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인터뷰] '최악의 하루' 김종관 감독 "현실감 넘치는 영화들 포지션 넓어지길"

제 영화 어떠셨어요? 영화 최악의 하루 김종관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 대해 영화계에 없는 포지션이라고 말했다. /남용희 인턴기자

"영화계에 없는 포지션, 대중적으로 확장되길"

[더팩트|권혁기 기자] 로맨틱 영화들의 특징 중 하나는 남녀 주인공 사이에 아주 특별한 계기가 존재하거나, 그 계기로 인해 생기는 에피소드가 아주 극대화된다는 점이다. 현실감이 있지만 그 안에 판타지가 로맨틱 영화의 재미를 더욱 크게 한다는 얘기다. '사랑'이란 대중에게 매우 공통된 감정 중 하나이기 때문에, 관객들은 '사랑'에 대한 영화를 좋아하고 그 안에 자기를 대입시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그런 판타지적인 부분이 관객에게 어필될 수 있지만 때로는 거부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 그러하고, 필연을 과장되게 포장하는 연출은 몰입도를 방해하기도 한다.

영화 '최악의 하루'(감독 김종관, 제작 인디스토리)는 그런 판타지적인 부분을 완전히 배제한 로맨틱 영화다. '최악의 하루'는 늦여름 서촌을 지나던 배우 지망생 은희(한예리 분)가 길을 찾는 일본인 소설가 료헤이(이와세 료 분)를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고 있다. 은희는 드라마에 출연 중인 남자친구 현오(권율 분)을 만나러 남산으로 향하게 되고, 은희는 그곳에서 과거 남자 운철(이희준 분)과 마주치면서 최악의 하루를 겪게 된다.

연출을 맡은 김종관(42) 감독은 작가주의지만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자 노력했다. 30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통인동 카페에서 만난 김종관 감독은 "제 영화는 영화계에서 없는 '포지션'"이라고 피력했다.

"단편 영화들도 그랬지만 제가 만드는 영화는 상업영화 진영에서 보면 낯설고 포지션이 없는 영화가 되는 것 같아요. 작가주의 관점에서 봤을 때는 또 '말랑말랑'한 영화인 셈이죠. '최악의 하루'도 그런 영화인데 저는 이런 영화들이 대중적으로 확장되길 바랍니다. 상업성을 강조한 로맨틱 영화들의 현실성이 점차 없어지는 것 같아요.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로맨틱 영화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김종관 감독은 최악의 하루로 관객의 다양성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작품이 되길 바랐다. /남용희 인턴기자

김종관 감독은 자신의 영화가 가진 장단점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김 감독의 말을 빌리자면, '최악의 하루'는 쥐도 되지 못하고 새도 되지 못한 '박쥐'와 같은 영화다. 큰 흥행이 되지 않더라도 대중이 '이런 톤의 영화가 있었네'라고 알아주면 된다는 것이다. 대중이 선택할 수 있는 다양성을 충족시켜주고 싶다는 말이기도 했다. 김 감독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고 그런 성취감을 느끼고 싶은 영화였다. 영화를 읽기 좋아하는 관객들에게 맞춘 영화들. 어떻게 보면 박쥐의 세계에 있지만 그런 면이 이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양극화돼 있는 영화계에서 중간에 있는 영화가 됐으면 하는 것"이라고 피력했다.

현실성을 강조했기 때문일까? 김종관 감독은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아주 현실성이 짙은 공간을 선호했다. 서울 경복궁 근처 서촌 일대를 배경으로 하고, 자신이 자주 가는 단골 카페를 촬영장으로 삼았다. 그리고 서울에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가봤을 남산에 갔다.

그는 "영화 자체가 하루 안에 벌어지는 일들을 담고 있다보니 실제 공간을 많이 활용하게 됐다. 도시를 느낄 수 있는 큰 길이 아닌 골목이 가진, 다른 '시간의 흐름'을 담고 싶었다. 낮에 그런 골목길에 가보면 대부분 노인과 아이들만 있다. 그래서 영화 초반에 노인들과 아이가 등장하는 것"이라며 "남산 산책로도 사람이 쉬는 공간이고, 그런 일상 안에 있는 캐릭터들이 펼치는 낯선 모습과 비일상적인 모습으로 확대시킨 것이다. 그리고 극 중 료헤이가 모험을 하는 공간이기도 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김 감독은 료헤이가 거니는 공간에서 노스텔지어(향수)를 느끼길 바랐다. 그래서 그 곳에 자신의 가족들만이 알 수 있는 설정을 했다. 노인성 치매를 앓고 있는 한 할머니가 "성규 아니니?"라고 묻고 그 할머니는 스스로 "나 김다복"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성규는 김종관 감독 아버지의 성함이고, 김다복은 돌아가신 할머니 존함이다.

"단순한 패턴을 쌓아가면서 재미를 주는 게 이 영화의 포인트"라는 김종관 감독은 "간결하게 찍어야 했기 때문에 어려운 촬영 대신 포인트를 살려야 했다. 은희가 현오를 만나고 있으면서도 운철을 만나 '내가 사람 만나는 기계에요'라고 말하는 장면도 그런 포인트 중 하나"라면서 "짧은 회차였지만, 그렇다고 퀄리티가 느슨한 영화를 찍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좋은 기획과 좋은 배우들이 필요했고, 출연진이 캐릭터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연기해줬기 때문에 팀웍이 발휘됐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김종관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 경험담이 들어 있느냐는 질문에 영화가 일기장일 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답했다. /남용희 인턴기자

특히 배우 최유화가 매거진 기자 현경 역을 맡아 료헤이와 의미심장한 대화를 나누는 부분에 대해서는 "짧지만 강렬한 연기를 해줬다"고 말했다.

"'비밀은 없다'에서 김주혁의 밀애 상대를 맡았던 최유화가 '최악의 하루'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줬다. 해피엔딩을 만들지 않는 작가에게 '왜 캐릭터들을 구해주지 않느냐'라고 묻는 부분은 료헤이에게 경각심을 일깨우는 부분이기도 했다.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포인트가 바로 현경"이라며 "현경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이야기를 확장시켜준 것 같다"고 부연했다.

이희준이 연기한 운철에 대해서는 "누구나 자기보호를 하려는 사람이 있지 않느냐. 운철이 바로 그런 사람"이라며 "비겁하면서 자기는 좋은 포지션으로 얘기하고 싶어하는,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사람으로 보이기 바랐다. 그래서 한예리와 이희준에게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의 절절한 연기를 보여달라고 제안했다"고 너스레를 떨어 웃음을 유발했다.

너무나도 현실적인 대사와 스토리라 "혹시 경험담이 녹아져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김 감독은 "영화는 픽션이라고 생각한다. 그 안에 경험이 들어갈 수 있지만 그 안에 세계나 경험은 모두 만들어낸 거짓말"이라며 "영화가 일기장이 될 수는 없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끝으로 김종관 감독은 은희와 료헤이가 통하게 되는 부분에 대해 "거짓말을 못할 때 가장 소통이 되는 것 같다. 영화에서 은희는 하루종일 일그러지지만 료헤이와의 관계에서는 가장 은희다운 모습을 보인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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