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광태 "죽을 때까지 일본 안 간다" 선언 후 19년째 일본과 단절
'독도는 일본 땅이고,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 일본 정부의 독도 관련 서술이 황당하다. 이번엔 교과서에다 기정사실로 못을 박았다. 그런데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래야 고작 '외교적 항의'가 전부이고 보면, 국민들은 분개에 앞서 짜증부터 난다.
일본이 독도를 언급할 때마다 속이 뒤집히는 사람은 정작 따로 있다. '울릉도 명예군수'에 이어 '독도 홍보대사'로 잘 알려진 가수 정광태다. 그의 심정이 듣고 싶어 6일 밤 늦게 전화를 했다. 아니나 다를까 "일본이 그동안의 억지 구호에 그치지 않고 독도를 아예 일본 땅으로 단정지었다"면서 "벌건 대낮에 우리 땅을 송두리째 빼앗긴 느낌"이라고 울분을 토한다.
독도와 정광태의 인연, 그리고 정광태와 일본의 악연은 길고도 질기다. 정광태는 1982년 '독도는 우리 땅'을 발표하면서 처음 독도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독도 명예군수'로 위촉돼 33년째 독도사랑과 독도지킴이를 자처하고 있다.
'울릉도 동남쪽 뱃길따라 200리 외로운 섬하나 새들의 고향/ 그 누가 아무리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도 독도는 우리땅/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동경 132 북위 37/ 평균기온 12도 강수량은 1300 독도는 우리땅~'
그의 남다른 독도 사랑은 일본과 악연이 됐다. 정광태는 1996년 독도 관련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하기 위해 비자 신청을 하러 갔다가 결격 사유 통보를 받는다. '독도' 노래를 부른 가수라는 이유였다. 그는 대사관 측에 항의하는 퍼포먼스로 서류를 돌려받아 '죽을 때까지 일본에는 안 간다'는 선언과 함께 그 자리에서 북북 찢어버렸다. 이후 지금까지 19년째 일본과 척을 지고 산다.
일본이 한국 연예인들에게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가수 이승철은 지난해 11월 일본 지인의 초대로 일본을 방문했다가 하네다 공항에서 4시간 가량 억류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그가 광복절 행사를 위해 독도를 방문하고, 통일을 염원하는 '그날에'를 불렀다는게 이유였다.
이승철이 일본 측의 부당한 처사를 문제삼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자 대마초 흡연 사실을 끄집어냈지만 스스로 억지였음을 시인한 꼴이 됐다. 이승철은 1990년 대마초 사건에 연루돼 5년간 방송활동을 할 수 없었지만, 이후 20여년 간 일본을 15차례 입국했고 2000년대 초반에는 일본 현지서 대규모 콘서트를 가졌으니 말이다.
2012년 독도 수영 횡단 프로젝트에 동참한 배우 송일국에 대해 일본 외무성 야마구치 츠요시 차관이 '송일국은 일본에 입국하기 힘들 것'이라는 말을 해 논란을 야기했고, 2011년에는 씨엔블루, 비스트 등 케이팝 가수들이 공항에 억류되기도 했다.
'독도는 우리 땅'은 국민 가슴에 담은 불후의 히트곡이자 애창곡
같은 연예인이라도 정광태의 속은 유독 부글부글 끓는다. 요즘도 매년 5차례 이상 울릉도와 독도를 오가는 '연예인 원조 독도 지킴이'라서일까. 그의 분노를 짐작할 만하다.
"일본 중학교 교과서 검정으로 촉발된 한국민의 분노는 매번 그랬듯이 일회성 분노로 그칠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범 정부 차원에서 강력하게 맞대응해야 합니다. 우리의 역사이자 상징인 독도를 강탈하려는 것은 날강도 심보인 거죠. 일본이 억지를 부려 독도를 꼭 갖겠다고 하면 이 참에 우린 대마도를 내놓으라고 해야 맞습니다."
그나마 정광태의 울분을 위로하는 것은 자신이 부른 '독도는 우리땅'이다. 노랫말은 마치 자연사 박물관 처럼 그를 포근하게 감싼다. 그래서 그에게는 가수 생활 30여년간 그 무엇과 바꿀 수 없는 불후의 히트곡이 됐고, 국민의 가슴 한편에도 영원한 애창곡으로 남아 있다.
'오징어 꼴뚜기 대구 명태 거북이 연어알 물새알 해녀 대합실/ 17만 평방미터 우물하나 분화구 독도는 우리땅/ 지증왕 십삼년 섬나라 우산국 세종실록 지리지 50페이지 셋째줄/ 하와이는 미국땅 대마도는 몰라도 독도는 우리땅~'
[더팩트|강일홍 기자 eel@tf.co.kr]
[연예팀 │ 연예팀 ssent@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