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권혁기 기자] 표준전속계약서라는 게 있습니다. 보통 데뷔를 앞둔, 혹은 데뷔한 연예인이 매니지먼트사와 계약을 체결할 때 표준전속계약서를 기준으로 삼아 작성합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2009년 7월 6일 표준약관 제10062호로 대중문화예술인 표준전속계약서를 공시했습니다. 위원회는 대중문화예술인(연예인)들의 정당한 권익을 보호하고 연예산업에서 불공정한 내용의 계약체결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가수 중심 표준전속계약서와 연기자중심 표준전속계약서 2종을 공시했죠.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장기 전속계약에 따른 폐해를 방지하고자 가수의 경우 계약기간은 제한이 없지만 7년이 지나면 아티스트가 해지하기 용이하게 했습니다. 7년을 초과한 경우 '을은 언제든지 이 계약의 해지를 갑에게 통보할 수 있고, 갑이 그 통보를 받은 날로부터 6개월이 경과하면 이 계약은 종료한다'는 단서를 단 것이죠. 물론 장기 해외활동이 필요한 경우나, 군 입대 등으로 실질적인 활동이 7년이 되지 않으면 이 조항은 예외가 됩니다.
이 표준전속계약서는 아티스트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기존 거대 기획사 중 한 곳은 소속 아이돌그룹과 전속계약기간으로 13년을 설정하거나, 자사에서 제작하는 방송에 '출연료 없이' 출연한다는 조항을 넣어 '노예계약'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죠.
7년의 시간은 13년에 비하면 많이 짧아진 것 같지만 길다면 길 수 있습니다. 소속사 입장과 아티스트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그룹이 데뷔하자마자 '빵' 뜨지는 못하니까요. 연습생 시절부터 춤 연습, 보컬 트레이닝, 숙소 지원을 하고, 데뷔 후에는 각종 유류비, 의상비, 식비, 메이크업 등 지속적인 투자가 계속 됩니다. 한 명의 가수를 데뷔시키는데 억 단위의 돈이 투입되기도 하죠.
모든 비용은 서류화되고 비용에 따른 손익분기점을 넘었을 때 비로소 실제 정산이 이뤄지죠. 인기 걸그룹 AOA도 데뷔 3년 만에 정산을 받은 바 있습니다. 물론 정산은 매년 하게 되지만 마이너스가 플러스로 바뀐 시점이 3년이라는 것입니다.
기획사마다 연습생 전속계약을 따로 맺어 기간을 늘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수익이 나기 위해서는 꽤 긴 시간이 걸리는 게 사실입니다.
와썹의 나다(본명 윤예진)와 진주(본명 박진주) 다인(본명 송지은)이 소속사 마피아레코드와 전속계약 해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는 소식이 지난 1일 들렸습니다. 이들은 지난 2013년 싱글 'Wa$$up'으로 데뷔한 7인조 걸그룹입니다.
내용을 살펴보면 나다가 케이블 채널 Mnet '언프리티랩스타3' 이후 음원, 광고, 행사 등 개인 활동을 진행하면서 자신이 일으킨 매출에 대한 정산을 요구했고, 이와 관련해 소속사가 정산서를 보여주고 충분히 설명을 했지만 정산 내용이 표준계약서 약관과 다르다며 진주 다인과 함께 전속계약 해지 소송을 냈다는 것입니다.
마피아레코드는 '언프리티랩스타3'에 출연해 인지도를 높인 나다의 성공을 계기로, 데뷔 이후 큰 활동을 하지 못했던 와썹을 정상 궤도에 올리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다와 진주 다인이 탈퇴를 선언하면서 오는 3월 계획된 와썹의 컴백은 4인조로 진행하게 됐습니다. 나리(본명 김나리) 지애(본명 김지애) 수진(본명 방수진) 우주(본명 김우주)는 여전히 와썹입니다.
와썹과 마피아레코드는 표준전속계약에 의거, 2013년에 7년 계약을 했습니다. 계약상 전속계약 기간이 3년 정도 남은 상태입니다. 이에 앞서 멤버 중 2~3명은 3년, 나머지는 1~2년 연습생 시절을 거쳤는데, 소속사는 '연습생 전속계약'을 따로 체결하지 않고 트레이닝 등 제반비용 일체를 무상으로 지원을 했습니다.
기왕에 소송으로 이어진 이상 정산에 포함시키지 않은 연습생 시절이 변수가 될 수도 있겠고, 정산 내용이 문제일 수 있겠지요. 하지만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서로가 출발할 때의 마음처럼 계약기간 끝까지 윈윈할 수는 없을까요? 가수의 입장에서보면 나다의 경우처럼 어떤 계기로 몸값이 치솟았다면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달라는 게 인지상정일 수 있습니다. 계약서 문구에 얽매어 마냥 신인처럼 대할 게 아니라 상황이 바뀌면 그에 맞게 변화해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그 기간도 1~2년이 아니라 최하 7년이란 긴 시간을 인내하기엔 숨이 막힐 법도 합니다.
하지만 기획사 처지에선 오랜 시간 투자를 아끼지 않은 그룹이 긴 무명시절을 거쳐 이제 막 알려지기 시작할 즈음에 계약해지 소송을 건다면 황당할 수도 있습니다. 양 측이 법적으로 싸우지 않고 내부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까요? 원하던 가수 데뷔를 하면서 마피아레코드와 표준전속계약서에 사인을 했을 때 나다 진주 다인은 기뻐했겠죠? 소속사 역시 방송을 통해 인지도를 높인 와썹을 보고 얼마나 좋아했겠습니까? 호사다마인가요?
어쨌든 나다 등과 마피아레코드 사이에서 어떤 말들이 오갔고, 무엇 때문에 전속계약 해지를 요구했는지는 법정에서 가려지게 됐습니다. 나다 등 3인에게 아쉬운 점은 '무엇이 그들을 보채게 했는가' 입니다. 이제야 막 빛을 보려고 하는 와썹에서 날개를 펼쳐볼 생각도 하지 않고 접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소속사가 어떤 불합리한 대우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인기가 높은 아이돌들도 '7년 징크스'를 깨지 못하고 해체할 때 많이 아쉬워합니다. 정말 큰 문제가 없었다면 처음 약속을 지켰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나마 그게 '아름다운 이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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