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 이하나 "하루하루 데드라인 두려고요"
[더팩트 | 김경민 기자] 배우 이하나(35)가 본래 얼굴을 지우고 새로운 얼굴을 찾았다. 변화하려는 노력을 성공적인 변신으로 이끌기는 쉽지 않은데, 이하나는 그 어려운 과제를 무사히 해결했다.
이하나는 유독 개성 강한 배우로 여겨졌다. 그만의 색깔을 확고히 다지는 데 효과적이었지만 색깔이 강할수록 다른 색깔은 소화할 수 없다는 편견을 심을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OCN '보이스'의 강권주는 이하나라는 이름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를 바꾼 전환점이 됐다.
"이전 연기했던 캐릭터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으면 좋겠다는 감독과 작가의 바람도 있었어요. 내게서 보지 못한 모습을 하나씩 봤으면 좋겠다고요. 아마 그 맥락에서 여러 톤이나 표정을 시도했어요. 예를 들면 고개를 뻣뻣하게 들고 눈만 내리까는 표정이 내게는 없거든요? 그런데 권주는 강단도 있고 자존심도 있는 사람이라 그런 단단한 사람들의 버릇 같다고 생각해서 연기했어요."
이하나의 연기는 실제 이하나와 무척 닮은 느낌을 자아냈다. 주로 해맑고 어리바리하고 사랑스럽고 독특한 캐릭터의 전형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처럼 그동안 캐릭터에 그의 민낯을 투영했다면, '보이스'의 강권주는 색다른 메이크업을 시도한 결과물이었다. 도전은 극 초반 자신조차 불안하게 했지만 '보이스' 제작진의 뚝심 있는 신뢰를 등에 업고 헤쳐나갔다.
"아무래도 감독이나 작가가 얼마나 믿어주고 기대를 해주느냐에 따라 선택이 좌우되는 것 같아요. '보이스'에서도 제작진이 끝까지 내 의지가 돼줬어요. (강권주 캐릭터를 설정할 때)수사나 사건해결에 있어서 감정이라는 게 전혀 불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딱딱하고 로봇 같다는 반응을 예상 안 한 건 아니에요. 그렇지만 설득이 안 된다고 해서 아닌 걸 맞는 척하면 안 되잖아요. 그런 주관이 있었어요. 작가도 끝까지 소신 있어서 지금처럼 해주면 된다고 해줬어요.
강권주는 내 실제 성격하고 많이 다르죠. 좋은 것 싫은 것 감정이 얼굴에 다 드러나는 편이어서 유치원 생활기록부에도 그렇게 적혀 있어요. 표현도 잘하는 편이고요. 강권주의 카리스마가 동경의 대상이죠."
'보이스'는 범죄 현장의 골든타임을 사수하는 112 신고센터 대원들이 펼치는 수사물이다. 강력계 형사 무진혁(장혁 분) 아내와 112 신고센터 대원 강권주의 아버지를 살해한 연쇄살인자를 쫓는 이야기를 골자로 여러 얽히고설킨 사건들이 긴박하게 그려졌다.
이하나는 스릴러 뺨치는 내용 때문에 이하나도 밤이 아닌 새벽 4시에 일어나 대본 '열공'을 했다. 살해현장에서 연기할 땐 10번 넘게 NG를 내고 스스로에게 화를 내기도 했다. 자신과의 싸움으로 치열했지만 스태프가 있는 촬영 현장은 모든 것을 달래주는 감동을 선사했다.
"촬영할 때 꾸는 악몽이 있어요. 촬영장에 늦게 도착하거나 소품이 없는 상황 같은 거죠. 이번에는 그런 꿈을 한 번도 꾼 적이 없어요. 촬영 현장은 참 힘든 상황이죠. 시간 압박, 잠과 싸우는 상황이 애틋함을 주더라고요. 같은 난관에 부딪히면서 동지애라고 할까요. 사람 마음에 걸리는 게 있으면 힘들거든요. '보이스' 현장에서는 그런 게 없었어요. 언제 어디서나 '강센터'라고 밝게 불러주고 건조하고 삭막할 수 있는 공간을 음악으로 덮어줬어요. '보이스' 때문에 촬영 현장을 보는 눈이 높아져서 큰일이에요."
이하나는 진지한 캐릭터에 어깨가 짓눌릴 법도 했지만 오히려 그 고통을 온전히 즐기고 소화했다. 모든 걸 쏟고 몰두하는 기회를 얻었다는 것이 큰 성취이자 성과였다. 그래서 '보이스'는 그만의 노스텔지아로 추가됐다.
"이번에 신기한 경험을 했어요. 마음껏 잘 노는 편이 아니에요. 항상 놀면서도 내일 걱정을 한다던가 지난 것을 돌아보거든요. 맛있는 것을 막 먹어도 죄짓는 것 같고 휴식이 휴식이 아닐 때가 있었는데 이번 현장만큼 저녁에 편히 쉬워본 적이 없어요. 불사를 수 있는 기회도 사실 우리에겐 쉽지 않거든요. 노고가 나쁘지만은 않았어요.
나중에 내가 이만큼이나 담아냈네 놀랄지언정 항상 모자라다고 생각하고 담으려고 하는 편이에요. 많이 하는 한이 있어도 욕심쟁이죠. 생각이 많고 피곤해 보일수는 있어도 그게 편하고 익숙해요.
재밌는 게 가끔 학교 다닐 때 꿈을 꾸는 편이에요. 그리운 노스텔지아가 이런 쪽이거든요. 좀 더 즐겁게 학교 생활하는 것에 있어서 아쉬움이 있어요. 현장은 어떻게 보면 학교 같아요. 각자 역할이 배정돼 있고 그걸 그날 해내는 목표를 가지고 있고 사람들과 밥도 먹고 인사도 하고 감독이 선생 같고 눈치도 보고 졸기도 하고(웃음). 이번에 학교에 대한 꿈을 꾸지 않았어요. 촬영이 끝났으니 또 꿀 것 같지만."
음악적인 능력까지 겸비한 이하나는 연기자보다 종합예술인 느낌을 풍긴다. 할 수 있는 것이 많다는 것은 행복하면서도 동시에 고민스러운 부분이다. '보이스' 강권주도 남들과 다른 특별한 청각 능력을 저주이자 재능으로 안고 사는 인물. 이하나는 강권주로 살아가면서 자신의 직업에 대해서도 되돌아봤다.
"이 부분은 조금 숙제로 느끼는데 주목받는 것에서 만족감이나 성취감, 기쁨을 잘 못 느끼는 편이에요. 아무래도 연기자는 현장에서도 수십 명 주목받아야 하는 직업인데 정말 사랑받는 캐릭터이자 사람이 된다면 정말 행복하겠죠. 지금은 조금 부족해요. 더 노력해야죠.
진짜 좋아하는 걸 앞뒤 안 보고 하는 거죠. 하루하루 데드라인을 두려고요. 데드라인이 물음표였는데 점점 그게 사라질 것 같아요. 진짜 쏟고 비워내고 해소하고 스스로에게 상도 주고 개운하게 쉬어보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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