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조' 유해진 "현빈 화난 등근육? 화난 얼굴 보여줄 수 있다"
[더팩트 | 김경민 기자] 인터뷰 테이블 위로 석양이 길게 뻗었다. 기분 좋게 나른한 오후, 공기에서 노을 향기가 나는 듯했다. 배우 유해진(47)은 어느덧 황금빛으로 물든 하늘을 보며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한 소절 뽑았다. 그는 자신과 똑 닮은 공간에서 취재진을 맞이했다.
'서른 즈음에' 가사처럼 또 하루는 멀어져 가고, 청춘은 머물러 있지 않지만 유해진은 한결같다. 연기 경력이나 필모그래피로 그를 평가하는 건 너무 단편적인 일이다. 이름에 '믿고 보는' 신뢰를 쌓은 배우는 이제 유유자적할 법도 한데 아직 조금이라도 풀어지면 조이기 바빴다. 스스로 그것을 '치명적인 매력'으로 내세우면서 말이다.
지난 18일 개봉한 영화 '공조'는 유해진의 치명적인 매력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유해진 특유의 재치와 센스 그리고 정공법이 고루 담겼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유해진은 연기자 유해진과 사람 유해진이 '공조'하는 삶에 대해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 '공조' 출연 계기는.
"전체적으로 큰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너와 나의 이야기, 사람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어요. 다른 영화도 그렇지만 사람 이야기가 잘 녹아 있으면 그런 게 좋더라고요."
- (전개와 결말 내용을 언급하며)인물의 감정선은 어떻게 이해했나.
"영화 현장 궁금하죠? 배우들과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해요. '얘가 진짜 이렇게 할까? 안 하면 어떡해? 하긴 해야지. 그럼 이 사람은 안 말리겠어? 말리지. 그럼 이렇게 이야기해야 할 것 아냐?' 이렇게 아이템을 내고 몇 단계를 거칩니다. 애드리브가 금방 결정되는 것 같지만 이런 고민들을 서로 많이 해야 해요. 다들 대본대로 약속대로 움직이는데 갑자기 애드리브를 하면 상대방이 얼마나 당황하겠어요. 매너가 아니죠. 순간적으로 웃기는 아이디어를 내는 것만 애드리브가 아니에요. 그래서 복잡하게 이걸 넉 달 다섯 달 촬영하고 싸매고 있는 거죠."
- 대본에 뭔가 많이 빼곡하게 쓰여 있다던데.
"이런 생각이 꼬리를 물고 나오니까 적는 거예요. 끝까지 안 풀리는 생각, 숙제들을 많이 적어놓죠. 좋은 아이템이 떠오르면 상의해봐야겠다고 적어놓는 게 습관이 됐어요. 머리로 기억하는 배우들도 있는데 저는 머리가 쫓아가질 못해서 적어놔야 해요(웃음)."
- 평범한 연기가 더 어렵지 않나.
"더 어렵진 않아요. 시나리오에 따라 다르긴 한데 진태가 철령(현빈 분)이보다는 모든 면에서 수월한 건 있었어요. 임철령은 준비해야 할 게 많았어요. 몸도 막 그런 거 보여줘야지, 액션 위험한 거 보여줘야지, 북한말 준비해야지. 성강(공정환 분)과 임철령이 직접 액션 촬영하는 것 보면 정말 대단해요. 살짝 때려도 충격이 있을 텐데 몇 신을 오래 싸우잖아요. 그런 거에 비해 힘들지 않았죠. 이런 영화에서 둘 다 잘난 척하면 안 되죠. 현빈이 멋있는 역할이면 받쳐주는 역할도 있어야 해요."
- 배우들이 공들인 장면 중 보람이 드는 장면은?
"임철령이 차기성에게 쳐들어갈 때 빌라 옥상에서 공중에 로프를 확 던지고 뛰어내려서 들어가는 장면이 있는데 예뻐요. 맑고 시원한 느낌이에요. 바다에 뛰어드는 것 같아서 멋있었어요. 제가 나온 장면 중에는 분리수거하는 장면? 하하. 그런 건 아니잖아요. 농담이고 우리 가족이 묘사된 집이라는 공간이 좋았어요."
- 영화 '공조' 제목처럼 촬영장에서 사람들과 공조하는 비결이 있다면.
"편안한 게 좋아요. 배려죠. 편하려면 배려해야해요. 자기만 잘났다고 배려 없이 행동하면 힘들죠."
- 현빈과 호흡을 맞춘 소감은.
"현빈은 보기에도 건강한 이미지로 보이잖아요. 이미지처럼 진짜 열심히 노력해요. 항상 그게 몸에 밴 것 같아요. 연습도 많이 하고 참 무섭게 덤비더라고요. 옆에서 조심하라고 여러 번 이야기할 정도였어요. 배울 게 많아요. 그런 곳에서 자극받고 그러는 거죠."
- 현빈이 먼저 술자리를 갖고 싶다고 했다고.
"현빈 매니저가 '빈이 형 그러는 것 처음 봤다'고 하더라고요. 허물없이 지내려고 한 게 고맙죠. 다가가려고 해도 어깨에 힘만 들어가고 삐딱한 애들이 있는데 현빈은 먼저 와서 한잔 사달라고 하잖아요. 돈은 자기가 많이 벌면서. 하하하. 농담이에요. 그렇게 다가와 주면 좋아요. 다음 날부터 정말 편해지니까요. 쟤한테 이 이야기를 할지 말지 이런 게 없어지고 문득 이런 생각이 났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고 의견도 쉽게 교환할 수 있어요."
- 현빈처럼 화난 등근육 연기가 욕심나진 않았나?
"화난 얼굴은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은데. 하하. 등근육은 음. '럭키'에서도 액션은 보여줬으니까 필요에 의해서? 그런 게 욕심나진 않아요. 지금 그런 욕심을 낸다고 해서 현빈 같은 몸을 가질 수 있겠어요? 전 조심해야 할 때랍니다."
- 극 중 아내 박소연(장영남 분)으로부터 '치명적이다'는 칭찬도 들었는데.
"그런 장면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얼마나 민망하던지."
- 스스로 치명적인 매력을 꼽자면?
"쉽게 놓지 않으려고 하는 게 있어요. 공백이 생기거나 풀어지면 조이려고 해요. 피곤한 삶이죠."
- 유유자적 이미지인데 의외다.
"그런 걸 쫓아가려고 하는데, 큰 그릇이 되고 넉넉한 사람이 되려고는 하는데 그런 사람들이 부럽죠. 큰일에 부딪혀도 허허 웃을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러워요. 풀어질 때 곧추세우는 건 일적인 면으로 좋을지 몰라도 생활할 땐 썩 좋지 못해요. 그렇다고 허허거리면서 살 수도 없고 딜레마죠."
- '럭키' 흥행 이후 주변의 기대가 커졌다.
"부담이 돼요. 예전보다 조금 더, 아니 훨씬 많이 생겼어요. 좋은 모습, 좋은 영화를 보여드려야 하는데. 조금 해소됐는데 거기 너무 눌려 있어도 안 되겠더라고요. '럭키'도 머릿속에서 멀리하고 좋은 작품을 하려면 새롭게 출발해야겠죠."
- 코믹 이미지로 굳을 수 있다는 두려움은 없나.
"두려움은 있죠. 두렵다기보다도 경계를 하는 거죠. 그래서 작품 선택에 신중해져요. 배역이 크고 작은 걸 떠나서 조금 더 다양한 색깔을 가져야 한다는 고민이요. 어떤 때는 진한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짠한 이야기요. '럭키' 때문에 코미디와 연관 지어서 떠올리는 것 같은데 근본적으로 되게 가슴 아프고 애달프고 간절한 연기 해보고 싶어요."
- 2017년을 맞이해 간절한 소망이 있다면.
"간절한 건 그렇게 없고 그저 신났으면 좋겠어요. 예전처럼 신나면 좋겠어요. 주변을 보면 신나지 않은 것 같아요. 신난다는 표현 많이 안 써봤죠? 싱그럽고 새롭지 않나요? 신나라는 말이 되게 신나더라고요. 내가 잊었던 게 이런 건가 싶었어요. 연기자로서 신나기도 하지만 책임져야 하는 것도 많아요. 그래도 즐거운 마음으로 하려고요. 올해는 조금 그런 노력을 해볼까 해요. 너무 곤두서지 말고 조금 신나볼까."
- 요즘 활력소가 되는 신나는 일이 있다면.
"뛰는 거죠. 하루에 10km, 한 시간 정도 뛰는데 힘들지만 기분은 맑아지고 뛰고 나면 머리가 가벼워요. 그게 제일 신나요. 가벼운 런닝화를 신고 새벽 공기를 가르며 동틀 때 뛰며 되게 좋아요. 무엇보다도 살아 있다는 게 좋다는 걸 많이 느껴요. 반려견 겨울이랑 같이 산책할 때도 많은데 겨울이가 저질 체력이어서 같이 뛰면 진짜 힘들어해요. 이제 겨울이 이야기도 묻고 많이 유명해졌구나(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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