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권혁기 기자] 잘 짜여진 심리스릴러를 연기했기 때문일까? 배우 조진웅(41·본명 조원준)이 영화 '해빙'(감독 이수연·제작 위더스필름·공동제작 영화사 불) 생각에 불면증을 호소했다.
'해빙'은 한 때 미제연쇄살인사건으로 유명했던 경기도의 한 신도시에 내과의사 승훈(조진웅 분)이 이사를 가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고 있다. 강남에서 운영 중이던 병원 도산과 함께 이혼 등으로 어려운 시기를 겪던 승훈은 치매아버지 정노인(신구 분)을 모시고 정육식당을 운영하는 성근(김대명 분)의 건물 원룸에 세를 든다. 정노인이 수면내시경 중 가수면 상태에서 흘린 살인 수법의 고백과 같은 말을 들은 승훈은 부자를 의심하게 되고, 때에 맞춰 살인사건이 다시 발생하면서 승훈은 공포에 휩싸인다.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팔판동 카페에서 만난 조진웅은 "'해빙'을 생각하면 잠이 오질 않는다. 오늘도 새벽 4시에 깼다. 자는 도중에도 몇 번이나 깼다"고 대뜸 말했다. 정확한 이유가 궁금했다.
"이 아이는 버림받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무슨 말인고 하니, 저는 아이가 없습니다만 애를 보고 예쁘다고 말하는 스타일이 아니거든요. 어떤 작품이 개봉을 앞두고 있으면 '모날 거 없는 작품이잖아? 보고싶으면 보든가'라는 식이었죠. '소중하고 예쁜 아이인데, 나왔으니까 알아서 봐주시겠지'라고 바라는 느낌이었다면, '해빙'은 성격이 다른 아이인 것 같아요. 되게 예민한 아이이고, 불안해서 아빠 허벅다리 뒤에 숨어 있는 아이랄까요? 그래서 걱정도 되고 긴장도 되는 거죠."
다음은 '해빙'으로 인해 잠도 잘 못자고, 촬영을 위해 살도 빼야 했던 조진웅과 나눈 일문일답.
-오랜만에 쫀쫀한 한국형 스릴러가 나온 것 같다. 본 소감은?
아쉬운 부분도 많지만 감독님, 동료 배우들과 이정표를 따라 잘 간 것 같습니다. 시사회를 마치고 술 한잔 마시면서 그런 얘기를 했어요. '안도했다'고요. 물론 아쉬움이 남지만, 촬영감독님이 '소원수리 받을 시기는 지났고, 관객들 맞이할 시간'이라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작업을 할 때는 모르지만 언제나 작업이 끝나면 아쉽더라고요. 다른 영화와 달리 제 속으로 더 많이 들어가야 하는 작업이었죠. 민낯이 드러난 기분이었습니다. 어두운 심리를 따라 느끼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처음 시나리오 책을 보는데 쑥 넘어가더라고요. 그래서 감독님을 뵙고 싶다고 했고, 만들어보자고 했죠. 이렇게 깊게 들어갈지는 몰랐어요.(웃음) 배우로서는 신명나는 일이죠. 카메라에 맞춰 연기한 게 아니라 그 공간에 가서 느낀 연기를 했는데, 참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그 신기한 경험을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준다면?
계산된 표정이 하나도 없었어요. 배우가 상상한대로만 연기하면 재미가 없거든요. 책과 달리 계산되지 않은 행동들이 나올 때, 그 안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기에 통쾌함을 느꼈죠.
-물론 신명은 느꼈겠지만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사실 고민이 많았죠. 모든 영화가 드렇지만, 어떤 쇼트도 대충갈 수 있는 장면이 없었습니다. 하나의 카테고리가 잘못 연결되면 모든 게 어그러지니까요. 이정표를 정확하게 찍고 가지만, '꺼리'가 많은 작업이었던 것 같습니다.
-극 중 승훈은 슬럼프에 빠진 중년의 남자였다. 조진웅 배우에게도 슬럼프가 있었다면?
저는 따로 없었지만, 승훈이처럼 극단적인 상황까지 가게 남겨두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대화를 했겠죠. 사실 승훈이란 캐릭터를 만났을 때 처음에는 맞지 않는다였어요. 그래서 상황에 호소하기 위해 감독님을 잡고 매달렸죠. 살을 뺀다는 기분이었습니다.
-실제로 살을 많이 뺀 느낌이었다.
'아가씨'를 같이 촬영했는데, 옷 사이즈를 맞춰놔서 살이 찌면 안됐었죠. 체중을 많이 줄였어요. 영양 상태가 좋으면 안됐기 때문에 먹는 거는 포기했죠.(웃음) 술은 마셔야겠기에 술자리에 가면 안주는 엄청 시켰어요. 그리고 눈으로만 바라봤죠. 먹어보라고 하고 바라만 봤어요. '무슨 맛이야'라고 물어보기도 했죠. 제가 원래 안주를 진짜 많이 먹거든요. 고칼로리를 좋아합니다. 촬영 끝나고 제 몸무게로 돌아왔죠.
-첫 의사 역할이었는데, 내시경을 하는 모습이 매우 정교했다.
블루스크린으로 연기하기도 했고요, 실제 내시경 시술 장면을 찍어와서 보고 연습하기도 했습니다. 연출부 한 명이 대장 내시경을 한다길래 다 찍었죠. 간호사들 움직임이나 의사들 움직임을 보고 연습했어요. 차트를 쓰는 모습도 찍어와서, 안경을 움직이는 각도까지 철저하게 연습했습니다.
-다양한 장르에 출연을 하는데, 멜로는 없는 것 같다.
저라고 멜로 감성이 없겠습니까만은, 그런 장르가 온다면 심사숙고할 생각은 있죠. 멜로 영화가 감정의 폭이 크기 때문에 쉽지 않은 장르인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코미디를 제일 좋아합니다. 희극이 제일 어렵기도 하지만 저에게도 코미디 DNA가 조금은 있는 것 같습니다. 옆에서 누가 웃기는 모습을 보면 미칠 것 같아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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