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의 인기 비결은 유머 코드에 녹여낸 날카로운 풍자다. 제왕적 세습권력을 누리는 대한민국 상류층의 위선을 꼬집는 블랙코미디에 BGM로 깔리는 주제곡 '풍문으로 들었소'도 새삼 화제를 몰고 있다. 호연을 펼치고 있는 배우들의 매력분석, 전작 '아내의 자격' '밀회'에 이어 '안판석-정성주' 콤비의 뒷얘기, 원곡을 부른 '함중아와 양키스' 멤버들의 기구한 이야기 등 흥미진진한 스토리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풍문으로 들었소'에 얽히고 설킨 갖가지 사연들을 <더팩트>가 파헤쳤다.<편집자주>
'함중아와 양키스' 원조멤버, 펄벅재단 출신 혼혈 5인조 그룹
"멤버들끼리 장난삼아 흥얼거리다 즉석에서 만든 곡입니다. 코드도 없이 오르건, 기타 등 악기를 각자 만지작 거리다 곡이 나오고, 자연스럽게 가삿말이 붙여졌지요."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의 원곡은 1980년 이렇게 탄생했다. 함중아와 양키스의 원조 멤버 정동권(63)은 "처음 이 노래가 나왔을때 가요계 반응은 우릴 마치 정신병자 취급하듯 냉랭했다"면서 "당시 트렌드에 비해 워낙 파격적이고 생소한 장르였다는 것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평가를 받게 됐다"고 말했다.
그가 밝힌 대로 솔 펑키 장르를 표방한 이 곡은 춤을 추기도 어렵고, 따라부르기도 쉽지 않은 매우 난해한 노래였다. 그만큼 앞서간 곡이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함중아와 양키스의 멤버는 5명으로, 사회복지법인 펄벅재단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같은 나이의 친구 사이이면서 전원 혼혈아다.
아버지의 출신 국적도 모두 다르다. 베이스기타 정동권이 영국 스코틀랜드이고, 고 한태곤(유대계), 고 이수한(이디오피아), 신창호(독일), 그리고 함중아가 프랑스계(실제로는 순수 한국혈통이란 주장도 있음)로 알려져 있다. 70년대 후반 최고의 인기를 누린 '함중아와 양키스'는 멤버들중 세 명이 82년 미국 시민권을 얻어 아버지 나라로 돌아면서 팀이 해체됐다.
"레이건 대통령 당시 한국 혼혈아들에게 본인이 원할 경우 시민권을 줬어요. 미국 정부가 정책적으로 해외에 머물던 미군 자녀들을 수용한 것인데 한꺼번에 세명이 빠지는 바람에 어쩔수 없이 팀이 해체됐습니다."
미국으로 떠난 세 사람중 오르건을 맡은 한태곤과 이수한이 세상을 떠났고 현재 신창호(세컨기타)가 현지에 거주하고 있다.
국내에 남은 함중아는 솔로 변신해 활동을 계속했고, 정동권은 어머니가 계신 포항으로 내려가 살다 연기자로 방향을 틀었다. 그는 정주영 일대기를 그린 '성공시대'와 '독도수비대' 등에 출연한 뒤 CF 스타로도 주목을 끌었다.
신중현씨 찾아가 기타 배우고 데뷔 70년대 인기그룹 부상
-70년대 후반 인기 그룹으로 화려하게 부상했는데.
76년 '정든고향'으로 데뷔한 뒤 4~5년간 꽤 많은 곡이 떴습니다. 발표만 했다하면 인기곡이 됐어요. '내게도 사랑이' '조용한 이별' '풍문으로 들었소' '안개속에 두 그림자' 등 TBC TV '가요톱10' 상위권을 휩쓸었으니까요. 아마 TBC가 통폐합되지 않았다면 그 열기가 꽤 오래 이어졌을 겁니다.
-활동하면서 멤버들끼리 어떤 에피소드가 있었나.
동갑내기에 멤버 모두가 혼혈아라는 공통점이 있었지만 아버지 국적(출신)이 달라서인지 각자 개성이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특히 세컨기타 신창호와 오르건 한태곤이 특히 많이 부딪쳤어요. 평소엔 별 문제가 없었는데 이상하게 무대만 올라가면 심하게 다퉈 저와 이수한이 늘 말리느라 애를 먹었죠.
-음악을 하게 된 분명한 계기가 있었을 것 같다.
우린 모두 혼혈아라 군대도 못가고 공무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당시엔 사회적으로 여러가지 제약이 많았거든요. 그러다 어린시절을 동병상련 감정으로 함께 지낸 친한 친구들끼리 음악을 한번 해보자는 의기가 투합된거죠.
-모두 음악적 재능이 있었던건 아닐텐데 데뷔과정이 궁금하다.
1년 정도 펄벅재단 내에서 기타연습을 하다가 신중현씨를 찾아갔습니다. 신중현로부터 기타 등 악기를 2년간 체계적으로 배우고, 그의 주선으로 당시 이대 음대교수였던 이교숙씨한테 작곡 등 음악 이론공부를 병행했어요. 아마도 음악 스승님들을 제대로 만난 덕분에 데뷔하자마자 좋은 반응을 낸 것 같아요.
팀 해체후 20년만에 홍키통키곡 '와라와라 뚝딱' 컴백
-상당기간 정상급 그룹가수로 활동했으면 수익도 많았을 것같다.
당시는 레코드사에 모든 판권을 일임하던 시절이었어요. 인기 가수라도 돈을 버는 것과는 거리가 있었죠. 물론 부족함 없이 활동은 했지만 무대를 떠나는 순간 남는게 없더라고요. 톱가수가 되면 경제적 부가 뒤따르는 요즘 같았다면 멤버들이 미국으로 떠나지는 않았겠죠.
-그룹 해체후 함중아씨와 둘만 남았는데 노래를 계속할 생각은 없었나.
82년도에 셋이 한꺼번에 떠나면서 자연스럽게 해체됐는데 애초 팀 색깔이 혼혈 멤버였기 때문에 따로 충원해 재결성할 형편도 아니었어요. 이후 함중아씨는 솔로 활동을 했고, 저는 한동안 쉬다가 연기자로 변신을 했습니다. 한때는 연기자로 알아보는 사람들이 꽤 많았어요.
정동권은 팀 해체후 20년만인 지난해 음반을 내고 가수로 컴백했다. '꼴찌의 착각'에 이어 최근 발표한 '와라와라 뚝딱'은 라디오에 전파를 타면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홍키통키 장르의 빠르고 감각적인 곡으로 한번만 들어도 어깨가 들썩들썩해질 만큼 흥겹고 재미나다.
연기자로 활동할 당시 방송 CF사상 최장 방송 기록(몽쉘통통 3만2000초)을 갖고 있는 그는 가요계 복귀 이후 지난해엔 KBS 2TV '7080 콘서트'에 출연, '풍문으로 들었소' 등 추억의 곡들 불러 주목을 끌기도 했다.
[더팩트|강일홍 기자 eel@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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