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로 입성한 지 얼마 안됐을 때 일화다. 비공식 석상에 초청받은 문화연예계 인사들 중에 개그맨 김종국도 끼어 있었다. 연예계에 소문난 입담꾼답게 그가 우스갯소리 한마디 안하고 넘어갔을리는 없다.
"지는 선거 몇개월 전부터 (근혜) 누님이 당선될 줄을 이미 알았습니더. 오랜만에 제 고향 문경 산골에서 하룻밤을 묵었는데예. 새벽에 동네 닭들의 울음소리가 이상하더라고요. 그래서 가만히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빠악~끄~네~애~에' 하고 홰를 치는 게 아니겠습니까. 깜짝 놀랐지요. 세상에서 가장 멍청하다고 알려진 닭들조차도 이랬으니 누가 (박근혜 당선을) 의심이나 했겠냐고요."
똑같은 얘기라도 시간과 장소, 청중이 누구냐에 따라 반응은 달라진다. 정치적 입장에 따라서는 다소 반감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당선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얼마든지 있을 법한 유머다. 좌중은 빵 터졌고, 그의 그럴듯한 닭울음 흉내는 두고 두고 회자됐다.
연예계에는 흉내꾼들이 꽤 많다. 우선 원맨쇼의 대가로 잘 알려진 코미디언 고 백남봉을 비롯해 지금도 현역으로 뛰고 있는 남보원이 터줏대감으로 꼽힌다. 개그맨 세대로 이어지면서 최병서 엄용수 오재미 김학도 등이 두각을 나타냈다. '인간제록스'로 불린 이들은 성대모사(대통령을 비롯한 정재개와 스포츠 연예계 등 유명인 목소리 흉내)가 주특기다.
그런데 같은 '복사기'라도 김종국은 말 닭 돼지 소 오리 개 등 유독 동물 흉내에 정통하다. 그가 '뻐꾸기를 몰고 다니는 사나이'로 불리는 이유도 살아있는 야생 뻐꾸기를 불러내는 신묘한 재주 덕분이다. 그것도 단지 소리 흉내가 아니라 암수 울음을 정확하게 구분할 만큼 정교하다.
실제로 가수 설운도는 김종국과 골프 라운드를 하다 특이한 광경을 목격하고는 깜짝 놀랐다. 김종국과 가볍게 내기골프를 하던 중 이날 따라 공이 잘 맞았고, 상대적으로 김종국은 침울한 분위기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김종국이 "행님, 오늘 공도 잘 안맞는데 제가 뻐꾸기들이나 한번 불러볼까요"라고 엉뚱한 제안을 했다.
"뭐 뻐꾸기를 불러? 내 살면서 뻐꾸기 소리는 자주 들어봤어도 눈으로 본 적은 단 한번도 없다. 공 안 맞는다고 별 희한한 '구찌'(일본어로 입이란 뜻. 골프에서 상대를 홀리게 하는 행위)를 다 하네."
김종국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더니 그럴싸하게 폼을 잡았다. 두 손을 입가에 대고 '뻐국~ 뻑뻐꾹~ 뻐국~' 하고 서너 차례 소리를 냈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대여섯 번 다시 소리를 만들어내자 멀리서부터 뻐꾸기들이 반응을 했다. 영락없는 뻐꾸기들이 모습을 드러냈고, 그것도 한두 마리가 아닌 5~6마리가 동시에 나타났다. 난생처음 보는 광경에 설운도는 어안이 벙벙했다고 한다.
"정말 믿겨지지가 않았죠. 그린 주변 소나무에 뻐꾸기들이 몰려와 종국이랑 교감하는 장면을 직접 보고나니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안가더라고요. 이때부터는 제가 공이 안 맞더라고요. '세상에 이런일이'에 딱 나올만한 장면이었죠."
이후로 설운도는 해마다 뻐꾸기 철이 오면 김종국과 자주 골프라운드를 주선한다. 뻐꾸기와 교감하는 즐거움을 다른 동반자들도 만끽하기 위해서다. 물론 김종국의 배꼽 빼는 입담은 덤이다. 신기하게도 김종국이 소리를 내면 뻐꾸기는 주변에 깊은 산이 없어도 어느틈에 날아온다고 한다.
"뻐꾸기는 원래 모습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뻐꾸기 울음은 많이 들어봐도 진짜 생김새를 볼 수는 없는 거죠. 뻐꾸기 습성 가운데 하나는 5월~6월 발정기에 암컷이 울어대면 사방 10리 밖에서도 수컷들이 호응하며 찾아옵니다."
김종국은 자칭 '문경 깡촌 촌놈'이다. 문경이 '깡촌'일 턱이 없지만 어린시절 그가 살던 지역은 산간 오지였다. 그래서 스스로 "개천에서 용났다"고 말하곤 한다. 설운도가 "종국이 그놈이 새소리를 그리 잘 내는 것은 어려서부터 오지 산중에서 자란 덕"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김종국이 최근 드라마 연기자로 다시 돌아왔다. 오는 9월부터 방영될 KBS2 수목드라마 '객주2015'에서 비중있는 배역을 맡아 변신한다. 이미 SBS 드라마 '야인시대' '뿌리깊은 나무' 등에서 꾸준히 활동한 중견이지만 그가 주목을 받는데는 이유가 있다.
"김종국이의 익살과 재치는 '부처님도 방긋 웃는다'고 할 만큼 정평이 나 있죠. 개그맨 선후배 화합의 자리에 가면 나이가 지긋하신 선배님들은 요즘도 김종국을 마이크 앞에 세우려고 안달입니다. 그만큼 웃기는 재주가 특별하기 때문이죠"
재주꾼은 재주꾼들이 먼저 알아본다. 그의 다재다능을 언급하는 개그맨 선배 엄용수의 말이 결코 빈말은 아니다. '빠악~끄~네~애~'의 즉흥 에피소드도 알고 보면 바로 이런 내공이 뒷받침된 애드리브였던 셈이다.
[더팩트|강일홍 기자 eel@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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