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캐릭터는 이번이 마지막!"
배우 김상경은 스스로 '마지막'이란 단어를 사용하며 깔깔 웃었다. 덤덤한 표정에 후련한 말투다. 영화 '살인의뢰'로 또 한번 형사로 관객을 만나는 그는 "형사 3부작 시리즈를 마무리하는 기분이다"며 미소짓는다.
김상경. 최근 종영한 KBS2 주말드라마 '가족끼리 왜이래'에서 어리바리 문상무 역을 맡아 안방 시청자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그가 살인마에게 희생된 동생의 시체를 찾아 처절하게 스크린을 누빈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그는 '가족끼리 왜이래' 속 귀여운 문 상무와 다를 바 없는 너스레로 취재진을 반겼지만, '마지막'을 언급하는 그의 표정은 진지했다. 진지하지만, 유머 또한 포기하지 않는 배우 김상경과 나눈 이야기를 풀어본다.
김상경은 오늘(12일) 개봉하는 '살인의뢰'(감독 손용호, 제작 미인픽쳐스, 배급 씨네그루 다우기술)를 통해 강력계 형사를 연기한다. 지난 2013년 '몽타주'와 2003년 '살인의 추억'에 이어 세 번째다. 그래서 그런지 스크린 속 강력반을 오가는 김상경은 어딘지 모르게 익숙하고 자연스럽다. 최근까지 드라마에서 말쑥한 슈트를 입고 있던 그도 생각나지만, 후줄근한 청바지 또한 이질감은 없다.
"세 번째면 많은 것도 아니잖아요. 그런데 '형사전문 배우'라고 부르더라고요? 똑같은 캐릭터를 수없이 하는 배우들이 얼마나 많은데(웃음). 대중들이 '살인의 추억' 속 제 캐릭터가 가장 인상 깊었나 봐요. 하지만 '살인의뢰' 속 태수는 그간 맞았던 형사들과 조금, 아니 많이 달라요.
'살인의뢰'는 연쇄 살인범에게 여동생을 잃은 남자와 아내를 잃은 평범한 남자의 분노에 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그의 말처럼 '살인의뢰' 속 김상경은 앞선 두 작품과는 크게 다른 색깔을 보인다.
"앞서 '몽타주'와 '살인의 추억'에선 범인을 잡기 위해 끈질기게 사건에 매달리는 형사를 연기했어요. 남의 일에 오지랖이 넓은 스타일이죠. 하지만 이번엔 경우가 달라요. 직업은 형사가 맞는데 거기에 연쇄 살인마에게 여동생을 잃은 피해자기도 하죠. 어찌 보면 형사를 연기했다기보다 피해자를 연기했다는 설명이 어울리겠네요."
그는 '살인의뢰'가 개봉하면 많은 사람이 작품이 던지는 질문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지 않겠느냐고 넌지시 물었다. 그가 이번 작품을 선택한 이유기도 했다.
"영화는 살인마에게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피해자들이 복수를 꿈꾸는 이야기에요. 저는 그 가운데 형사라는 직업과 '사적 복수' 안에서 갈등하죠."
"이런 영화는 시도 자체에 의미를 두는게 맞다고 생각해요. 예민한 문제를 수면 위로 올려서 공론화하는 시도 말예요. 한 쪽으로 치우쳐서 '이 방법이 맞다'고 무게를 두는 건 맞지 않는 거 같고요. 활발한 토론의 장'이 열리길 기대하고 있어요(웃음).
처음으로 가족과 형사 입장을 모두 경험한 김상경은 이번 작품에서 '절대 악'으로 표현되는 연쇄 살인마 강천(박성웅 분)에 수없이 분노했다. 형사로'만' 분했을 때와 비교해보면 이번 작품은 그에게 고문과 비슷했다.
"살인마로 변한 박성웅 씨랑 대면하는 장면이 있는데요. 박성웅 씨가 원래 '소녀감성'이라 살인마 연기를 하고 잠도 설치고 그랬어요(웃음). 그런데 막상 '슛'들어가니까 연기를 소름 끼치게 잘하는 거지. 내 동생을 죽인 살인마가 내 눈앞에서 이죽거리니까 미치겠더라고요. 빨리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눈물도 멈추질 않고 손이 덜덜 떨려서 혼났어요."
김상경은 당시를 회상하며 유쾌한 소리로 웃어 젖혔다. 진지하다가도 푼수처럼 변하는 그의 속을 도통 알 수 없다. 매번 작품을 통해 관객들에게 어려운 숙제, 혹은 굵직한 메시지를 전하는 김상경이기에 더욱 그렇다. 그도 취재진의 고민하는 눈빛(?)을 눈치챘는지 스스로 대답을 이어간다.
"저는요. 발언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안성기 선배님이 그러셨죠. 배우가 정치적인 성향, 사회적인 주장을 시작하면 그 반대편에 있는 관객을 잃게 된다고요. 무언가를 주장할 만큼 제가 바르게 사는 인간도 아니고요(웃음). 연기를 열심히 하고 가족에게 잘 하는 남자가 되고 싶은 것뿐이죠. 가족이 있으니까, 지키고 싶은 내 사람들이 있으니까 '살인의뢰'를 선택한 거 아닐까요?"
김상경은 마지막으로 이번 작품을 끝으로 형사 캐릭터에선 은퇴하겠다고 공언했다. 단호한 말투에 이유를 물었다.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아니, 생각해봐요. 지금도 '형사 전문 배우'로 불리는데 이번 작품 개봉하면 감독님들이 나한테 형사 역할 시켜주겠어요? 하하하!"
[더팩트ㅣ성지연 기자 amysung@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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