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권혁기 기자] 어떤 작품에서든 힘있는 연기를 펼치는 배우 조재현(51)이 감독으로 데뷔했다. 1984년 연극무대를 시작으로 영화(1988년 '너를 사랑한다')와 드라마(1989년 KBS 공채 13기) 등 장르와 미디어를 가리지 않고 '배우'라는 직업에 충실한 조재현이 감독으로 입봉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처음에는 우려했다. 그간 배우 출신 감독들이 몇몇 있었지만 대부분이 평가 절하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흥행 여부를 떠나 '배우 조재현'의 필모그래피에 흠집이 나지는 않을까 생각했지만 이는 기우였다. '나홀로 휴가'(제작 수현재엔터테인먼트)로 감독·제작자·각본가 명함을 동시에 손에 쥔 조재현을 지난 9월 서울 종로구 동숭동 수현재씨어터에서 만났다. '나홀로 휴가' 촬영 배경이기도 한 수현재씨어터 건물 옥상, 펜트하우스는 조재현이 예술적 감각을 키우는 곳이기도 하다. 조재현이 직접 그린 그림이나 찍은 사진들이 이 곳의 주인이 조재현임을 말없이 표현하고 있었다.
-사진찍기가 취미인 소문난 모범 가장 강재(박혁권 분)가 10년 전에 놓친 사랑 시연(윤주 분) 주변을 맴돌며 몰래 바라보다 갑자기 사라진 시연을 쫓아 그녀의 집을 찾아가 갇힌다는 소재가 파격적이다.
영화를 본 관객의 나이대와 성별, 성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는 것 같다. 20대 중후반에서 30대 초반 여성분들 중에는 28% 정도가 긍정적으로 보더라. 아! 내가 조사한 결과다.(웃음) 남자 마음이 이해된다는 분들이었는데 수용의 폭이 넓은 분들이었다. 간혹 '남편이란 존재에 큰 기대를 왜 해?'라고 하는 분들이 계시지 않나? 결혼을 앞둔 신혼부부에게는 위험할 수 있다.(웃음) 작년 부산국제영화제 때 관객과의 대화(GV)를 했는데 15일 뒤 결혼한다는 예비 부부가 "괜히 본 것 같다"고 하시기도 했다. 40~50대 유경험자들은 열광했을 수도 있다.(웃음)
-너스레가 상당하다.(웃음) 입봉작으로 이 소재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공감될 수 있는 이야기를 내 방식대로 풀어보고 싶었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작가주의적 상업영화라고 생각한다. 누가 '독립영화'라고 하길래 "독립영화라고 하지마. 작가주의적 상업영화"라고 했다. 다수 공감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계기는 오종록 감독이었다.(조재현은 오종록 감독의 드라마 '피아노'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독서량이 상당한 감독인데, 제가 30대 중반, 오 감독이 40대 초반이었을 때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한 중년 남자가 퇴근하고, 자신이 빌린 작은 오피스텔에서 깨끗하게 씻고 3시간 정도 누워 있다가 집에 간다는 내용의 소설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나만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내용인데, 그 짧은 얘기가 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래서 영화를 만든다면 '40대 남성의 행복한 순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사랑을 한다면 집착이 될 수 있고, 그 집착이 행복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싶었다.
-아내의 소감이 궁금하다.
우디네극동영화제에서도 봤고 부산에서도 봤는데 확실히 우리 와이프 취향은 아니다.(웃음) 와이프의 큰 장점은 남편이 하는 일에 간섭을 하지 않고 창작자로 봐준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28%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는다.(웃음)
-김기덕 감독은 뭐라고 했나?
처음에 소재를 얘기했더니 "네가 한 얘기는 15분 밖에 되지 않는다. 더 써라"라고 하더라. 속으로 '충분할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하니까 딱 15분이더라. 그래서 강재 친구로 영찬(이준혁 분)를 추가했다. 그러면서 주변 선후배의 이혼 사례와 연애 사례를 넣었다. 총 22시간만에 시나리오를 완성했는데 이후 촬영 하면서 내용을 보충했다.
-감독이자 제작자로서 재능을 마음껏 발휘했다고 박혁권이 극찬을 했다.
20회차 정도 촬영했는데, (제작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하루동안 찍어야할 분량을 채우기 위해 변화를 많이 주지 못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지나가려고 했다. 사실 제가 주연을 하려고 했는데 박혁권을 만나면서 캐스팅에서 밀렸다.(웃음) 스스로 냉정하게 분석해보니 혁권이가 맡는 게 낫겠더라. 촬영 중에는 작은 영화라고 컵라면이나 김밥을 먹이기 싫었다. 야외 바베큐 장면이 있는 날에는 모두 다 같이 바베큐를 먹었다. 제주도 촬영 때는 제가 갖고 있는 1년치 콘도 이용권을 다 써서 잘 수 있게 했다. 또 한가지 에피소드는 하늘이 맑았는데 갑자기 비가 내리더라. 전시회 장면이었는데 일부러 전시회를 철수하는 장면으로 바꿨다.
-필자가 보기에도 첫 작품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연출이 매끄러웠다.
사실 연출 수업을 제대로 받은 적이 없어 일상의 리얼함을 보여주는데 역점을 뒀다. 전수일 감독의 풀샷의 정서를 좋아해 캐릭터들이 대사를 하는 장면을 최대한 '날 것' 그대로 담았다. 아마 오디오 감독이 정말 싫어했을 것이다.(웃음) 강재와 친구들이 막 떠드는 장면에서 잡음이 들어간 이유다. 계속 자는 친구도 있고, 식당 주인이 홀로 남아 2차를 가자는 친구에게 "아까 다 갔어요"라고 하는 장면은 의도된 연출이 아니라 리허설 때 주인분이, 자신도 모르게 외친 말을 대사로 쓴 것이다.
-'나홀로 휴가'로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불륜을 미화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저 관객들에게 '당신은 행복합니까?'라고 묻고 싶었다. 여성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인정한다. 50대가 되면 와이프와의 관계는 친구나 가족의 개념이다. 그렇기 때문에 관객들에게 '노력하라'고 얘기하고 싶었다.
-차기작 계획은?
구상해온 작품이 있는데 내년이 될지, 4년 뒤가 될지 모르겠다. 작가주의적 상업영화가 될 것.(웃음) 조금 유치하더라도 내 방식대로, 상업영화 틀에 맞출 능력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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