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인터뷰] '복길이' 김지영이 말하는 연기와 가족, 그리고 삶

김지영, 배우로 또 엄마로 살다. 배우 김지영이 최근 <더팩트>와 만나 살아가면서 느끼는 점들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털어놨다. /임영무 기자

"점점 커지는 가정과 육아의 크기…연기에 녹여내고파"

[더팩트ㅣ정진영 기자] "잘 사는 건 어떻게 사는 걸까. 어떻게 살면 잘 살 수 있을까. 그런 생각들을 하곤 하죠."

배우 김지영을 만난 건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날, 두터운 스웨터에 두 겹으로 된 외투를 겹쳐 입고도 오들오들 떨며 올라간 서울 강남의 한 카페 안에 그가 있었다.

"잠시만요, 메이크업 수정할 게 있어서요. 잠시 커피라도 드시면서 기다리고 계세요."

김지영은 자신의 옆자리를 가리키며 선뜻 앉으라 권했다. 아직 메이크업 완성 전인데도 불편해 하는 기색이 없었다. '여배우', '초면'이라는 단어들이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친구처럼 언니처럼 그렇게 편하게 그는 곁을 내줬다.

김지영의 다양한 얼굴들. 그는 작품을 선택할 때 인물의 크기 보다는 캐릭터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임영무 기자

◆ 주인공보다는 캐릭터…"신선한 인생 보여주고파"

지난해 김지영의 필모그래피에는 두 작품이 있었다. MBC 예능 프로그램 '일밤-진짜 사나이'(이하 '진짜 사나이')와 MBC 드라마 '위대한 조강지처'다. 전자에선 좋은 사람들과 만났고 후자에선 독보적인 여성 캐릭터를 얻었다.

"결과적으로 '진짜 사나이' 출연은 좋은 경험이 됐어요. 같이 고생한 경험들은 기억에 많이 남게 마련이잖아요. 일주일 딱 같이 있었을 뿐인데 1년 같이 작품을 한 사람들보다 더 돈독해졌어요. 무슨 일이 있다고 하면 찾아가고 협찬 같은 걸 받아도 나눠 갖고."

'진짜 사나이'에서 맏언니 파워를 여실히 보여준 김지영은 이 분위기를 그대로 '위대한 조강지처'까지 끌고왔다. 그가 이 작품에서 맡은 역은 가난한 산아래 첫 번째 집 맏딸로 태어나 고생하며 살다 졸부가 된 드세고 의리 있는 조경순. 여성이 주요 캐릭터로 등장해 활약하는 작품이 생각보다 많지 않은 지금, 조경순은 안방극장에서 '줌마 파워'를 제대로 보여줬다.

위대한 조강지처 제작 발표회장에서 김지영. 그는 이 작품에서 드세지만 의리 있는 조경순 역을 맡아 열연했다. /이새롬 기자

"신기하게도 여자 배우들이 뭉쳐서 하는 작품을 많이 했어요. '올드미스 다이어리'가 그랬고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 그랬고 또 이번에 한 '위대한 조강지처'가 그랬죠.

'위대한 조강지처'가 독특했던 건 세 명의 여자 주인공들의 캐릭터가 다 살아있었다는 거예요. 영화도 아니고 드라마에서 주인공 세 명의 이야기를 끝까지 끌고 가기가 어렵거든요. 그런데 시놉시스를 보고 '이런 캐릭터가 나올 수가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마음에 들었어요. '위대한 조강지처'라면 여자들의 삶을 자연스럽게 녹여내 여러 가지를 시청자 여러분께 보여드릴 수 있겠다 생각한 거죠."

지난 1995년 데뷔해 벌써 연기 경력 20년차를 넘긴 베테랑 연기자이지만 그는 여전히 연기에 대한 목마름이 크다고 했다. 그가 작품을 볼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캐릭터. 주연이냐 조연이냐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고 했다.

"주인공을 마다하고 조연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어요. 주연인 작품과 조연인 작품이 함께 들어왔을 때 말이죠. 비슷한 연기를 몇 작품씩 연달아서 하면 정체된다는 느낌이 있어요. 그러다 보면 에너지가 고갈이 되죠. 그럴 땐 오히려 임팩트 있는 조연을 하는 게 더 나아요. 저는 영화에서는 그런 임팩트 있는 인물을 많이 연기했던 것 같아요. 보통 영화에서 주인공은 어린 배우들이 많이 하잖아요. 그래서 전 영화에선 특히 캐릭터로 승부하고 싶어요."

배우의 생활 이해해 주는 시부모께 감사하죠. 김지영은 같은 직종에 종사하는 이들이 가족이라 이해받을 수 있는 부분이 더 많다고 설명했다. /임영무 기자

◆ 종갓집 외며느리…"이해해주는 시부모에게 감사"

인터뷰를 하다 가정 이야기가 나오자 김지영이 조언한 게 있다. 결혼은 되도록 비슷한 직군에 있는 사람과 해야한다는 것. 일하는 '워킹맘'이자 종갓집 외며느리로서 하는 진심에서 우러나온 조언이었다.

"종갓집 외며느리예요. 그러다 보니 명절 때도 혼자서 다 해야 하죠. 그런데 배우이다 보니 세트 촬영 같은 게 잡히면 어쩔 수 없이 나가야 하잖아요. 그럴 때 '너 TV에 몇 신이나 나온다고 그러니. 날짜 바꿔'라고 한다면 얼마나 답답하고 속상하겠어요. 저희 어머니, 아버지는 두 분 다 배우이시라 그런 점을 잘 이해해 주세요.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생기면 '어차피 안 되는 거 신경쓰지 말고 편하게 와'라고 해주시죠. 그럴 때 정말 감사해요.

결혼, 가정이라는 건 평생 누군가와 함께 도모하고 일궈내야 하는 거잖아요. 아예 상관을 안 해도 되는 사람이면 모르겠는데 그렇지 않다면 서로 대화가 통하고 인정해주고 잘 모르더라도 존중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게 좋겠죠. 같은 업종에서 일을 한다면 아무래도 많은 부분을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요. 배우자는 마지막에 내 편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면에서 남편과 시부모 동생이 모두 연기자의 길을 걷고 있는 김지영의 가족은 갈등이나 부침이 없을 것 같다. 이 같은 질문에 김지영은 갈등을 빚지 않기 위한 불문법이 가정 내에 있다고 했다.

"가족들이 서로의 작품을 모니터링은 하되 그것에 대해서 지적은 하지 않는다는 게 무언의 약속이에요. '의상이 부해보였던 것 같아', '그날 머리가 좀 이상하더라' 정도의 가벼운 터치는 하지만 연기에 대해선 코멘트를 하지 않아요. 시부모님은 제게 대선배이면서 부모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연기에 대한 지적을 들으면 데미지를 크게 입어요. 연기를 할 때 울렁증이 생길 수도 있어요.

남편이랑은 신혼 초에 한 번 대판 싸운 다음에 서로 얘기를 안 하게 됐어요. 특히 작품이 방송되고 있는 중간에는 더 조심하죠. 약간 오버하기 시작하면 기분이 나빠지고, 그럼 큰 다툼이 될 수 있거든요."

더 나이가 들면 또 어떤 연기를 할 수 있을까요? 김지영에게 나이가 든다는 건 또 다른 인물을 연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는 의미다. /임영무 기자

◆ "배우는 인생을 탐구하는 직업, 몸소 배우는 즐거움"

종갓집 외며느리가 되고난 뒤로도 김지영은 배우로서의 커리어를 꾸준히 쌓아왔다. 1년에 1~2 작품씩은 꾸준히 하며 대중과 만나고 있는 것. 지난 20년 동안 쌓인 작품만큼 해 본 연기도 많았을 터. 특히 1088부 동안 방영된 MBC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복길이라는 캐릭터를 맡아 전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던 그에게 배우로서 더 이루고 싶은 게 남아있을까 싶었다.

"배우는 인생을 탐구하는 직업이잖아요. 몸소 경험해 가면서 배워나가는, 연구해나가는 직업이라 무궁무진한 것 같아요. 인간의 성향이나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삶의 다양한 모습들이 있잖아요. 몇 작품으로 살기에는 너무나 다양하죠. 그래서 다작을 한 배우이지만 여전히 앞으로 또 어떤 인물로 살아가게 될지가 기대돼요.

특히 나이가 들면서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이 또 달라지니까요. 이제는 연기도 좋지만 가정 안에서 아이를 키우고 아이가 자라나는 걸 보고 연구하고 추억을 공유하는 게 더 소중해졌어요. 배우의 생활은 그대로 연기에 녹아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더 잘살고 싶고, 순간에 충실하고 싶고, 이렇게 성장해나가면서 그 안에서 나오는 것들로 연기를 폭넓게 만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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