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는) Re(플) : 윤여정 선생님처럼 나이 들고 싶어요(sinc****)
[더팩트 | 김경민 기자] '일동 기립'. 배우 윤여정이 인터뷰 장소에 들어섰다. 민낯에 편안한 일상복 차림의 그에게서 향긋한 포도주 향기가 났다. 기자들이 인터뷰 전 취재원에게 명함을 건네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는 게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윤여정의 등장과 함께 기립한 기자들 사이엔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여배우' 윤여정의 위엄이다.
'대선배'급 연예인들은 많지만 윤여정이 가진 아우라는 남다르다. 무엇보다 그는 '여배우'라는 타이틀이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연기자다. 앞치마를 두른 어머니나 그리운 할머니 연기를 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그래도 한결같이 특유의 도회적이고 세련된 이미지를 갖고 있다. 70대에 접어든 나이를 떠나 이러한 이미지를 유지한다는 것 자체가 후배 연기자나 대중에게는 '멋진 배우'로 기억된다.
그런데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한 카페에서 진행된 영화 '계춘할망' 인터뷰에서 윤여정과 조금은 어색한 만남을 가졌다. 여배우가 아닌 인생 선배이자 어른으로서 털어놓는 이야기는 브라운관이나 스크린에서 보던 그와 대조돼 생소했다.
"세련돼야 한다는 부담감 같은 건 없어요. 이 나이에 잃을 게 하나도 없잖아. 이 나이가 돼 안 것은 두 가지지. 내가 선택한 건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 이제 남 탓을 안 하게 돼서 좋아요. 어렸을 땐 나만 억울한 것 같았어요. 다른 애들은 주인공 하는데 나는 걔 언니나 동생 하라고 하고. 직장인도 그렇죠. 어떤 애는 기사 잘 쓰는 것 같지도 않은데 상사 예쁨받으면 억울하겠죠. 그런데 어느 순간인지 다 내 탓이라는 걸 알았어요. 상사한테 예쁨받는 애도 뭔가 있을 거야."
정작 그는 화려한 치장이 담긴 '여배우'라는 단어를 멀리했다. '노배우'라고 칭하며 "요새 가장 많이 생각하는 건 '어떻게 하면 잘 죽을 것인가'"라고 인간적인 고민도 털어놨다.
"어머니가 93세인데 정신은 말짱한데 몸이 안 좋으세요. 어머니를 기준으로 보면 85세까지는 괜찮은 것 같아요. 85세 넘으면 사람마다 다르지만 떨어지게 되나 봐. 최근에 영국에서 한 간호사가 안락사시켜달라고 주장하는 걸 보고 관심이 많았어요. 그 사람은 요양원에서 일하던 사람이라 죽음, 늙는다는 것에 대해 아는 거지. 자신 있게 죽고 싶어요."
윤여정은 어떻게 하면 앞으로 시간을 잘 보낼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다. "윤여정처럼 늙고 싶다"고 말하는 이들과 손뼉을 탁 맞추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워너비 어른'으로 자리를 잡게 된 이유는 지난 9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비정상회담'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그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틈틈이 "옛날이야기를 하면 '꼰대' 아니냐"고 걱정하면서 "난 옛날 이야기만 한다"고 푸념했다. 자신이 '꼰대'일까 봐 걱정하면서도 젊은 비정상대표들과는 쟁쟁한 토론을 펼쳐 환호를 샀다. 쿨한 '꼰대'를 자처하고 나선 당당함, '꼰대'가 될까 봐 스스로 경계하는 말 한 마디에서 지난 시간 동안 쌓인 연륜의 내공이 보였다.
방송을 본 누리꾼은 "언제나 당당하게 멋진 윤여정처럼 나이 들어가고 싶다(jyai****)" "남자가 보기에도 정말 멋지게 나이 드신 분(glif****)" "내면이 멋지게 늙으신 분(tmdg****)" "무슨 얘길 해도 지루하지 않고 센스 있고 위트 있고 지성이 느껴지는 몇 안 되는 멋진 여배우(roby****)" "윤여정 누나라고 불러도 됨(jisu****)" "주름에서조차 자존감이 느껴짐. 깔끔하고 위트 있고 독립적이면서 세련된 일흔 살 여성은 드물지(okre****)" 등의 반응을 보였다.
물론 그가 tvN '꽃보다 누나'에서 보여준 부분 때문에 예민하고 까다로운 성격이라는 고정관념도 있다. 하지만 그의 확실한 자기 주장에는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 선이 있으니 자기 할 말도 제대로 못하고 사는 우리들에겐 시원한 사이다 같은 존재로 비친다.
"부럽다"는 말을 자아내는 예쁘고 몸매 좋은 스타들은 많다. 하지만 "되고 싶다" "닮고 싶다"는 말을 듣는 연예인, 하물며 그런 사람은 얼마나 될까. "곱다"는 말에 쑥스러워하면서 "속은 거야"라고 받아치는 재치, "아프고 치열하게 겪은 게 많아서 이제 붙잡고 싶은 게 없다"며 "재밌는 여자란 수식어면 되지"라고 너털웃음을 짓는 여유. 윤여정 같은 '공공재 어른'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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