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성지연 기자] "평범한 이야기를 독특한 소재를 빌어 특별한 감독이 만들었죠."
배우 크리스토프 왈츠가 영화 '빅 아이즈'(감독 팀 버튼, 수입·배급 판씨네마)를 한 마디로 설명했다. 왈츠의 말처럼 '빅 아이즈'는 현실과 닿아있어 평범해 보이는 모양새지만, 팀 버튼 감독의 상상력과 위트가 곳곳에 정성껏 스며들었기에 결코 평범하지 않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2010년) '찰리와 초콜릿 공장'(2005년) '빅 피쉬'(2003년)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영상미와 연출력으로 아이들에겐 풍부한 상상력을, 어른들에겐 잊었던 동심의 세계를 선사해 줬던 팀 버튼 감독이 3년 만에 새로운 작품으로 돌아왔다.
유년시절 자신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그림 '빅 아이즈'와 관련한 이야기를 스크린에 담고 싶었던 감독의 소망은 한 편의 잔잔한 '권선징악형 동화'로 구현됐다. '빅 아이즈'는 그동안 팀 버튼이 만든 작품 중 가장 소박하다. 대신 화려한 겉치레를 덜고 따뜻한 온기를 꾹꾹 눌러 담았다.
'빅 아이즈'는 1950~60년대 미술계를 발칵 뒤집었던 그림 '빅 아이즈'의 화가 마가렛 킨과 관련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다.
영화의 주인공은 마가렛 킨(에이미 아담스 분)과 월터 킨(크리스토프 왈츠 분)이다. 첫 번째 남편과 이혼한 마가렛은 싱글맘으로 어린 딸을 키우며 무명 화가로 자신의 딸을 '뮤즈' 삼아 그림을 그리며 생계를 유지한다. 마가렛이 살던 1950년대 말, 이혼녀에 여류화가라는 타이틀은 마가렛의 발목을 붙잡기 충분했다. 그러던 마가렛에게 1955년 봄, 운명 같은 남자가 나타난다.
샌프란시스코 근처의 전시회에서 만난 월터 킨이 그 주인공이다. 사교적인 성격의 월터는 소심한 마가렛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했고 소심한 성격 탓에 마음 둘 곳 없는 마가렛은 경제적인 능력과 다정한 성격까지 모든 것이 완벽한 월터에게 급속도로 빠져든다. 두 남녀는 영혼의 짝을 만난 듯 단숨에 결혼하고 그림을 그린다는 공통점으로 교감을 나눈다.
꿀 같은 신혼도 잠시, 돈 욕심과 명예욕이 남달랐던 월터는 금세 검은 속내를 드러낸다. 그는 유명인사들이 자주 찾는 클럽에 자신의 그림과 마가렛의 그림을 전시할 것을 제안한다. 월터는 전시회를 시작하자마자 특유의 언변과 사업수완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모으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인기를 얻은 것은 월터의 작품이 아닌 마가렛이 그린 '빅 아이즈'였다. '빅 아이즈'는 마가렛이 딸에게 영감을 받아 탄생한 그림으로 모든 작품에 어린아이가 등장하고 비정상적으로 큰 눈이 특징이다.
추상표현주의가 유행하던 1950~60년대, 당시엔 볼 수 없던 파격적인 마가렛의 화풍은 개성 넘쳤다. 특히 '빅 아이즈'는 전쟁으로 황폐해진 시대상과 맞물리며 대중의 감성을 자극해 단숨에 화제의 중심에 이름을 올린다.
월터는 대중들이 '빅 아이즈'에 관심을 두자 '빅 아이즈'를 자신이 그렸다는 거짓말도 마다치 않는다.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는 탁월한 말솜씨에 넘어가지 않는 사람은 없었고 마가렛 또한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주인공이 아닌 것보다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괴로워하는 마가렛. 그에게 월터는 가족을 위한 일이라며 자신의 모든 일을 합리화한다. 마가렛은 다락방 갇힌 화가로 전락하고 피폐해진 영혼으로 온종일 '빅 아이즈'를 그리며 괴로워할 뿐이다.
하지만 자신의 영혼과 다름없는 '빅 아이즈'가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것, 딸에게 조차 자신이 그림의 주인이라는 비밀을 말할 수 없어 괴로워하던 마가렛은 1986년께 월터를 고소한다. 뜬금없는 마가렛의 반격을 통해 '빅 아이즈'를 둘러싼 법적 공방이 벌어지고 두 사람의 치열한 싸움에 전 세계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된다.
팀 버튼 감독은 '빅 아이즈'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을 매끈하게 끌고 나간다.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어머니의 구현동화와 비슷한 느낌이다. 책에서 "거짓말은 나쁘다"는 지루한 메시지를 던질지라도 아이가 집중하는 이유는 읽어주는 어머니의 다정한 목소리와 표정에서 비롯된 것과 비슷한 이치다. 팀 버튼의 '빅 아이즈'는 섬세한 연출력으로 평범할 수 있는 실화를 통해 관객들을 매료시킨다.
수려한 연출을 위해 팀 버튼 감독은 '가위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시카고' 등에서 자신과 호흡했던 제작진과 또 한번 의기투합했다. '빅 아이즈'는 촬영감독부터 의상디자인 음악감독까지 팀 버튼을 가장 잘 아는 이들로 구성했고 감독의 스타일을 가장 잘 아는 제작진은 감독이 표현하고자 했던 포인트를 짚어 감각적인 카메라 앵글과 OST 의상 등을 곁들였다.
'빅 아이즈'를 평범하지 않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는 주인공 마가렛과 월터를 연기한 에이미 아담스-크리스토프 왈츠 덕이다. 이번 작품을 통해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가 선택한 배우'라는 수식어를 얻은 에이미 아담스는 주인공인 무명화가 마가렛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입증했다.
'빅 아이즈'의 원작자임을 숨긴 채 진실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마가렛의 감정을 절제된 연기로 녹여낸 에이미 아담스는 연약하고 소심한 마가렛을 눈빛 하나, 말투 하나까지 섬세하게 표현했다. 그는 실존 인물인 마가렛 킨에게 "젊었을 적 나를 보는 것 같아서 놀라웠다"는 극찬까지 얻어냈다. 실존인물을 연기해 당사자에게 "나와 똑같다"는 말을 들은 것 만으로 에이미 아담스의 '빅 아이즈'는 완벽한 성공을 거머쥔 셈이다.
'빅 아이즈' 안에서 크리스토프 왈츠의 존재감은 단연 빛난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을 통해 할리우드 스타 브래드 피트보다 더한 카리스마를 뿜어냈던 그는 이번에도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에서 보여줬던 것만큼이나 못돼먹은 남자로 분한다.
하지만 팀 버튼 감독 손에서 다소 귀여운 악역으로 변신한 그는 관객들에게 웃음을 자아내기 충분한 독특한 캐릭터를 완성했다. 위대한 예술가가 되고 싶은 희대의 사기꾼 월터 킨으로 분해 익살스러운 표정변화 하나하나로 감정을 전달한 그는 관객들에게 충분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빅 아이즈'는 어딘가 모르게 소박한 느낌을 주지만, 영화의 면면을 살펴보면 샌프란시스코, 캐나다, 하와이 등 각지에서 촬영을 거쳤고 의상은 2000여 벌, 작품 속 들어간 그림은 400여 점이 넘는 규모가 큰 작품이다. 감독의 애착과 열정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메가폰을 잡은 이의 추억이 담긴 '빅 아이즈'는 정성스럽고 따뜻하다. 실제로 그림을 보고자랐고 그림을 통해 예술적 영감을 받았다던 팀 버튼 감독은 영화 전반에 자신이 느꼈던 영감을 꾹꾹 눌러담은 덕이다.
거기에 '예술가와 예술가가 되고 싶었던 이의 예술같은 거짓말'이란 이야기는 관객들에게 생각할 만한 여지를 남긴다. 마지막까지 위트있는 장면을 잊지않는 센스는 감독의 보너스다. 영화는 28일 개봉. 러닝타임 105분. 12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