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영의 펜질팬질] MAMA의 본질을 되새길 때다

2일 홍콩에서 열린 2015 MAMA 현장. 많은 현지 팬들이 K팝 스타들의 공연에 열광하고 있다. /CJ E&M 제공

'MAMA' 연말 시상식 본연의 취지에 충실할 때

[더팩트ㅣ정진영 기자] 'MAMA(Mnet Asian Music Awards,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즈)'에 대한 첫 기억은 약 1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학교 주변에 음식백화점이 있었다. 요즘으로 치면 분식계의 푸드코트 같은 곳인데 거기서 친구들과 떡볶이를 먹고 있었다. 10대 청소년들이 많이 가는 곳이라 늘 음악 방송이 나오곤 했다. 그 날엔 'MMF(Mnet Music Video Festival, 엠넷 뮤직비디오 페스티벌)'가 흘러나왔다.

당시 10대 솔로 소녀 가수들의 인기는 대단했다. 고(故) 죠앤과 고(故) 하늘, 다나, 유리가 그 대표주자들이다. 네 사람은 당시 'MMF'에서 흰 드레스를 입고 오르골 인형처럼 변신해 노래를 불렀다. 10여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뚜렷하게 기억되는 건 아마 이 풍경이 당시의 가요계를 가장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2000년 보아의 성공 이후 제 2의 보아를 꿈꾸는 소녀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던 그 때 말이다.

2001년 MMF 특별 무대. 당시 큰 인기를 누렸던 솔로 가수 다나 유리 죠앤 하늘이 룰러바이와 베이비 원 모어 타임을 부르고 있다. /엠넷 방송 화면 캡처

이후 'MMF'는 'MKMF(Mnet-KM Music Video Festival, 엠넷-케이엠 뮤직비디오 페스티벌)'로 바뀌었다가 지난 2009년 현재의 'MAMA'가 됐다. 2010년에는 처음으로 국내가 아닌 마카오에서 개최됐으며 2011년에는 싱가포르, 2012년부터는 홍콩에서 열리는 명실공히 아시아 최대 규모의 음악 시상식이 됐다. 실제 매년 1만 명이 넘는 관객들이 'MAMA'를 보기 위해 시상식장을 찾는다. 지난 1999년 '엠넷 영상음악대상'으로 시작했을 때와 비교하면 규모 면에서나 인지도 면에서 큰 성장을 이룬 셈이다.

국내 최초 음악전문채널의 시상식답게 'MAMA'에서는 '역대급'이라고 할 만한 무대들이 참 많았다. 신기하게 위의 경우처럼 오랜 시간이 지나도 뚜렷이 기억나는 장면이 한둘이 아니다. 현재까지도 역대 'MAMA' 최고의 무대라 일컬어지는 보아의 '오버 더 탑' 댄스 퍼포먼스(2005년 'MKMF')와 배우 김범을 사이에 두고 걸그룹 멤버들이 댄스 경합을 펼첬던 '배틀 오브 더 프린세스'(2007년 'MKMF'), 장근석의 파격적인 여장이 돋보였던 2007년 'MKMF'의 오프닝 무대, 탑을 순식간에 '성공한 팬의 정석' 자리에 올린 이효리-빅뱅의 '스캔들러스' 키스 퍼포먼스(2008년 MKMF), 팝가수 핑크의 무대를 따라했다는 논란이 있었던 원더걸스의 공중그네 퍼포먼스 같은 것들이 그 예다.

연예계 이슈가 많은 이들의 흥미를 끄는 건 사실이지만 사실 업계 종사자가 아닌 다음에야 누가 요즘 최고로 인기인지, 누가 앨범을 내고 누가 쉬고 있는지를 속속들이 알기 어렵다. 필자의 주변 지인들 가운데서도 방탄소년단이나 세븐틴 트와이스 아이콘 같은 그룹들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이들 그룹 모두 올해 앨범을 내고 팬덤을 크게 확장했다. 하지만 이런 지인들도 연말 시상식은 웬만하면 챙겨본다. 가요계를 훤히 꿰뚫고 있는 사람들이든, 아니면 아직도 세븐틴이라고 하면 "그거 젝스키스 나온 영화 제목 아니야?"라고 할 정도로 관심이 덜한 사람들이든 말이다. 어쨌든 연말 시상식은 많은 이들에게 한 해를 마무리하는 축제이자 가족들과 모여 앉아 TV를 보는 시간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MAMA를 빛냈던 역대급 퍼포먼스들. 위부터 보아 탑-이효리 원더걸스. /엠넷 방송 화면 캡처

'MAMA'의 역사를 화려하게 수놓은 위의 퍼포먼스들은 이 같은 평범한 대중에게 그 해의 가요계를 한 장면으로 설명하는 기능을 한다. 이런 무대 덕분에 우리는 여전히 지난 2005년엔 보아가 국내에서 최전성기를 맞았고 2010년엔 미국물 좀 먹은 원더걸스가 국내 활동을 재개했으며 현재 최정상급 인기를 누리고 있는 걸그룹들이 지난 2007년도에 쏟아져 나왔다는 것을 기억할 수 있다.

이 같은 측면에서 2일 열린 '2015 MAMA'는 못내 아쉬움을 남겼다. 한 해 동안 두드러진 활동을 펼친 가수들의 무대가 중심이 돼야 할 자리에서 오히려 그 가수들이 밀려났기 때문이다.

그 단적인 예가 신인상 부문이다. 아이콘과 함께 여자 부문 신인상을 받은 그룹 트와이스는 시상식 참석을 위해 홍콩까지 날아갔으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데에 만족해야 했다. 아이콘이 '지못미', '이리오너라', '리듬타'까지 세 곡이나 부른 것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베스트 그룹상 여자 부문에서 수상한 소녀시대는 태연 티파니 서현만 자리했고 베스트 밴드 퍼포먼스상을 받은 씨엔블루는 참석하지 않았다. 베스트 가수상 여자 부문에서 수상한 태연은 지난 10월 발매한 솔로앨범의 타이틀 곡 'I'라도 불렀지만 티파니와 서현은 수상소감을 할 때 겨우 입을 한 번 뗐을 뿐이다.

베스트 보컬 퍼포먼스 여자 부문에서 수상한 에일리 역시 상을 받으러 올라왔을 때 잠깐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을 뿐 어떤 무대에도 등장하지 않았다. 베스트 댄스 퍼포먼스 그룹상을 받은 레드벨벳 역시 자리에 앉아 다른 이들의 무대에 박수만 쳤다. 올해 국내에서의 활동이 전무한 투애니원이 나와 데뷔 곡 '파이어'까지 부른 것과 비교하면 엠넷의 처사가 너무하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가수들의 무대가 어디로 사라졌죠? 2015 MAMA에서 상은 받았지만 무대는 하지 않았던 가수 에일리 소녀시대 레드벨벳 트와이스(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CJ E&M 제공

가수들과 인터뷰를 할 때 자주 듣는 이야기가 있다. 상보다는 무대에 오른다는 게 더 의미가 있다는 말이다. 물론 상을 받아서 좋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마는 한 번 상을 받고 잊히는 가수보다는 오래 기억되고 무대에 오르는 가수가 되는 걸 더 바란다는 의미일 것이다. 실제 올해 'MAMA'에서 4관왕에 오른 빅뱅이 시상식 후 취재진과 가진 인터뷰에서 "시간이 허락하는 한 계속 무대를 보여주고 싶다"고 밝혔을 정도니 무대의 중요성을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한 해 동안 열심히 활동한 가수들에게 연말 시상식은 큰 의미다. 'MAMA'가 단지 아시아 전역에서 사랑받는 스타들을 위한 음악 페스티벌이었다면 신곡 무대를 처음 공개한 싸이도, 미국 데뷔를 앞두고 있는 씨엘도, 또 오랜만에 보는 투애니원 완전체의 무대도 즐거웠을 것이다. 하지만 연말 시상식이기에 'MAMA'는 이들보다는 올해 두드러진 활약을 보인 뮤지션들을 위한 자리를 더 넓혔어야 했다. 시간이 지나 '2015 MAMA'를 떠올릴 때 마약 밀반입 논란에 휩싸여 자숙하고 있던 박봄이 제대로 된 해명도 없이 무대에 올랐던 일만 생각난다면 올해 'MAMA'가 연말 시상식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룹 엑소의 멤버 수호는 정규 2집 '엑소더스'와 2집 리패키지 '러브 미 라잇'으로 올해의 앨범상을 받은 뒤 수상 소감에서 "사실 상에는 크고 작음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 상을 누가 받는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상의 가치가 판단된다고 본다. 이 상이 계속해서 큰 상일 수 있도록 앞으로 진짜를 들려드리고 진짜를 보여드리고 진짜를 하는 진짜 가수 엑소가 되겠다"고 말했다. 가수들이 아는 상과 무대의 가치를 정작 'MAMA'는 몰랐던 게 아닐지 반성해야 할 시점이다. 'MAMA'는 이제 특정 소속사나 인기 있는 몇몇 가수들만 밀어주기에는 너무 크고 역사가 깊은 시상식이 됐기 때문이다.

afreeca@tf.co.kr
[연예팀 | ssent@tf.co.kr]

Copyright@더팩트(tf.co.kr)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