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의 영화인:生] 메르스도 이긴 부러운 공룡의 유전자

박스오피스 1위. 외화 쥬라기 월드가 북미시장 흥행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가운데 국내에서 개봉 11일 만에 300만 관객을 돌파했다. /UPI코리아 제공

'쥬라기 월드' 박스오피스 재탈환…340만 돌파

'중동호흡기증후군'(이하 메르스) 사태가 전국을 공포로 몰아넣은 지 한 달이 되던 무렵인 지난 주말, 당분간 절대 극장에 가지 말라던 어머니의 말이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영화 담당 기자에게 극장을 가지 말라는 건 회사를 그만두라는 것과 같은 의미다. 일반인에게 극장은 메르스 위험이 도사리는 바이러스 집결지처럼 비치는 것같다. 하지만 극장은 집 앞 편의점보다 자주 가는 곳이어야 하는 기자로선 자식걱정을 하는 부모의 심정까지 이해해드릴 여유가 없다.

이런 저런 우려를 뒤로하고 다시 극장을 찾았다. 휴가중 개봉으로 놓친 '쥬라기 월드'(감독 콜린 트레보로우)의 분위기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다. 주머니에 마스크를 챙긴 채 지인들과 용산 CGV 아이맥스관에 들어서니 의외로 관객은 많았다.

최근 SNS에서는 텅 빈 영화관 인증 사진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고, 지난주 영화관을 전세 낸 것처럼 혼자 영화를 봤다는 후배의 경험담도 들었던 터다. 공석은 거의 없었고, 심지어 영화관 안은 14년 만에 부활한 공룡을 만나기에 앞서 다소 들뜬 이들의 감정이 묘한 분위기를 형성했다.

전 세계 오프닝 주말 스코어 신기록. 쥬라기 월드는 북미 개봉주에 수익 2억 800만 달러(약 2326억 원)를 달성하며 앞서 어벤져스(2012)가 가지고 있던 2억 700만 달러 최고기록을 경신했다./UPI코리아 제공

놀라워할 때쯤 시야에 진풍경이 펼쳐졌다. 어두워 극장 안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도드라지게 눈에 띄는 것이 하나 있었다. 흰 마스크다. 극장 안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마스크로 자신의 호흡기를 철통 보안하고자 하는 '마스크족'들로 가득했다.

출퇴근 지하철에서 기침만 해도 눈 흘김을 당하는 시대다. 누군가 재차 기침하면 다음 역에서 하차하는 이들도 적지 않은 요즘이지만, 공룡 앞에서 그 걱정은 사라진 듯하다.

영화가 한창 중반부로 흘러가던 때였다. 에어컨 가동으로 인해 극장 안 온도가 내려갔고 몇 차례 기침 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쯧" "에이~" "뭐야!" 등의 불만 섞인 반응이 동시다발적으로 흘러나왔다.

문화 콘텐츠의 힘이 대단하다고 느껴지면서도 뭔가 씁쓸한 감정이 밀려온 것 바로 그때였다. 저들은 왜 좋아하는 영화를 보기 위해 마음을 졸이며 마스크를 써야 할까. 또 국민은 이러한 병균에 노출돼 취약한 관리를 받으며 자신의 건강과 목숨을 걱정해야 하는 걸까. 남의 암 투병보다 내 감기몸살이 더 아프게 느껴진다고는 하지만 이러한 불만과 짜증은 기자만이 느끼는 감정은 아닐 것이다.

정부 메르스 사태 진정 국면 메르스 사태가 전국을 공포에 몰아 넣은 가운데 22일 오후 5시 기준 감염자는 172명, 사망자 27명, 격리자 3833명, 퇴원자 50명을 기록하고 있다. /문병희 기자

하지만 걱정도 잠시였다. 무지막지한 공룡이 '쥬라기 월드'를 폐허로 만들 때쯤엔 메르스도 잊고 영화에 푹 빠져 들었다. 인도미누스 렉스(극 중 최강의 포식자)가 다른 공룡을 죽이기 위해 입을 크게 벌리며 울부짖을 때 필자도 함께 입을 벌렸고 쥬라기 월드 회장이 헬기 사고로 죽는 장면에서는 메르스 환자의 사망 소식을 접할 때처럼 슬펐다. 초등학교 당시 봤던 '쥬라기 공원'의 기억과 22년 만에 개장한 '쥬라기 월드'의 엄청난 CG와 공룡의 파괴력에 넋을 놓고 말았다.

그렇게 영화가 끝나자 메르스에 대한 걱정도 되살아났다. 관객들은 앞다퉈 영화관을 벗어나기 위해 자리를 박차고 나갔고 출구 주변은 무질서한 현장으로 변했다. 극장을 서둘러 빠져나가고자 하는 관객들을 몰리며 퇴장 속도는 더 느려졌다.

영화 시작 전부터 마스크를 쓰고 있던 이들은 여전히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마치 영화를 즐겁게 본 기쁨보다는 마스크의 답답함이 느껴지는 표정들을 짓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루빨리 마스크의 불편함과 건강에 대한 우려 없이 보고 싶은 영화를 보는 날이 왔으면 한다.

[더팩트ㅣ오세훈 기자 royz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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