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권혁기 기자] 영화 '여교사'(감독 김태용·제작 외유내강)는 제작보고회부터 제목과 관련된 논란에 휩싸였다. 여성혐오로도 불리우는 편견으로, 교사라는 범주 안에 남(男)교사는 없지만 여성만 여(女)교사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게 성차별적 인식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였다.
여성과 남성 사이에서 수용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이미 문제시 됐기 때문에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와 관련 연출자인 김태용 감독은 "섹슈얼한 느낌을 의도한 게 아니라 열등감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런 부분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현장이 교육 현장이라고 생각했다. 시나리오 작성 때부터 정해진 제목"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이와 관련 주연배우 김하늘(39)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지난 5일 늦은 4시 서울 종로구 소격동 라디오엠에서 김하늘을 만나 물었다. 김하늘은 "저는 '여교사'라는 제목이 그렇게(성적차별) 느껴질지 몰랐다. 대본을 봤을 때 당연한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진짜 잘 지은 제목이었다. 의미 여부를 떠나 딱이었다. 그런데 홍보를 하면서 '여교사'가 그런 느낌이 강한지 인지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떻게 홍보를 해야할지 고민도 됐다"고 털어놨다.
'여교사'는 계약직 여교사 효주(김하늘 분)가 정교사 자리를 기다리던 중 치고 들어온 이사장(이경영 분)의 딸 혜영(유인영 분)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고 있다. 혜영은 학교 후배라며 다가가지만 효주는 불편하기만 하다. 그러던 어느 날 무용특기생 재하(이원근 분)와 혜영의 관계를 알게 된 효주는 이를 이용하기로 한다.
다음은 MBC '로망스',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 SBS '신사의 품격'에 이어 네 번째 교사 역할을 맡은 김하늘과 문답.
-쉽지 않은 영화와 캐릭터인데 출연을 결정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감정적으로 쉽지 않아 선택이 어렵기는 했죠. 효주를 연기하면서 제가 감당할 수 있을까? 시나리오만 봐도 기분이 상하는데, 이런 기분으로 계속 연기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배우의 입장에서 굉장히 표현해보고 싶은 캐릭터인 것도 사실이었어요. 거기에 효주라는 친구에 연민이 갔던 게 플러스가 됐죠. 김태용 감독님이 영화를 편집하고 '효주가 짠하고 안쓰럽다'고 하시면서 본인이 쓴 캐릭터와 다르다고 하셨어요. 저도 그 짠함을 느꼈고요.
-효주라는 캐릭터를 악역으로 보는 경향도 있다.
다른 사람에 비해 너무 꼬여 있다고는 생각했어요. 열등감이 가장 컸을 텐데 그게 안타까웠죠. 효주의 환경을 보면, 부모님도 등장하지 않고 커피 한 잔 마실 친구도 없잖아요. 너무나도 똑같은 일상의 연속인데, 누군가와 소통을 하면서 꼬이게 된 그런 친구죠. 회사에서 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남자친구한테 풀지 않잖아요.
-시나리오를 보고 느낌이 왔나?
사회적인 메시지가 있다고 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어요. 제일 매력적인 부분은 사람의 내면을 굉장히 적나라하고 잘 표현할 수 있는 시나리오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더 표현해보고자 했고요.
-선생과 제자의 사랑을 다뤘다.
감독님은 좀 단순하게 사랑이라고 생각하셨던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저는 효주가 결과적으로 사랑이라고 느꼈지만 착각이었다고 생각해요. 선생으로서의 호의로 보는 게 맞지 않을까요? 그래서 혜영에게 '그게 참교사야'라고 대사도 하는 거고요. 그런데 관심이 가던 친구와 혜영의 관계를 알고 더 시선이 갔다고 봐요. 칼자루를 쥐었다고 생각했을 때는 이상한 욕망과 욕구가 효주를 빠뜨린거죠. 그래서 그 칼이 스스로를 향하게 됐던 거고요.
-김태용 감독과 첫 호흡이었는데 연출 스타일이 어땠나?
감정적인 부분은 전적으로 저한테 맡기셨죠. 그래서 감독님께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를 많이 얘기했어요. 촬영 전에 감정 정리를 다 끝낸 셈이었죠. 효주의 감정을 알고 가야 연기가 수월하거든요. 모호한 감정에서는 연기가 어렵죠.
-현실의 김하늘과 다르게 열등감이 심한 캐릭터였다.
진짜 운동장에서 무릎을 꿇는 장면에서는 시나리오를 던져 버렸어요.(웃음) 효주는 초라한데 혜영이는 예쁘잖아요. 의상을 결정할 때 감독님께 '이렇게까지 해야해요?'라고 말할 정도였어요. 자꾸만 감독님이 '너무 예쁜데요?'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감독님. 여기서 더 내려 놓으면 선생님이 아닌데요?'라고 했죠. 김하늘이란 느낌을 아예 빼내고 싶어하셨던 것 같아요. 저는 의상의 톤과 디자인으로 가라 앉히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감독님은 거기에 앵글로도 효주를 표현하시더라고요. 어느 순간에는 '얼굴이 예쁘지 않게 나오는 게 효주'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감정적으로는 힘들지 않았나?
너무 힘들었죠. 학생이 저한테 '선생도 아닌게'라는 장면에서는 진짜 도망가고 싶더라고요. 또 재하가 '당신 착각하지 말라'고 하는 부분도 효주의 감정 안에서 연기하는데 속으로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길래? 뭐가 그렇게 혜영이랑 다른건데?'라는 감정이 생기더라고요. 그러다가 혜영이가 가진 부분이 정말 크다고 느끼고 실체를 알게 된 후로 무너지게 된 것 같아요.
-효주의 감정을 따라가기 위해 떠올린 기억이 있다면?
오롯이 효주를 생각하고 공감했어요. 효주의 상황이 됐을 때 효주를 이해하고 공감해야지 감정이 생기니까요. 제 연기 패턴이 굉장히 신(scene)에 몰입하는 편인데 그러면서도 촬영 외적으로는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는 편이죠. 슬픈 감정이 있는 신이라고 해서 촬영 전에 슬픈 노래를 듣거나 하지는 않아요. 어렸을 때는 그렇게 했지만 지금은 제가 건강한 상태여야 연기가 가능하죠.
-베드신이 두 번 등장한다. 어렵지는 않았는지?
베드신으로 인해 영화의 포커스가 그 부분으로 맞춰지는 게 되게 싫었어요. 어떤 앵글이냐에 따라 야한 영화인지, 감정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인지 차이가 있으니까 그런 얘기를 감독님과 배우들이 많이 나눴죠. 어떤 행위를 한다는 것은 보여줘야하지만 그게 본질을 흐리면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교사'를 통해 얻은 게 있다면?
연기적으로 '낯설음'이 좋았어요. 모니터를 하면서 '내가 저런 표정을 지었어?'라고 하는 부분도 있었죠. 혜영이를 찾아가 '나랑 얘기 좀 해'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그렇게 간절하지 않을 수가 없더라고요. 저한테 굉장히 낯선 느낌이었죠.
-더욱 발전했다는 의미로 들린다.
제가 할 수 있는 한도 안에서 캐릭터를 조금씩 넓혀가고 싶어요. '여교사'는 도전이라고 보다는 용기가 필요했던 작품이었죠. 제 연기를 좋아했던 분들께는 그런 낯설음이 좋은 반응이 있길 바라고요. 김하늘 연기 인생에 출발 지점에 서 있는 캐릭터라는 얘기를 듣고 박수를 쳤죠. 그런 작품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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