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의 위기…창작은 표현의 자유가 보장될 때 아름답다
새해를 맞이하며 영화계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가요 기자 한 명이 영화 담당으로 오며 떠들썩해진 것이라면야 참으로 좋겠지만, 애석하게도 그렇지 않다.
수년째 음악과 패턴이 비슷한 것들이 가요계 위기론의 핵심이었다면 영화계 논란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에서 비롯되는 듯하다. 창작이 주인 문화 산업이 표현의 자유를 침범받을 상황에 놓였다는 것은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한마디로 말해 위기이며 길게는 창작이 가진 생기 자체를 잃게 되는 문제로 풀이된다. 그렇기에 최근 발생한 두 가지 사건은 초짜 영화 기자에게도 크게 다가왔다.
최근 논란을 일으킨 이용관 부산영화제(BIFF) 집행위원장에 대한 부산시의 사퇴 권고는 이미 영화계에 큰 충격이자 가장 큰 이슈로 떠올랐다. 그게 끝이길 바랐지만 이내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영화제 심의 규정 개정을 계획하고 있다고 알려져 모두를 놀라게 했다. 영화제 출품작에 대한 등급분류 면제 조항은 2일 영진위의 발표대로 일단 잠정 보류됐지만, 그리 좋아할 일은 아니다. 단지 시작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지난 30일 영진위는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영비법) 제29조 제1항 단서조항 '영화상영등급분류 면제추천에 관한 규정'을 개정하려 했다. '영화상영등급분류 면제추천에 관한 규정'은 영진위나 정부, 지자체의 주최 및 주관하는 영화제 등에서 영화상영 등급분류를 면제해 주는 제도다. 종전까진 영화상영등급분류를 받지 않은 영화도 조건에 맞는 영화제라면 상영할 수 있었지만, 규정이 바뀔 경우 영진위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9인 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해야 상영할 수 있다. 이는 곧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고 영화의 사전 검열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말 그대로 영화의 진흥을 위해 힘써야 할 위원회가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영화의 발전을 막아서는 행위에 힘을 쏟는 모양새다. 영화계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비롯되고 있다.
또 지난달 23일 불거진 부산시의 부산국제영화제 이용관 집행위원장의 사퇴 권고 논란은 영화계가 하나 되어 목소리를 내는 사건이 됐다. 부산시 정경진 행정부시장과 김광회 문화관광국장이 같은 날 오후 부산의 한 호텔 앞에서 이용관 집행위원장을 만나 지난해 영화제 지도 점검 결과가 좋지 않아 새로운 사람이 쇄신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사퇴를 권고한 일이 시발점이 됐다.
영화제 측은 지난해 제19회 영화제에서 논란이 된 영화 '다이빙벨'을 상영한 것의 보복성 행위라고 꼬집었다. 그들은 '다이빙벨'을 상영하지 말라는 서병수 시장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상영했다. 이후 부산시의 영화제 지도 점검과 감사원 감사가 이어지며 분위기가 좋지 않더니 결국 이런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서병수 부산시장이 부산영화제 이용관 집행위원장에게 사퇴를 권고한 사실은 곧바로 화제가 됐고 부산 지역은 물론 전국의 언론 매체가 앞다퉈 보도했다. 상황이 긴박하게 흐르자 부산시는 다시 '지도 점검 결과가 나빠 쇄신을 요구했지만, 사퇴를 권고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입장을 번복했다.
부산시의 말을 요약하면 이용관 현 집행위원장의 거취 문제를 비롯한 인적 쇄신 등 조직 혁신 방안과 영화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어갈 비전을 제시할 것을 영화제 집행위원회에 요구했을 뿐이다.
하지만 부산국제영화제 측은 부산시 지도 점검과 이용관 위원장 사퇴 권고 절차와 방법 등의 부적절함을 꼬집었다. 영화계 역시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한국영화감독조합 등 12개 영화단체가 성명을 발표하며 크게 반발했다. 영화단체들은 이용관 위원장의 이번 사퇴 권고가 지난해 '다이빙벨' '자가당착' 등을 상영한 것에 대한 보복이라며 표현의 자유를 해치고 영화제를 검열하려는 숨은 의도가 있다고 주장했다.
영화와 방송, 음악 등 한국의 문화 산업은 단순한 소비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해외로 퍼지며 한국을 알리는 새로운 영역으로 급부상했다. 과거 전자제품이 대한민국을 알렸다면 이젠 영화와 음악, 문화 콘텐츠가 세계 속에서 한국의 가치를 높이는 일을 하고 있다. 단순한 정치 논리나 이익만을 위해 '문화' 사업에 칼을 대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라 할 수 있다. 지난해 한국 영화 산업이 최초로 매출 2억 원을 돌파했으며 부산은 아시아 최초로 유네스코가 지정한 '영화창의도시'로 선정됐다.
부산과 영화, 크게는 대한민국이 하나 돼 세계와 경쟁해야 하는 이 때에 이러한 논란은 내부적으로는 발전의 걸림돌이, 외부적으로는 매우 창피하고 문화 강국의 체면을 구기는 일이라 할 수 있겠다. 모두가 영화란 콘텐츠를 소비자 관점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공급자 중심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그대로의 것은 그대로 두고 제대로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더팩트ㅣ오세훈 기자 royz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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