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연의 무비무브] 예술극장 씨네코드 선재를 떠나보내며

영화배우의 인터뷰 장소로 주로 섭외되는 삼청동 카페골목. 삼청동 골목에 위치한 독립예술영화관 씨네코드 선재가 11월 30일을 끝으로 문을 닫는다. (위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 이새롬 기자

11월의 마지막날,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독립예술영화관 씨네코드 선재

[더팩트ㅣ성지연 기자] "인터뷰 장소 삼청동, 맞죠?"

영화담당 기자가 극장 다음으로 자주 가는 취재처를 꼽자면 삼청동이다. 북적이는 시청 광장을 조금만 벗어나면 소격동에서 삼청동길로 이어지는 고즈넉한 골목이 사방으로 펼쳐지는데 아기자기한 카페, 분위기 있는 식당, 갤러리 등이 즐비한 이곳은 연인들의 가장 선호하는 데이트 장소이기도 하다.

삼청동 골목은 또 배우들의 인터뷰 장소로도 유명하다. 영화 관련 인터뷰의 9할이 삼청동 카페에서 이뤄져 담당 기자들에겐 익숙한 취재장소다. 영화기자들끼리 우스갯소리로 '삼청동 지박령'이라 서로를 지칭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때문에 인터뷰 일정을 조율하는 필자가 홍보사 직원의 전화에 "삼청동, 맞죠?"라고 선수치는 게 자연스럽다.

스크린 스타, 삼청동에 있습니다 영화관련 인터뷰는 넓은 장소 섭외가 편리한 삼청동 카페골목에서 대부분 진행된다. /이새롬 이효균 기자

까마득한 선배들이 들으면 웃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필자에게도 삼청동이 낯설게 느껴졌던 '햇병아리 시절'이 있었다. 인터뷰하러 간 삼청동의 복잡한 골목길에서 길을 잃고 삼청공원 꼭대기에서 선배에게 울며 전화했던 시절, 영화배우들과 업계 관계자들 특유의 아우라에 기죽어 인터뷰가 끝나면 습관처럼 헛구역질을 했던 그때, 필자에겐 하루하루가 긴장과 스트레스의 연속이었다.

낯설고 무서운 삼청동이었지만 그 당시 유일하게 위로해준 장소가 있었다. 선배들의 화려한 인터뷰 기술, 홍보사 직원들의 냉랭한 말투, 배우들의 기에 눌린 날이면 항상 찾던 그 곳, 독립예술영화 극장 씨네코드 선재다.

인터뷰를 마치고 자신의 무지함에 자신감이 바닥을 칠 때면 눅눅한 몸을 이끌고 씨네코드를 찾아 영화를 관람하곤 했다. 대기업에서 만든 멀티플렉스 극장이 대부분인 요즘, 독립예술영화관 씨네코드는 언제나 여유로운 좌석으로 필자를 맞이했고 덕분에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울 수 있었다.

삼청동에 간다면 씨네코드 선재는 필수코스 씨네코드선재는 다양한 작품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고자 다채로운 이벤트와 기획을 마련하기도 했다. /씨네코드 선재 제공

신입 시절 피난처로 방문했던 씨네코드 선재지만, 시간이 지나며 습관처럼 안식처로 굳어졌다. 인터뷰를 마치고 바쁘지 않은 날이면 씨네코드 선재로 몸을 돌렸고 다양한 작품을 관람했다. 어떤 영화는 '이게 뭐야'싶을 정도로 이상했다. 또 어떤 영화는 너무 지루해 상영 내내 꾸벅꾸벅 졸기도 했다. 그리고 어떤 작품은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와 '내 인생의 베스트'로 기록됐다. 씨네코드 선재는 아는 것이 없어 슬픈 병아리 기자에게 다양한 장르와 국적 시대 영화를 경험하게 해준 가장 좋은 공부방이자 위로를 받는 곳이었다.

그런데 최근 씨네코드 선재가 11월 30일 자를 끝으로 폐업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극장을 운영해온 영화사 진진 측은 폐업 이유에 대해 건물주와 논의 끝에 임대차 계약이 종료됐다고 밝혔다. 관계자는 "다소 경황없이 마지막 인사를 전한 것에 양해를 부탁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씨네코드 선재의 폐업공문. 갑작스러운 폐업소식에 극장을 운영하던 영화사 진진 측은 양해를 구했다. /씨네코드 선재 제공

지난 2008년 개관해 7년간 운영된 씨네코드 선재의 폐업소식은 너무 안타깝다. 씨네필뿐 아니라 영화관련 종사자들에게 하나의 상징적인 장소였기에 최근 삼청동에서 만난 기자들은 슬픈 표정으로 폐업 소식을 전달하기에 바빴다.

삼청동은 부쩍 많아진 카페와 중국 관광객이 점령하고 있다. 부동산 가격이 치솟아 대부분 대형 프랜차이즈가 새롭게 입점했다. 변화하는 삼청동 풍경이 꼭 획일화된 신작 영화들과 닮아있다. 지난주 인터뷰가 끝난 뒤 씨네코드 선재를 방문한 필자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더욱 집중해 영국영화 '라이엇 클럽'을 관람했다.

영화가 세상에서 제일 무섭고 싫었던 필자에게 '제2의 선배'로 영화의 재미를 가르쳐준 곳이 삼청동 골목길과 씨네코드 선재다. 흥행에 무게를 둔 상업영화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아닌 신선하게 펄떡거리는 예술영화의 경험을 가능하게 해줬던 소중한 장소와 이별해야 한다는 사실이 그저 슬프다.

상영공간이 넘쳐나는 요즘이지만, 영화적 체험이 가능한 '진짜 극장'은 모두 죽었다는 생각은 그저 기분 탓일까?

'안녕, 씨네코드 선재. 그동안 고마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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