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부산=권혁기 기자]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작 '춘몽'(감독 장률, 제작 률필름)은 흑백영화다. 시네아스트 장률 감독의 10번째 장편 영화 '춘몽'을 <더팩트>가 6일 부산에서 만났다.
전신마비를 앓고 있는 아버지(이준동 분)를 둔 딸 예리(한예리 분)가 있다. 중국인 어머니가 암(癌)으로 별세하기 전 알려준 아버지를 찾아 왔지만 자신에게 남은건 기껏 병수발 뿐이다.
그런가하면 수색역 일대를 주름잡는 해파리 형님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웃음이 터진 이후 별볼일 없어진 한물간 건달 익준(양익준 분)도 있다. 간질에 틱장애까지 있는 종빈(윤종빈 분)은 그나마 경찰 출신 아버지가 물려준 건물 덕분에 '건물주' 소리를 듣고 있지만 언제 어디서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질지 모르는 인물이다. 북한에서 탈출한 정범(박정범 분)은 1년동안 뼈빠지게 근무한 공장에서 월급을 받지 못해 매일 아침 공장 입구에서 사장(김의성 분) 차에 대고 90도 폴더 인사를 한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그래 어디 한 번 해봐"라는 소리 뿐이다. 여성이지만 짧은 머리에 축구를 좋아하고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주영(이주영 분)은 성(性)적 취향이 남들과 조금 다르다.
이렇게 어딘가 부족한 인물들은 모두 예리를 애정한다. 예리가 종빈의 건물 1층에서 운영 중인 '고향주막'이 바로 이들의 아지트다. 익준, 종빈, 정범은 거의 항상 붙어다니며 예리에게 사랑을 표현한다. 이들과 티격태격하는 주영은 삼총사가 없을 때 몰래 찾아가 예리에게 자신이 쓴 시를 선물하기도 한다.
등장인물들은 상암 DMC를 동경의 대상이자 피하고 싶은 곳으로 생각한다. 예리는 DMC에 위치한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보여주는 무료영화 보기를 좋아한다. 익준은 "거기 사람들은 다들 고개를 뻣뻣하게 들고 있어 싫다"고 하지만, 종빈과 정범만 예리를 따라 가게 둘 수 없어 동행하지만 결국 적응하지 못하고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쫓겨난다. 돌아온 고향주막이 그들에게는 안식처인 셈이다.
◇ 메소드 연기로 풀어낸 '춘몽'
캐릭터 모두에게 사랑을 받는 한예리부터, 배우에만 전념해도 좋을 양익준, 윤종빈, 박정범 감독은 메소드 연기로 관객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현장에서 배우들에게 연기 지도를 겸해야하는 만큼 감독에게도 연기력이 있어야겠지만 세 감독은 매우 특출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양익준 감독은 건달 익준 그대로였고, 윤종빈 감독은 진짜 병이 있나 싶을 정도로 열연을 펼쳤다. 지난 7월 3번째 음주운전으로 구설수에 오른 박정범 감독 역시 자신의 신(scene)을 제대로 챙겼다.
작품의 흥행 여부를 떠나 자신의 연기력을 뽐내는 한예리는 '역시나'였다. '코리아' '환상속의 그대' '해무' '극적인 하룻밤' '사냥' '최악의 하루' 등에서 입증된 '자연스러운 연기'를 제대로 보여줬다. 특히 신인 이주영은 차기작을 기대하게 했다.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주영은 적은 분량에도, 관객들에게 눈도장을 확실하게 찍을 전망이다.
◇ 감독이 넷이나 있기 때문일까? 역대급 카메오
'춘몽'의 카메오 명단은 면면이 주연으로 손색이 없는 배우들이다. 먼저 신민아는 정범의 여자친구로 등장하는데, 술에 취해 부리는 귀여운 주사가 매력 포인트다. 김태훈은 신민아를 데리고 미국으로 떠날 새로운 남자친구로 분했다. 유연석은 예리의 핸드폰 배경화면으로 등장한다. 예리는 "나는 몸과 정신이 건강한 사람이 좋은데 이 사람은 그럴 것 같아 찍었다"고 말한다.
앞서 언급한 김의성은 악덕 사장이지만 공처가로, 조달환은 익준에게 해파리 형님의 거래를 제안하는 인물로 출연한다. 특별출연 배우들 모두, 작지만 확실한 존재감으로 관객들을 즐겁게 한다.
한편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인 '춘몽'은 오는 13일 정식 개봉된다.
khk0204@tf.co.kr
[연예팀 | ssent@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