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무대 경험…가수인생 2막 지금부터 시작
"결국 무대밖에 없어요. 가수는 무대 없인 못 살아요. 행여나 형한테 누가 될까 나서지 못한 것이 이렇게 오랜 세월을 보낸 것 같네요. 저만의 색깔로 당당하게 나서고 싶습니다."
가수 나진기(48·본명 최진기)가 26년 동안 무대를 떠나지 못하고 마이크를 쥐고 있는 이유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봄날 미사리에 있는 '윤시내 카페'에서 만난 나진기는 긍정 에너지가 넘쳤다.
갈색 염색 머리에 꼬불꼬불하게 파마 한 머리스타일, 세련된 남색 정장과 스카프, 뿔테 안경에 화려한 신발까지 나진기는 딱 봐도 영락없는 가수다. 그의 얼굴에는 시종일관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나진기는 무대가 있어 언제나 즐겁고 힘이 난다며 크게 웃었다.
그를 본 사람이라면 또 다른 한 명을 더 떠올리게 된다. 흡사 현실에서 나훈아(68·본명 최홍기)의 과거를 만난 듯한 느낌까지 선사하는 나진기는 사촌 형 나훈아의 젊은 시절 외모를 빼다 박았다. 외모만이 아니다. 가창력과 카리스마, 무대 퍼포먼스도 그 형에 그 아우다.
"다들 저를 보고 외모부터 창법, 구강구조까지 형님(나훈아)과 똑같다고 하세요. 정말 감사하죠. 워낙 대단한 형님이다 보니 제가 언급하는 것 자체가 민폐더라고요. 감히 형의 이야기나 함께했던 일화를 말하지 못합니다. 형님은 형님, 저는 저 나진기로 봐달라고 부탁하죠."
나진기는 노래가 좋았지만, 무대에 대한 꿈을 드러내지 못했다. 최 씨 집안에서 가수는 나훈아 하나면 충분했기에 그는 꿈을 숨긴 채 사업·빵집·건축업 등에 마음을 뒀다. 그 노력이 무대를 향해 끓어오르는 뜨거운 피를 잠재우지는 못했다. 괜히 피하다 절친한 친구에게 사기를 당해 경제적 어려움에 빠지기도 했다.
결국 밤무대와 라이브 카페에 서며 그간 억누른 끼를 분출했다. 나훈아가 평생 스승이자 동경의 대상인 덕에 나진기는 자연스레 누구보다 나훈아와 비슷한 느낌, 못지 않은 실력의 가수가 돼 있었다.
그는 "처음엔 정말 좋았다. 감히 생각지도 못하는 형님을 닮았다는 말을 들으니 얼마나 좋던지, 행복했다"면서도 "시간이 갈수록 그리고 뭘 해도 형님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현실은 생각보다 냉정했다"고 말했다.
일부러 다른 창법을 구사하려 노력했다. 발라드와 댄스 느낌을 가미한 세미트로트 곡을 열심히 연습했고 통기타를 들고 애절한 곡을 주로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뽕끼'에 대한 목마름이 간절했다. 팬들은 그보다 더 그가 나훈아의 노래를 불러주길 바랐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노래가 신곡 '최고의 여자'다. '최고의 여자'는 작곡가 송재철이 멜로디를 만들고 가수 설운도가 노랫말을 붙인 곡으로 사랑에 빠진 남자가 여자에게 '최고'라고 고백하는 트로트 넘버다.
"'전국노래자랑'과 어울리는 곡이에요. 형님 밑에서 배운 10년 내공이 녹아있죠. 가수는 곡 제목처럼 된다면서요? 저도 최고의 가수가 되고 싶습니다. (웃음)"
나훈아라는 그늘에 가려져 26년을 보냈지만, 사실 나진기는 가요계 관계자들이 인정한 실력파다. 실제로 그는 나훈아의 공연에서 모든 리허설을 대행했다. 형도 아우의 실력을 인정했다는 얘기다.
선배 가수 설운도는 "나도 가수지만 대한민국에 나진기만큼 나훈아 노래를 잘하는 가수는 없다. 최고다"라고 입에 침이 마르게 그를 칭찬했다.
미사리에서 라이브 카페 '열애'를 운영하고 있는 오균아 대표는 "나진기는 큰 그늘에 갇혀 있기엔 아까운 인재"라며 "나훈아에게 누구보다 열심히 준비하고 공부하는 자세를 배운 프로"라고 말했다.
수록곡 '그리고 후회' '어떻게 해야 하겠니'는 고(故) 이호준 작곡가의 유작이기도 하다. 함께 일하는 동료·선후배가 나진기의 열정과 실력을 먼저 알아봤다.
누군가의 말대로 "이대로 썩기엔 아까운 친구"다. 그는 "돌고 돌았지만 결국 돌아온 곳은 무대"라면서 "예전에 아무것도 모르고 무식하게 덤볐지만, 이젠 알수록 무서운 곳이 바로 무대다. 제대로 그리고 더 열심히 해보고 싶다"고 의지를 다졌다.
"과거 나훈아 형님이 '참고 기다려야 한다. 때는 온다' '상상하고 꿈을 꾸면 현실이 된다' '처음도 둘째도 셋째도 연습이다' '노력이 가수를 만든다'고 조언해 준 것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배고픈 거지가 더 참아야 한다고 해서 참고 견뎠습니다. 그리고 이젠 날개를 펼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지켜봐 주세요. 꼭 좋은 가수가 되겠습니다."
[더팩트ㅣ미사리=오세훈 기자 royz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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