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권혁기 기자] 무섭습니다. 요즘 아이들의 발육 상태가 과거와 다르다고 하지만, '어른을 흉내내는' 연령대도 함께 내려가는 것만 같아서 말이죠.
몇 해 전 아내와 함께 놀이동산인 L월드에 놀러 간 적이 있습니다. 주말에는 사람들이 붐비니 평일 연차를 사용해 가기로 결정했고, 예상대로 놀이기구 대기 줄이 그렇게 길지 않았습니다. L월드 야외 구역 쪽에는 흡연구역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곳에서 깜짝 놀랄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교복을 입은 남녀학생들(공학이었는지 같은 교복차림)이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었습니다. 평일에 교복을 입고 벌건 대낮에 흡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운다는 건 저로서는 컬처 쇼크에 가까운 충격이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담배'는 금기였습니다. 물론 일찌감치 배우는 친구들이 있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어두운 밤 골목길이나 공터에서나 피우는 정도였지 교복을 입고 길에서 버젓이 피운 친구는 거의 없었습니다. 실제로 제 친구는 길에서 담배를 피웠다가 사복 경찰에게 가벼운 터치(?)와 훈계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린아이들이 많이 찾는 놀이동산에서 교복을 입고 흡연이라니요. 당장에 달려가 훈계를 하고 싶었지만, 마음과 달리 '지이부지(知而不知, 알면서도 모르는 체함)'하게 됐습니다.
획일주의와 집단주의가 강한 일본에는 '이지메'라는 게 있는데요. 집단 속에서 튀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인 이지메가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왕따'가 됐습니다. 이 왕따는 전학생을 따돌리는 '전따', 반에서 따돌리는 '반따', 은근히 따돌리는 '은따' 등 다양하게 세분화됐습니다.
지난 2014년 개봉된 영화 '우아한 거짓말'은 왕따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중학생 천지(김향기 분)와, 동생이 죽은 이유를 찾아가는 만지(고아성 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반에서 우수한 학생이었던 천지는 어느날부터인가 친구 화연(김유정 분) 등으로부터 '은따'를 당하게 됩니다. 자신이 있는데도 나머지 친구들은 서로 카톡으로 천지의 흉을 보기도 하죠.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을지, 천지에게 몰입해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중고등학교에서 일어나는 왕따 문제가 신문 사회란에서 사라지게 된 요즘, 초등학교에서 집단 폭행 사건이 발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바로 배우 윤손하의 아들과 모 대기업 총수 손자가 다니고 있는 S초등학교에서 학교 폭력이 자행됐다는 것이죠.
내용은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4명이 지난 4월 학교 수련회에서 같은 반 친구 1명을 담요로 덮고 야구방망이로 폭행했으며 물비누를 우유로 속여 억지로 마시게 했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피해 학생은 근육세포 손상으로 인한 횡문근융해증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는 등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그러나 가해 학생들이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았고, 재벌 손자는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이하 학폭위) 심의대상에서 빠졌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여론의 비난은 '우선'적으로 윤손하에게 쏟아졌습니다. 어찌보면 윤손하 측의 공식입장이 화를 키웠습니다. 윤손하 측은 "그저 방에서 이불 등으로 장난을 친 것이었고, 그 시간은 몇 초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다"면서 "방송이 피해 부모의 진술만 일방적으로 다루었다. 야구 방망이도 스티로폼으로 감싸진 플라스틱 방망이었다"고 해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억울한 부분이 많이 있었지만 피해 아이 부모를 만나 눈물로 사죄했다. 필요한 조치도 약속했지만 쉽게 받아들여 주지 않으셨다"고도 했죠.
윤손하가 왜곡보도를 운운하며 변명조의 공식입장을 밝히자 대중은 싸늘한 시선을 보냈습니다. 그러자 윤손하 측은 변명으로 일관한 초기 대처에 대해 반성한다고 다시 한 번 입장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서울시교육청 조사 결과 윤손하 측의 주장과 달리 S초등학교 학교폭력과 관련해 부적절하게 처리됐다고 발표되자 윤손하에 대한 KBS2 '최고의 한방' 하차 요구가 빗발치기도 했습니다.
S초등학교 집단 폭행 사건이 충격적인 내용이기도 하지만 더 관심을 받은 이유는 윤손하라는 연예인의 아들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더욱 주목할 점은 가해자 명단에서 아예 빠져버린 모 재벌 회장의 손자에 대한 '금수저'스러운 조치 때문이죠.
학교폭력과 관련된 학생들의 진술서 18장 중 목격자 진술이 담긴 6장이 사라졌다는 것, 학폭위 구성원 중 학교전담경찰관을 배제하고 교사를 참여시켰다는 점에서 사건의 은폐·축소 움직임이 명백해 보입니다. 또한 학교장이 피해 학생 학부모에게 전학을 유도했다는 것 역시 충격적입니다. 사실이라면, 그런 인성을 가진 교장 밑에서 학생들은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아직 좀 더 조사를 해봐야겠지만, 가해 학생들은 이번 일로 사회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게 될까요? 다행스럽게도 잘못을 뉘우친다면 좋겠지만 '아~ 이렇게 해도 되는구나. 다 막아주시는구나'라고 생각해 똑같은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아무리 '가시가 있어도 함함한 고슴도치사랑'이라고 하지만, 정상적인 훈육이 그리도 어려운 것일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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