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일홍의 연예가클로즈업] KBS '구설수', 가수들 청탁·줄타기 사실인가?

국민의 방송이란 공영방송 타이틀이 무색. 지난해 연말 KBS가 가요특집프로그램에 방송사 고위 간부를 통해 정치권 줄을 타고 내려온 가수를 출연시킨 것으로 알려지면서 구설수에 올랐다. /더팩트 DB, KBS 가요무대

[더팩트|강일홍 기자] "위에서 줄타고 내려오는 오더가 많습니다. 일부 임원들이 정치색깔을 입고 외부 지원을 받아 자리에 앉았으니 그 보답을 하는 셈이죠. 수십 년간 활동한 소위 대중적 가수들이 국회의원들이나 유력 정치인들과 맺은 사적 유대를 이용하는 것인데요. 윗분들을 통해 출연요청이 들어오면 거절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고 그러다 보면 당초 연출 취지와 어긋나 큐시트는 엉망이 되는 겁니다."

각종 방송시상식으로 분주한 연말이 쓰나미처럼 휩쓸고 지나간 지 열흘이 넘었다. 새해를 맞은 방송가는 어느 때보다 차분하고 조용하다. 하지만 겉으로만 그렇게 보일 뿐 '국민의 방송'이란 타이틀이 붙은 공영방송 KBS는 꼭 그렇지만은 않은 듯하다. 조직의 특성상 정치적 입김을 피할 수 없는 곳이라곤 해도 최근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이런저런 불만의 목소리가 그 도를 넘고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지난해 12월28일 '트로트대축제'가 방송되고 난 이후 여의도에는 여러가지 개운치 못한 소문들이 나돌았다. 내용인즉슨 '여가수 K는 여권 실세 S의원의 핫 라인이고, 또 다른 K 가수와 J, H도 국회의원들이 뒤를 봐주는 붙박이'라는 얘기였다. 실제로 '트로트대축제'에는 당초 출연키로 돼있던 가수명단에서 4~5명이 추가되는 바람에 조율하는데 애를 먹었다는 후문이다. 결국 넘치는 출연자를 모두 소화하느라 '떼창'으로 무대에 올리는 편법을 동원해야했다.

앞서 한달 전인 지난해 11월 방영된 '가요무대' 30주년 특집 때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당시 출연자 기준은 프로그램과의 특별한 인연이 있거나 오랜시간 '가요무대' 시청자들과 교감하며 가장 대중적인 사랑을 받은 가수들이었다. 해당 가수들한테는 상징성 있는 특집무대에 서는 것만으로 트로트 가수의 자존심을 세우는 자리였다. 하지만 일부가수들이 이전투구식 외부 입김을 동원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구설수에 올랐다.

사장이 바뀌고 임원진이 교체될 때마다 자괴감을 느낀다면? KBS 구성원들은 KBS가 거듭나기 위해서는 일대 혁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KBS 제공

◆ '여가수 K는 여권 실세 의원 핫 라인' 일부 가수들 외부 입김 동원

트로트가수가 주로 출연하는 '가요무대'나 '전국노래자랑' 같은 프로그램에 이런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로 통한다. 이들 두 프로그램은 30여 년째 롱런하면서 두 자릿수 시청률을 자랑하는 KBS 효자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불미스런 얘기들이 다시 불거진 것은 공교롭게도 사장단이 새로 교체된 직후다. KBS는 지난해 하반기 고대영 사장을 비롯해 전진국, 조문재 등 사장단이 새로 재편됐다.

사장은 KBS 공채 보도국 기자 출신이고, 두 명의 부사장은 KBS 예능국 PD와 방송기술 부문에서 잔뼈가 굵은 인사다. 기능적으로 적절히 조화를 이룬 듯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복잡한 속내와 정치적 역학관계가 함축돼 있다. 특히 드라마와 예능 등 콘텐츠 분야의 담당은 그 역할이 상당하다. 1985년 KBS 공채 11기 PD로 입사해 예능국장과 편성본부장을 거친 전진국 부사장은 직전 KBS아트비전 사장으로 있다가 이번 KBS 사장 공모에도 지원한 바 있다. KBS 구성원들은 "KBS가 거듭나기 위해서는 일대 혁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KBS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원하든 원치않든 사장이 바뀌고 임원진이 교체될 때마다 자괴감을 느낍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표가 나기는 커녕 줄을 잘못 서면 그만이거든요. 누구의 줄에 섰느냐에 따라 국장이 되고 본부장이 되는 상황에서 프로그램에 전심전력하기가 쉽지 않죠. 능력있는 PD라도 윗분의 눈에 벗어나면 연출 일선에서 멀어지고 전혀 무관한 파트로 발령이 나 도태되기 십상이고요. KBS가 구설수에 오르고 외부에 부정적 시선으로 비쳐지면 가족들 보기조차 민망할 때가 있어요."

실제로 KBS에는 아무런 역할 없이 월급만 축내는 PD들이 많다. 100여명의 PD가 소속돼 있는 예능국에만 10명이 넘는다. 형식상 기획팀(반)과 특집팀에 소속돼 있지만 거의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고, 사실상 잉여인력으로 분류되고 있다. 안팎에 비치는 '일하지 않고 놀고 먹는 월급쟁이'란 인식과 꼬리표가 당사자들한테는 피를 말리는 괴로움이다. 일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열정을 언급하는 것은 애초 의미가 없다.

주인없는 KBS는 꿈의 직장 고대영 KBS 사장은 올해 시무식에서 제작의 권한과 책임 사항을 명확히 규정해 KBS의 모든 콘텐츠가 논란으로부터 자유롭고, 확고한 시청자의 신뢰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더팩트 DB, KBS 포토뱅크

◆ 거대 공영방송 시스템, 소수 정치 성향 인사들의 사유물 전락 우려

KBS 예능국의 한 중견 PD는 "부당함을 따지고 바른소리 하는 구성원들이 배제당하는 현실에서 조직의 발전은 요원하다"며 "KBS의 특성상 다소 억울한 인사 피해를 봤더라도 능력있는 PD들은 곧 원대복귀 시켜주곤 했는데 최근 들어서는 철저하게 외면하고 짚밟는 풍토가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또 "외부 청탁을 물흐르듯 매끄럽게 소화하려면 아무래도 수족처럼 부릴수 있는 라인이 필요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거대 공룡으로 몸집이 커진 KBS가 몇몇 정치지향적 인물의 농단에 흔들린다면 국가적으로도 엄청난 손해"라고 꼬집었다.

매체환경이 급속도로 변하면서 언론의 생존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흔히 '주인 없는' KBS는 꿈의 직장으로 불리곤 하지만, 안일함과 느슨함을 벗기 위해 뼈를 깎는 자구 노력을 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일이 없다. 영원한 철밥그릇은 없다. 공짜 점심 없고, 대가 없는 청탁도 없다. 외풍에 흔들리면 언젠가는 역풍을 맞기 마련이다.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들을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 숫자와 비교한 일로 논란을 야기한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은 결국 이 일로 옷을 벗었다. 그리고 그는 뒷날 KBS 보도국장 재임시절 수시로 청와대로부터 외압과 사내 인사에 대한 개입이 있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트로트대축제'에 출연했던 중견 남자가수 A씨는 "연말 가요특집에 가수 몇 명 더 끼어들어온 게 무슨 대수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게 외부 입김이라면 문제는 달라진다"면서 "거대 공영방송의 시스템이 몇몇 인사들의 사유물로 전락한다면 이는 국민의 공분을 사고도 남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고대영 KBS 사장은 지난 4일 시무식 신년사에서 인사, 평가, 보상 시스템의 원칙있는 운영을 강조한 뒤 "급변한 방송환경 속에서 생존의 위기에 직면한 KBS는 변해야만 살 수 있다. 제작의 권한과 책임 사항을 명확히 규정해 KBS의 모든 콘텐츠가 논란으로부터 자유롭고, 확고한 시청자의 신뢰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KBS 수장이 된 이후 그의 첫번째 신년사가 정말 자기 반성의 일단인지, 아니면 겉 다르고 속 다른 말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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