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박소영 기자] "신해철 형은 지금 여기 있는 거예요!"
'마왕'은 떠났지만 영영 간 건 아니었다. 그가 남긴 음악, 팬들, 그리고 밴드 넥스트는 여전히 그를 추억하고 있었다. '천재 뮤지션' 고 신해철을 추모하기 위해 넥스트가 마련한 콘서트 '민물장어의 꿈'이 열린 27일 고려대학교 화정체육관, 이곳에 '마왕'은 함께 존재했다.
이날 오후 7시 15분, 신해철의 추모 영상을 시작으로 공연의 막이 올랐다. 콘서트를 이끄는 밴드는 세 팀으로 나눠졌는데 1팀인 김세황 김영석 이수용 지현수가 무대 위에 올랐다. 신해철의 내레이션이 담긴 영상과 함께 멤버들은 '세계의 문'과 '더 월드 위 메이드'를 연주했다. 마치 고인이 살아서 공연을 리드하는 듯 영상 속 신해철은 누구보다 열정이 넘쳤다.
이번 공연은 동료 가수들이 큰 힘을 보탰다. 엠씨더맥스 이수, 신성우, 홍경민, 김진표가 각각 '더 드리머' '라젠카 세이브 어스' '머니' '코메리칸 블루스'를 부르며 고인을 대신했다. 넥스트 밴드 멤버들의 연주와 객원 가수들의 보컬의 조화는 공연장을 가득 메운 팬들을 흥분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순식간에 차오른 록 스피릿을 뒤로 하고 1팀 멤버들이 퇴장했다. 데빈 쌩 주니 김동혁으로 이뤄진 밴드 2팀이 등장하자 관객들은 함성으로 이들을 맞이했다. 1팀이 그랬듯 신해철이 영상에서 '사탄의 신부'와 '아날키 인 더 넷'으로 부르며 2부를 이끌었고 김원준, 에머랄드캐슬 지우, K2 김성면, 변재원, 크레쉬 안흥찬이 각각 '그로잉 업' '먼 훗날 언젠가' '이중인격자+더 파워' '인형의 기사'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를 열창했다.
1층 스탠딩석 관객들은 물론 2층 객석에서도 열기는 뜨거웠다. 자리에서 일어나 방방 뛰며 넥스트의 노래를 즐겼고 온몸으로 애정을 뿜어 냈다. 영상에서 '마왕'이 나올 때마다 팬들은 추억에 젖었고 여전히 생생하게 들리는 고인의 음성을 오래도록 곱씹었다. 틈틈이 "넥스트 포에버"와 "마왕" "신해철"를 연호하며 함성을 내질렀다.
마지막 3팀은 보컬 이현섭을 필두로 한 정기송 노종헌 제이드 신지 김구호로 구성됐다. '아이 원트 잇 올'을 시작으로 3부의 막이 열렸는데 이 곡은 생전 고인이 관객들의 후렴 떼창을 음반에 넣고 싶어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객들은 '마왕'을 위해 '아이 원트 잇 올'을 한목소리로 부르며 장관을 연출했다.
이어진 곡에서도 팬들의 합창은 계속 됐다. '해에게서 소년에게' '히얼 아이 스탠드 포 유' '단 하나의 약속'를 함께 부르며 고인의 목소리와 호흡했다. '날아라 병아리' 때엔 스크린을 가득 떠오른 신해철의 생전 모습과 흘러나오는 목소리를 들으며 다들 눈물을 훔쳤다. 어느새 공연장은 눈물바다를 이뤘다.
신해철 대신 넥스트 보컬로 나선 이현섭 역시 고인을 추억하며 그를 그리워했다. "꿈에 해철 형이 많이 나온다. 엊그제 감기몸살 때문에 아팠는데 형이 꿈에서 멋진 곡을 들려 줬다. 그때 감기몸살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해철 형이 아프지 말라더라"며 애써 웃어 보였다.
하지만 슬픔을 숨길 순 없었다. "해철 형의 사촌동생이 피아니스트다. 그와 함께 형에게 바치는 '일상으로의 초대'를 부르겠다"며 피아노 반주에 맞춰 담담하게 노래를 시작했지만 순간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고인에 대한 감정이 북받치는 듯 슬픔을 삼키며 눈물로 노래를 마쳐 팬들을 숙연하게 했다.
그러나 언제까지 울고만 있을 순 없었다. 이현섭은 "너무 힘들어서 음악을 그만 두고 싶다며 형 앞에서 펑펑 운 적이 있다. 이전까지는 형이 다독거려 줬는데 '그렇게 운다고 해결이 되겠냐'며 많이 혼냈다. 그때 안 혼났다면 지금 이 무대에 저는 없었을 거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그리고는 "이젠 여러분과 제가 해철 형에게 보여 줘야 한다. 형 없어도 우리끼리 잘 살고 잘 먹고 잘 놀고 있다는 걸 보여드리자: 이제 그만 징징대자. 형에게 들리도록 큰 목소리로 확실히 보여 주자"고 힘차게 외쳤다.
순식간에 분위기는 180도로 바뀌었고 넥스트는 '안녕'과 '재즈카페'로 다시 후끈하게 공연장을 데웠다. "여기서 지치고 무너지면 2년 계약직 장그래가 정규직이 될 수 없어"라며 관객들의 에너지 발산을 독려했다. 덕분에 관객들은 쉬지않고 방방 뛰었고 목청껏 소리 높여 환호했다. 하늘에 있는 '마왕'이 들을 수 있도록 함성은 공연장을 뚫을 기세였다.
이현섭은 "여러분이 해철 형의 노래를 기억하게끔 제가 노력하겠다. 해철 형이 쌓은 명성에 누를 끼치지 않겠다. 형은 여전히 제 가슴 속에 살아 있다. 여러분의 가슴에도 고 신해철이 살아 있는 한 넥스트의 음악은 영원할 거다. 신해철의 넥스트 많이 사랑해 달라"고 인사했다.
3부 커튼이 닫힌 뒤 곧바로 '민물장어의 꿈' 영상이 스크린을 채웠다. 신해철의 파워풀한 보컬에 팬들은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 여전히 그가 살아서 라이브로 노래해 주는 것처럼 뜨거운 감성에 젖어들었다.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또 홀연히 곁을 떠난 '마왕'이기에 그리움은 여전했다.
그래서 팬들과 멤버들은 마지막까지 힘을 냈다. '호프'와 '그대에게'로 앙코르 무대를 꾸몄고 하늘 위 '마왕'에게 닿을 정도로 시너지 효과를 뿜어 냈다. 넥스트라는 이름으로 하나된 선후배 가수들이 모두 나와 팬들과 '그대에게'로 입을 맞췄다.
신해철이 살아 있었다면 흐뭇하게 '아빠 미소'를 지었을 콘서트는 엄청난 열기와 함성, 그리고 '마왕'을 향한 그리움을 가득 품고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