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20주년…H.O.T. 재결합을 바라며
[더팩트ㅣ정진영 기자] "앞으로 H.O.T. 콘서트를 또 갈 수 있는 날이 있을까?"
"없겠지. 아마 이번이 마지막이지 않을까."
15년 전의 짤막한 대화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팬들 끼리는 '227'이라고 하는 콘서트가 열리던 날이었다. 지난 2001년 2월 27일 서울 잠실주경기장에서 개최된 이 콘서트는 H.O.T.가 해체하기 전 연 마지막 단독 공연이기도 하다.
본래 H.O.T.의 단독 콘서트는 그해 1월 18일부터 4일 동안 열리기로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멤버 이재원의 부상으로 2월로 밀렸다. 악재는 이어졌다. 공연을 일주일 앞두고 콘서트장으로 낙점돼 있던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의 지붕이 폭설로 일부 무너지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결국 H.O.T.는 약 5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잠실주경기장으로 무대를 옮겼다. 이 때 이들이 세운 국내 단일 공연 최다 관객 동원 기록은 아직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
공연이 열리던 그 시간 필자는 학원 수업을 듣고 있었다. 오후 6시 30분 예정인 콘서트가 진눈깨비 때문에 약 1시간 가량 미뤄졌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으며 초조하면서도 슬픈 기분으로 강의를 들었다. 학원 수업 대신 콘서트에 가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기에 '다음 번에 또 열린다면 꼭 가겠다'며 마음으로 뒷날을 다짐한 게 마지막이었다. 친구의 예언처럼 H.O.T.의 콘서트는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
살면서 겪은 몇 가지 충격적이고 슬픈 일들이 있는데 H.O.T.의 해체가 그 가운데 하나다. 콘서트를 마치고 약 2달 뒤 H.O.T.의 멤버 장우혁 토니안 이재원이 기자회견을 열고 팀을 탈퇴할 뜻을 밝혔다. 그때는 또 학교 수련회 장이었는데 집에 돌아오자마자 방 벽 가득 붙어 있는 포스터를 보면서 오열한 기억이 있다. H.O.T.의 해체는 그 당시로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그까짓 아이돌 그룹 하나에 뭘 그리 목을 맸느냐고 하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그때 H.O.T.는 세상의 전부나 마찬가지였고 지금 역시 필자의 마음 안에서 이 그룹이 갖고 있는 존재감은 크다.
당시만 해도 가요계에서 10대 그룹을 찾긴 쉽지 않았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10대 시장이 가진 가능성을 확인했고, 그 문을 활짝 연 이들이 H.O.T.였다. H.O.T.는 기획사의 철저한 계산 하에 세상에 나온 그룹이었고 소속사 트레이닝 시스템이 일반화되지 않았던 1990년대 후반, 이는 활동 내내 H.O.T.를 옥죄는 올가미가 됐다.
노래하고 춤추는 아이들은 쉽게 어른들의 타깃이 됐고 '문제아' 딱지가 씌워지던 시절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H.O.T.는 더욱 강렬하게, 또 보란듯이 자신들이 원하는 것과 바라고 꿈꾸는 세상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랑 노래 일변도이던 대중음악 시장에서 H.O.T.가 부르는 노래들과 이들이 사회에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매번 필자에게 큰 울림을 줬다. 청년 서정주를 키운 8할이 바람('자화상')이었다면 필자를 키운 8할은 H.O.T.의 노래였다. 이들 덕분에 입양(문희준 '얼론')이나 장애우에 대한 편견('아웃사이드 캐슬'), 소년소녀 가장('내가 필요할 때'), 전쟁('투지'), 통일('파랑새의 소원'), 자살('모나데'), 학교 폭력('전사의 후예') 등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피우지도 못 한 아이들의 불꽃을 꺼버리게 누가 허락했는가'라는 H.O.T. 4집 타이틀 곡 '아이야'의 가사는 '씨랜드 참사'가 일어난 지 17년이 지난 현재까지 마음 한 구석을 서늘하게 한다.
2000년부터 H.O.T.의 팬들은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사고를 기억한다는 의미에서 참사가 일어난 6월 30일마다 곳곳에 추모하는 내용을 담은 벽보를 붙였다. H.O.T.는 단순히 노래와 춤을 잘추는 '잘생긴 오빠들'이 아니라 사회를 위해 함께 고민하고 힘을 모아야 할 것들에 대한 화두를 던져주는 '멘토'였던 셈이다. 생각해 보면 H.O.T.는 '우상'이라는 본래의 의미에 충실한 '아이돌'이었다.
그런 H.O.T.가 올해 데뷔 20주년을 맞았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god나 플라이투더스카이 클릭비 같은 그룹들이 속속 재결합을 하고 있는 가운데 아직까지 H.O.T.는 침묵하고 있다. 간간히 이들이 20주년 기념 콘서트를 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 공식화된 건 아무것도 없다. 20년이라는 시간 가운데 그룹으로서 활동한 건 고작 5년 뿐이니 다시 뭉치기가 말처럼 쉽지 않겠다는 건 짐작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는 문희준 장우혁 토니안 강타 이재원 다섯 명이 한 무대에 서 있는 걸 꼭 보고 싶다. 지난달 말 진행된 문희준의 단독 콘서트에 게스트로 선 강타는 H.O.T. 재결합과 관련해 "좋은 소식이 있을 것 같다"는 희망 섞인 이야기를 했다. 희망고문일지 모르는 이 말에 팬심이 설렌다.
전만큼 화려한 춤사위나 패기 넘치는 면모를 바라는 게 아니다. 과거 H.O.T.가 강렬한 비주얼로 사회문제에 대한 날 선 메시지를 날렸다면, 이제는 그들의 시작이자 기둥인 무대에서 조금은 여유롭고 따뜻하게 사회를 보듬어 줬으면 한다. 10대 꼬마였던 팬들도 이제 모두 자랐다. H.O.T.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말상대가 되기에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FOREVER H.O.T. 이 말이 이렇게 그리울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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