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권혁기 기자] '♪좁고 좁은 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나를 깎고 잘라서 스스로 작아지는 것뿐. 이젠 버릴 것조차 거의 남은 게 없는데 문득 거울을 보니 자존심 하나가 남았네. 두고 온 고향 보고픈 얼굴 따뜻한 저녁과 웃음소리 고갤 흔들어 지워버리며 소리를 듣네. 나를 부르는 쉬지 말고 가라 하는 저 강들이 모여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다가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 없이. 익숙해 가는 거친 잠자리도 또 다른 안식을 빚어 그 마저 두려울 뿐인데. 부끄러운 게으름 자잘한 욕심들아 얼마나 나일 먹어야 마음의 안식을 얻을까. 하루 또 하루 무거워지는 고독의 무게를 참는 것은 그보다 힘든 그보다 슬픈 의미도 없이 잊혀지긴 싫은 두려움 때문이지만. 저 강들이 모여 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으며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 없이. 아무도 내게 말해 주지 않는 정말로 내가 누군지 알기 위해.♪'
노래 '민물장어의 꿈'의 가사다. 우리의 마왕(魔王) 고(故) 신해철의 장례식장에서 흐른 노래이기도 하다. 생전 신해철은 인터뷰에서 '민물장어의 꿈'을 "내 장례식장에서 울려 퍼질 노래"라고 꼽은 바 있다. 주체할 수 없는 카리스마로 콘서트장에서 '마왕' '교주'로 불렸던 신해철이 2년 전 오늘 향년 46세로 세상과 이별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수많은 팬들은 슬픔의 눈물을 흘렸다.
영정사진은 당당했던 신해철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래서 더욱 믿기 어려웠다. 당장이라도 눈 앞에 나타나 호령할 것만 같았다. 빈소에는 일반인 1만6000여명이 빈소를 찾아 애도했다.
◆ 1988년 자작곡 '그대에게'로 화려한 데뷔
고인은 무한궤도 리드보컬 겸 기타리스트로 지난 1988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자작곡 '그대에게'로 대상을 차지했다. 당시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조용필과 음악적으로 교감, 가왕이 마왕의 음반발매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무한궤도에서 탈퇴 후 솔로로 활동하다 015B 객원보컬, 넥스트 결성, 해체, 솔로활동, 비트겐슈타인 결성, 넥스트 재결성하면서 왕성한 음악활동을 했다.
'재즈카페' '나에게 쓰는 편지' '내 마음 깊은 곳의 너'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 '안녕' '도시인' '라젠카, 세이브 어스(Lazenca, Save Us)' '일상으로의 초대' '' 등 그가 히트친 곡은 매우 많다. 서강대 철학과 중퇴한 그는, 노래와 철학을 결합한 넥스트 2집 '더 리턴 오브 넥스트 파트1: 더 비잉(The Return of N.EX.T Part 1: The Being)'으로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이름을 올렸다. 넥스트 첫 싱글 '히어, 아이 스탠드 포 유(Here, I Stand For You)'는 싱글임에도 불구하고 5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기록했다. '히어, 아이 스탠드 포 유'는 신해철의 묘비명이 됐다.
◆ 믿기 힘들었던 마왕의 사망, 두 번의 장례식
2014년 4월 팬들은 열광했다. 신해철이 넥스트 6집 '666 Part 1'으로 6년만에 컴백한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6월 26일 신해철의 여섯 번째 솔로앨범 '리부트 마이셀프(Reboot Myself)'가 발매됐다. 원맨 아카펠라곡 '아따(A.D.D.a)'는 파격적이었다. 1000개의 녹음 트랙을 제작, 보컬을 입히는 방식이었다.
마왕의 컴백이 반가웠지만 그해 10월 27일 오후 8시 19분 신해철은 숨졌다. 고인은 서울 송파구 스카이병원에서 장협착 수술을 받았고, 환자가 동의한 적이 없는 위축소수술을 병원이 임의로 시행했다는 주장이 나와 해당 병원 강세훈 원장은 과실치사혐의로 피소됐다.
10월 31일 영결식이 진행되고 외가쪽 6촌형제인 서태지가 추도사를 낭독했다. 화장 직전 신해철을 아끼고 사랑했던 동료 음악인들은 사인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며 유족에게 부검을 하자고 설득했다. 아내 윤원희 씨 등 유족은 화장을 중단하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했다. 부검 후 11월 5일 장례식이 다시 치러져 화장됐고, 유해는 경기도 안성시 유토피아 추모관에 봉안됐다. 탤런트 김성민, 정다빈, 유니, 그룹 거북이 임성훈 등이 영면 후 같은 곳에 있다.
별명이 된 '마왕'은 신해철이 진행을 맡았던 라디오 프로그램 '고스트스테이션'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2005년 MBC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에 안드레 대교주 역으로 출연, 검은 망토를 입어 더욱 유명해졌다.
10월 27일, 날씨는 쌀쌀하지만 신해철의 노래는 언제나 가슴을 뜨겁게 한다. 그리운 신해철, 팬들은 마왕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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