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에는 결말까지는 아니지만,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할 독자분들은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더팩트|권혁기 기자] 영화 '가려진 시간'(감독 엄태화, 제작 바른손이앤에이)이 1일 서울 중구 장충단로 메가박스 동대문에서 언론배급시사회를 열었다.
러닝타임은 129분. 2시간 9분동안 엄태화 감독은 극강의 몰입도를 자랑했다. 이만한 시나리오를 쓴 것도, 획기적인 시나리오를 스크린으로 옮겼다는 것부터가 찬사를 받을만 하다. 시쳇말로 '약빨고 연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려진 시간'은 아역배우들로부터 시작된다. 사고로 엄마가 세상을 떠난 후 새 아빠 도균(김희원 분)과 화노도로 이사를 온 수린(신은수 분)은 친구들과 섬에서 진행하고 있는 터널 공사장에 놀러간다. 선생님들은 위험하다고 했지만 폭파 장면이 궁금했던 성민(강동원 분, 아역 이효제 분)과 태식(엄태구 분, 아역 김단율 분), 재욱(아역 정우진 분)과 함께 산을 탔다.
넷은 공사 현장으로 가던 중 작은 동굴 하나를 발견했다. 어린 아이가 간신히 통과할 수 있는 좁은 터널을 지난 끝에 나타난 공간에는 물과 함께 알 모양의 빛나는 돌이 있었다. 수린이가 "뭔지 궁금하다"고 하자 수린을 좋아하는 성민이 물에 들어가 꺼내왔다. 물에서 꺼내진 돌은 이내 빛을 잃어버렸고, 순간 돌이 움직이자 성민은 "깨보자"고 제안했다.
밖으로 나온 넷 중 수린은 어머니가 생전에 선물한 머리핀을 찾기 위해 다시 동굴로 들어왔고, 밖에 나왔을 때는 깨진 돌만 있을 뿐 친구들은 모습을 감췄다.
어두워진 산에서 긿을 잃고 하루를 꼬박 산에서 보낸 수린은 실종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들에 의해 발견됐다. 형사 백기(권해효 분)와 진성(박종환 분)은 수사를 벌이고, 재욱이 학교 놀이터에서 시체로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성민이와 서로 좋아했던 수린이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가 이내 친구의 죽음에 죄책감과 미안함 마음이 들었다.
성민과 태식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수린은 자신이 겪은 일을 가감없이 백기에게 전하지만, 백기는 믿지 않았다. 수린이 말한 동굴은 어쩐 일인지 보이지가 않았고 아이들의 흔적을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태식과 성민, 재욱은 '가려진 시간' 속에서 살고 있었다. 세상 모든 것이 멈춰버린 느낌이다. 날아가던 새도, 다방 여자를 뒤에 태우고 오토바이를 타던 재욱의 아버지(김태한 분)도, 태식의 아버지도 집에서 TV를 보는 모습 그대로였다.
아이들이 만지는 물건에만 잠시 시간이 흐르고 질량이 생길 뿐 피자를 먹다 던지면 날아가다 그대로 떠 있었다. 평소 천식을 앓고 있던 재욱이 어른이 되기 전 죽었던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다. 휴대용 흡입기가 작동을 하지 않았기에 아주 조금 쓰러지는 모습 그대로 멈춰버렸다.
한 번도 눈물을 보인 적이 없었던 태식은 이날 펑펑 울었다. 만화에 빠져 친구의 마지막을 배웅하지 못했다는 미안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가려진 시간'에 남겨진 성민과 태식은 어느덧 어른이 됐다. 재욱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할아버지가 재욱이에게 "산에 시간을 잡아 먹는 귀신이 있는데, 보름달이 뜨는 날에 나온다. 그 귀신한테 걸리면 아이는 어른이, 어른은 노인이 된다"는 얘기였다.
잠자는 것으로 날짜를 센 성민은 어느덧 자신들이 스무살을 앞두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태식은 점점 신경쇠약에 지쳐가고 있었다. 수린이를 만나고 싶다는 염원 하나로 조각에만 몰두한 성민은 그나마 나았다.
그러던 어느날, 달의 모양이 계속 바뀐다는 사실을 깨달은 성민은 태식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려고 했지만 태식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홀로 남은 태식은, 자신도 견디지 못할거라고 생각해 바다로 뛰어들지만 그때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해안가로 밀려 간신히 살아난 태식은 수린이를 찾아갔다.
처음에는 믿지 못한 수린이는 성민과 자신만이 아는 비밀암호로 쓰여진 일기장을 보고 성민이 진짜 성민임을 깨닫고 믿기 시작한다.
◇ 영화 완성도 절반은 아역들
영화의 완성도 절반은 아역들이 차지했다. 완전한 신인인 신은수가 2002년생으로 14세, 이효제가 12세, 김단율이 13세, 정우진이 2004년 생이다. 이효제의 경우 '사도'에서 소지섭의 아역을 맡아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한 바 있는 베테랑이라 말이 필요없다. 이효제도 이효제이지만 김단율의 자연스러운 연기가 보기 좋았다.
김단율과 함께 정우진은 정말 그 나이대 친구들끼리 하는 대화를 매끄럽게 소화했다. 리더 격인 김단율은 적절하게 비속어도 사용하면서 친구들을 이끌었다. 특히 신은수는 이번이 첫 작품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메소드 연기를 펼쳤다.
◇ '강동원사용설명서'의 올바른 예
강동원의 나이는 올해로 35세, 엄태구가 두 살 어리다. 강동원은 10대 후반부터 20대로 설정됐다. 전혀 어색하지 않다. 엄태화 감독은 아주 적절하게 강동원의 '동안'을 활용했다. 영화에 강동원의 잘생김이 묻어 있고, 우수에 젖은 연기가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몸은 컸지만 감수성은 시간을 잃어버린 어린 시절 그 때에 멈춰 있어야만 하는 성민을 제대로 표현했다.
엄태구 역시 형 엄태화 감독의 연출 의도를 제대로 파악해 연기했다. '밀정'에서 강렬했던 연기와 다른 결을 제대로 보여줬다.
한 편의 그림, 상상만 했을 동화같은 이야기, '가려진 시간'은 오는 16일 개봉된다. 12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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