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리'부터 요나가 뛰었던 홍대 거리까지…'킬미 힐미' 촬영지를 가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라는 말이 있다. 한 시민단체에서 추진한 화장실 이용 문화 운동의 캐치프레이즈다. 화장실을 깨끗하게 써달라는 의미이지만 꼭 화장실이 아니더라도 이 말은 어디에나 적용된다. 누군가 머물다 간 자리엔 싫든 좋든 그 사람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래서 <더팩트>가 최근 인기리에 방송되고 있는 MBC 수목드라마 '킬미 힐미'의 촬영지를 찾았다. '킬미 힐미' 종영까지 앞으로 2회. 차도현부터 요나까지 지성의 7가지 인격의 흔적을 찾아 나선 이 길이 '킬미 힐미' 애청자들의 아쉬운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줄 수 있기를.
◆ 오후 10시, 한강 잠원지구. "기억해? 네가 나한테 반한 시간."
'킬미 힐미' 1회에서 신세기(지성 분)는 선상 클럽에서 나와 오리진(황정음 분)에게 고백한다. "기억해. 1월 7일 오후 10시 정각. 내가 너한테 반한 시간이야." 그때만 해도 몰랐다. 이 말도 안 되는 대사가 '신세기 앓이'의 시작이었다는 걸.
26일 늦은 오후 서울시 강남구 한강 잠원지구의 웨이브(WAV)를 찾았다. 바로 이곳이 신세기가 오리진에게 반한 곳, 그리고 세기가 여성 시청자들의 마음을 훔친 곳이다. 웨이브는 복합 문화 라운지 공간으로 다양한 파티가 열리는 곳이다. 오픈 행사에서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DJ 리햅(R3HAB)이 공연을 펼쳐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그런데 하필 이날은 파티가 없었나 보다. 웨이브는 어두웠고 한강 바람은 찼다. 불 꺼진 웨이브 앞을 조깅하는 사람들 몇몇이 지나갔다. 바로 옆에 있는 선상 레스토랑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부질없이 중얼거렸다. "기억해? 네가 나한테 반한 시간이잖아."
◆ "기억 떠올리는 걸 멈춰주면 안되겠습니까?" 도현의 눈물.
잠원지구를 떠나 7가지 인격의 주인 차도현(지성 분)과 오리진의 추억이 깃든 장소로 향했다.
밤 12시를 향해가는 시간 인천 서구에 있는 가톨릭관동대학교 국제성모병원에 도착했다. 이 병원은 '킬미 힐미'에서 오리진이 일하는 강한 병원의 배경이 된 곳이다. 촬영을 할 때마다 매번 로고를 새로 붙이는지 '킬미 힐미'의 흔적을 찾을 순 없었다. 하지만 늦은 시간에도 병원 불은 환했고, 덕분에 15회에서 기억을 되찾은 차도현이 오리진을 안고 울었던 장소를 발견했다.
이 병원은 차도현 뿐만 아니라 신세기가 등장했던 곳이기도 하다. 오리진은 2회에서 싸움을 하다 다친 세기를 이 병원에 데리고 와 치료했다. "옷을 벗으라"는 리진의 말에 세기가 정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옷을 다 벗어 리진이 비명을 질렀던 특별한 추억이 있는 장소다.
◆ 오후 4시, 마포구 한 빌딩 "단 1초라도 늦으면 안 돼."
오리진이 차도현의 주치의가 된 계기, 자살 지원자 안요섭(지성 분)의 흔적을 찾았다.
'킬미 힐미' 7회에서 요섭은 미국으로 떠나려는 오리진에게 "결국 도현이 형도 누나한테 버림받은 거네"라며 "더 이상 살아봤자 의미 없어. 괴물 취급도 돌연변이 취급도 지겨워 이제. 차라리 죽어버리려고"라고 말한다.
당황한 오리진은 "다잉메시지(죽기 직전에 남기는 마지막 메시지)를 남길 정도면 할 말이 있다는 거 아니냐. 나랑 얘기하자. 내가 바로 가겠다"고 호소했고, 요섭은 게임을 제안한다. 1시간 안에 자신을 찾으면 자살을 멈추겠다는 것. 이때 시간이 오후 3시였다.
26일 오후 4시쯤 요섭이가 뛰어내리려던 서울 마포구의 한 빌딩을 찾았다. 힘들게 옥상을 찾아 올라가니 안요섭이 남긴 다잉메시지가 남아 있었다. 요섭은 차도현의 안에 7가지 인격이 살았다는 걸 알리기 위해 페인트로 7가지 인격을 구현했다.
오리진이 안요섭의 죽음을 막았던 것처럼 정말 간발의 차였다. 이날 '킬미 힐미' 제작진은 요섭의 다잉메시지를 지웠다. 안요섭이 남긴 흔적이 사라지기 직전에 현장에 도착했던 것. 요섭이처럼 옥상 난간에 올라서자 서울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였다.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웠던 17살 고등학생 요섭이는 이곳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 "오빠 나 잡아 봐~" 요나가 뛰었던 홍대 거리.
요섭이 인격의 쌍둥이 여동생 안요나(지성 분)가 오리온(박서준 분)과 처음 만났던 장소를 기억하시는지. 25일 오후 6시가 조금 안됐을 무렵 요나와 리온, 그리고 리진의 추격전이 벌어졌던 홍대 거리를 밟았다.
'킬미 힐미' 13회에서 차도현은 오리온으로부터 오리진과 헤어져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괴로워하는 도현의 안에서 '고통의 관리자'라 불리는 요나가 튀어나왔다. 잘생긴 남자를 좋아하는 요나는 리온을 보자마자 "오빠"라 부르며 케이크를 사달라고 요구했다.
케이크를 사준 것까지는 좋았지만 차마 먹여줄 수 없었던 리온은 결국 리진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하고. 상황을 지켜보던 요나는 "안 먹여주면 나 이 테이블에 올라가서 춤춘다"고 경고한 뒤 그래도 리온이 꿈쩍하지 않자 "오빠, 나 잡아 봐!"라며 카페 밖으로 뛰쳐나간다. 이때부터 안요나 오리온 오리진의 추격전 시작. 홍대 정문을 등지고 오른쪽으로 걷다 보면 이들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 "나 페리가 나왔당께. 으미~ 곡주 익은 냄시." 경기도 남양주시 쌍리.
마지막으로 소개할 곳은 오리온 오리진 남매의 부모님이 운영하는 음식점 '쌍리'다.
주인공 남매가 생활하는 곳이기에 쌍리는 '킬미 힐미'의 주된 촬영지였다. 헤어지기 싫어하는 차도현과 오리진의 마음을 눈치 채고 뛰쳐나온 페리가 "마음이 가면 몸도 따라가는 것인디 이거 따지고 저거 따지고 어느 세월에 정분을 나누겠는가. 아따 대갈빡에 먹물 든 것들은 참말로 안되겄어. 으미~ 곡주 익은 냄시"라며 기뻐하던 곳도 바로 여기다.
경기도 남양주시 수석동에 있는 쌍리는 가든갤러리라는 이름의 실제 음식점이다. 다양한 음식과 음료를 판매하고 있고, 하우스웨딩 등 여러 행사도 진행한다. 26일 오후 가든갤러리를 찾았는데 실제 이날 새벽까지 이곳에서 촬영을 했다고.
아직 한창 촬영이 진행되고 있던 때라 가든갤러리 곳곳에는 '킬미 힐미'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쌍리라는 간판도 여전했다.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사장 유명종 씨는 "가든갤러리를 10년 가까이 운영하고 있는데 '킬미 힐미'가 방송되는 짧은 시간동안 쌍리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졌다. 이참에 이름을 바꿔야 할까 싶다"며 웃었다.
서울 시내에서 떨어진 곳이다 보니 단체 예약이 몰리는 12월 이후부터 2월까지는 비수기라고. 하지만 '킬미 힐미' 덕에 꾸준히 방문객이 찾고 있어 유 씨는 기쁘다고 했다.
"1년 중에 가장 장사가 안 될 때가 지금인데 방송 덕분에 손님들도 많이 늘었어요. 방송이 끝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홍콩이나 대만, 일본 관광객도 오고 있어서 긍정적으로 보고 있어요. 1월에서 2월은 춥고 매출도 떨어지는 시기인데 올 겨울은 '킬미 힐미' 덕에 따뜻하고 즐거웠어요."
유 사장은 가든갤러리, 혹은 쌍리의 곳곳을 안내했다. 오리진 오리온 남매가 키우는 강아지 리나의 집도, 오리온 가족이 군고구마를 구워먹었던 테라스도, 오리온과 차도현이 장작을 팼던 곳도 그대로였다. 음식점 2층의 한쪽 벽면에 설치된 스크린에서는 '킬미 힐미' 영상이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설 당일이었던 지난 19일 방송된 14회에서 오리온 가족과 차도현이 카메라를 향해 새해 인사를 했던 테이블에 앉았다. 이곳에서 차도현의 모든 인격을 펼쳤다.
"'킬미 힐미' 지성의 인격 흔적 찾기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더팩트ㅣ정진영 기자 afreeca@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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