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권혁기 기자] 1989년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가 개봉됐습니다. 강우석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이미연과 김보성, 이덕화, 양택조, 김민종 등이 호흡을 맞췄죠.
영화는 오직 1등만이 살아남는 어느 고등학교 2학년 교실을 배경으로 합니다. 봉구(허석 분)와 천재(최수훈 분)는 은주(이미연 분)와 양호 선생님을 짝사랑했습니다. 은주는 항상 좋은 성적을 유지하면서도 부모님의 집착 때문에 성적에 대한 강박관념에 시달리다 순수한 마음의 봉구에 끌립니다. 봉구와 잠시 현실을 벗어나 야외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즐긴 은주는 다음 시험에서 7등으로 밀려나자 부모님의 차가운 시선을 느낍니다.
은주는 이를 견디지 못하고 "성적 때문에 자식이 부모를 미워하고, 친구가 친구를 미워하게 된다"는 유서를 남긴 채 자살하고, 은주의 책상에는 꽃 한 송이가 놓입니다.
영화가 말해주듯 행복은 성적순이 아닙니다. 필자의 경험을 떠올려 보면, 지난 2001년 뉴질랜드 오클랜드로 어학연수를 떠났을 때 만난 부부가 생각납니다. 서울대 출신으로 결혼에 골인한 부부는 뉴질랜드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1등을 강요하는 팍팍한 삶에 지친 부부는 결혼하고, 축의금으로 받은 500만 원을 들고 무작정 뉴질랜드로 왔습니다.
"주 5일이 보장되는 이곳에서 일이 끝난 후 마시는 맥주 한 잔이 그렇게 달콤할 수 없다. 주말이면 와이프와 바닷가로 나가 누구나 쓸 수 있는 드럼통 바비큐 그릴에 소시지와 고기를 구워 먹는 일상은 한국에서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다." 당시 부부의 남편이 제게 한 말은 16년이 지난 지금도 매우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남편은 채소가게에서 허드렛일을 하고 있었고, 부인은 오클랜드 한 호텔에서 세탁 등을 하면서 지냈습니다.
대한민국 최고 대학교라는 서울대를 졸업했지만, 자신에게 맞지 않는 경쟁에서 빠져 스스로 행복을 찾아 이민을 온 그 부부는 행복해 보였습니다. 아마도 서울대에 입학했을 때부터 줄곧 부담이 있었겠죠. '좋은 대학에 가야 성공한다'는 어른들의 말씀에 1등 대학에 갔지만, 적성에 맞지 않는 전공으로 공부에는 흥미가 떨어지고 그에 따른 직장을 구하기는 더욱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그 부부는 행복을 찾았습니다.
배우 이영애(46)와 고소영(45)이 각각 13년, 10년 만에 복귀했습니다. 이영애는 드라마 '대장금', 고소영은 영화 '언니가 간다' 이후 첫 작품입니다. 당대를 대표하는 여배우들의 복귀에 연예계 안팎의 관심이 쏠렸습니다. 이영애는 여전히 단아했고, 고소영은 확실한 연기변신으로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었습니다.
그러나 성적은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이영애의 복귀작 SBS '사임당 빛의 일기'는 초반 15.6%(닐슨코리아 기준)의 시청률을 보이며 순항을 예고했으나, 경쟁작인 '김과장'에 점점 밀려 한자릿수로 추락했습니다. 고소영이 선택한 KBS2 '완벽한 아내'는 더욱 참담했습니다. 1회 시청률이 3.9%, 2회가 4.9%에 불과했습니다.
'완벽한 아내'는 이후 드라마 전개와 함께 추이를 지켜봐야겠지만, '사임당'의 경우에는 당황스러웠죠. 애초 2013년 MBC가 특별기획으로 '대장금2' 카드를 꺼냈지만 이영애가 고사한 바 있습니다. 당시 김종국 전(前) MBC 사장까지 나서 "오는 2015년 상반기에 '대장금2'를 제작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일신상의 이유"로 출연을 고사했고 '대장금2'는 무산됐습니다.
그만큼 '사임당'은 이영애의 고민이 묻어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임당'은 이제는 식상하다고 할 수 있는 타임슬립이라는 소재, 개연성의 부족, 당위성이 떨어지는 스토리 등이 패착 요인으로 꼽혔죠. 이영애의 연기력에 대한 혹평도 있었습니다.
고소영은 오히려 연기력이 좋아졌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전작 '화랑'의 시청률 저조와, SBS '피고인' MBC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의 선전으로 미래가 불확실합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닌 만큼 시청률로 이영애와 고소영을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왜냐하면 드라마 흥행에는 주연배우 외에 출연진의 연기력, 작가의 필력도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죠.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어쨌든 이영애와 고소영이었으니까요.
NBA 시카고 불스 마이클 조던은 1995년 3월 19일 코트로 복귀했습니다. "돌아왔다(I'm back)"는 짧은 한 마디는 일종의 유행어가 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조던은 복귀전에서 19점을 기록했고, 팀은 인디애나 페이서스에 103-96으로 패하고 말았습니다.
대중은 '조던이 은퇴 이전의 기량을 회복하지 못했다'고 했지만, 운동선수로는 전성기가 지난 서른 두 살에 조던은 3월 28일 뉴욕 닉스전에서 55점을 기록했으며 96, 97, 98년 또다시 3연속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남기며 신화가 됐습니다.
이영애와 고소영을 마이클 조던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두 배우가 10년이 넘게 현장에서 떠나 있었다는 점을 감안해 생각해볼 필요는 있습니다. 제2의 연기인생을 시작한 이영애와 고소영에게 이번 작품이 마지막은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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