃었지? 내가 왜 울었지?'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런 면에서 '그것만이 내 세상'은 담백한 영화에 속했습니다.
-조하라는 캐릭터에 끌린 이유는?
건조한 선인장 같은 인물인데 그게 좋았어요. 거침과 쓸쓸함이 공존하는 캐릭터요. 좋지 않은 기억들이 해소된 후 보상 받아야한다고 생각하는데, 관객 입장에서는 그렇게 조금씩 조하라는 캐릭터에 몰입돼 가는 거죠. 어딘가 풀지 못한 분노가 있을 것이고 가족 안에서만 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처음에는 원망이 더 컸죠. 그래도 적어도 엄마(주인숙/윤여정 분)와의 대화에서 풀어나갈줄 알았지만 엄마는 조하에게 동생인 진태(박정민 분)를 더 걱정하잖아요. 저도 촬영하면서 해소가 되질 않더라고요. 자기만 생각하며 먹고 살기에도 힘든데 서번트 증후군의 동생을 책임을 진다는 건 조하가 순수한 인물이기 때문이죠. 사실 오늘만 생각하고 내일은 생각하지 않는 인물이잖아요. 굉장히 힘들고 어려운 일인데 그런 부분이 조하에게 있었죠. 끝까지 쓸쓸한 조하, 그 정서가 좋았어요.
-주변에서 어떤 부분 때문에 실제 성격과 비슷하다고 한 것인지?
딱 찍어서 얘기하지 못하겠는데 친한 지인들이 '완전 너랑 비슷한데?'라고 하더라고요. 회사 직원들은 '이번에 연기하지 않으셨던데요?'라고 하더라고요.(웃음) 먹는 모습은 완전 접니다. 이번 영화에서 먹는 장면이 많이 나왔는데 조하 캐릭터와 비슷한게 조하는 배가 고프지 않아도 먹을 게 있으면 일단 먹어둬야한다는 게 있잖아요? 저도 어렸을 때 그런 모습들을 봐온 게 있거든요. 조하가 엄마의 집에 들어가 물과 기름처럼 있을 때 엄마가 갑자기 전복과 낙지를 쌓아놓고 있던 장면이 있는데 계속 바로 나가지 않고 뜸을 들이는 장면이 있었어요. 결국에는 진태만 챙겼는데 그런 모습이죠. 실제 저도 입에 많이 넣어야 맛이 느껴지는 편이라 공감이 됐죠.(웃음)
-'싱글라이더'에 이어 이번에도 입봉(데뷔) 감독 작품이다.
솔직히 고민되는 부분도 있어요. 과연 이 사람이 가진 연출 색깔은 무엇인지, 다른 부분에서 검증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요. 잘은 모르지만 믿고 맡겨야하는 상황들이 있으니까, 일단 마음을 결정하면 믿고 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작업하는 동안 그 사람의 세계를 펼칠 수 있도록 함께 해줘야 한다는 것이죠.
-실제 격투기를 좋아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네. 조하를 보면 동네 양아치, 깡패 같은 인물이지만 순수하다는 점이 좋았어요. 실제로 어렵고 힘든 경험을 했지만 오히려 순수하고 바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주변에 있거든요. 조하는 절대 영화적인 캐릭터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진짜 한가지만 하는 사람들을 보면 순수한 매력이 있거든요.
-영화 촬영에 있어 코믹한 애드리브를 많이 고민한다고 들었다. 특별히 어떤 준비를 하나?
대본을 보고 얘기를 하는 편이죠. '내부자들' 때는 화장실 디자인에 대해 얘기를 했는데 감독이 좋으면 미술감독한테 얘기를 했겠죠? 이번에는 진태가 똥을 싸는 장면에서 누가 지나가는 게 어떻겠냐고 했는데 사람이 필요하니까 미리 조감독한테 얘기해 준비를 했더라고요. 늘 고민하는 지점인데 제가 너무 지나치면 어떡하나, 객관성을 잃어버리면 어떡하나 고민을 하죠. 근데 저는 질보다 양이에요.(웃음) 많이 얘기해서 그 중 필요한 것만 써달라고 하는데, 제 센스가 무뎌질까 걱정을 하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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