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씨네리뷰] 우리네 삶, 상실과 어둠 옆 '환상의 빛'

영화 환상의 빛 공식 포스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1995년 작품 환상의 빛이 7일 개봉됐다. /환상의 빛 포스터
영화 환상의 빛 공식 포스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1995년 작품 환상의 빛이 7일 개봉됐다. /환상의 빛 포스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첫 장편영화, '환상의 빛'

[더팩트ㅣ강수지 인턴기자] 영화는 줄곧 새벽녘 같은 색채로 일상을 그린다. 어두운 감이 있는 영상미는 인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한다. 유미코(에스미 마키코 분)는 어릴 때부터 동네 친구인 이쿠오(아사노 타다노부 분)와 결혼해 평범하고 행복한 생활을 한다. 그는 태어난 지 3개월 된 아들을 돌보기도 하고, 어린 시절 행방불명 된 할머니가 떠올라 남편에게 쫑알쫑알 이야기해주기도 하고, 아들을 맡기고 남편과 데이트를 하기도 한다. 이렇듯 영화는 유미코의 평범한 일상을 차분히 따라간다.

아무런 의심 없이 영화에 몰입해 유미코의 단조로운 일상을 쫓다 보면 관객은 어느 순간 뒤통수를 맞게 된다. 갑작스럽게 이쿠오가 기차에 치여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자살로 보인다는 설명에 유미코는 많이 당황스러웠을 거고, 갑자기 이쿠오가 왜 자살을 한 건지 궁금했을 거고, 또 슬펐을 거다. 하지만 온 신경을 쏟아 유미코의 목소리를 꾸준히 따라가 봐도 그의 아픔은 목소리로 표출되지 않는다.

영화 환상의 빛 주연 에스미 마키코. 영화 환상의 빛 주인공 유미코의 심리 상태가 색채와 의상 등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환상의 빛 스틸
영화 환상의 빛 주연 에스미 마키코. 영화 환상의 빛 주인공 유미코의 심리 상태가 색채와 의상 등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환상의 빛 스틸

유미코의 심리는 어둠, 기차 소리, 방울 소리에 애잔하게 녹아있다. 영화 중반부에 이르러 유미코가 재혼을 하기 전까지 그와 주변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 그들이 있는 공간은 온통 어둡게 그려진다. 아무리 배경이 낮이어도 역광으로 사람들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다.

기차에 의해 남편을 잃은 유미코는 기차를 타고 새 남편을 만나러 간다. 힘찬 기차소리가 왠지 모르게 쓸쓸하게 느껴진다. 새 남편 타미오(나이토 다카시 분)을 만나 행복하게 살아가던 그는 이쿠오가 문득 떠오를 때 이쿠오에게 선물했던 방울 열쇠고리를 꺼내본다.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큰 동작을 하지 않아도 방울 소리는 조용하게 울려퍼지며 그의 심리를 대변한다.

배우 에스미 마키코(왼쪽)-나이토 다카시. 환상의 빛 주인공 유미코는 줄곧 상실의 아픔을 표현하지 않다가 영화 말미에서 토해내듯 표출한다. /환상의 빛 스틸

줄곧 차분하게 이어지던 유미코의 목소리는 영화 말미에 가서야 쌓아왔던 감정을 토해내듯 커진다. 유미코가 이쿠오의 상실로 인한 아픔을 울부짖기 직전, 화면 한쪽에는 활활 타는 불과 까맣게 피어나고 있는 연기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무언가 연소해 만들어진 빛과 어둠이 함께 존재하는 모양새가 유미코, 그리고 우리의 삶과 닮았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등을 만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1995년 작품 '환상의 빛'이 7일, 20여 년 만에 국내에 처음 개봉됐다. '환상의 빛'은 일본 순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미야모토 테루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이 작품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첫 장편영화로, 1995년 베니스 국제영화제 촬영상, 같은 해 밴쿠버 국제영화제 용호상 등을 받으며 '영화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데뷔작'이라는 평을 받았다. 15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은 109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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