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정진영 기자] 브라운관에 여기자가 떴다. 그것도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초특급 미녀 여기자다. 외모는 그리스 여신 급이지만 연기만큼은 현실적으로 하겠다고 손가락 걸고 약속했던 두 사람. SBS '피노키오'의 사회부 수습기자 최인하(박신혜 분)와 KBS2 '힐러'의 의욕 넘치는 연예부 기자 채영신(박민영 분) 가운데 진짜 현실감 넘치는 여기자는 누구일까. <더팩트> '레알' 여기자가 둘 중 누가 더 내 얘기 같은지 뽑아봤다.
1ROUND. 패션: 채영신 기자, 지금 패션쇼 하세요?
미모야 말 할 것도 없다. 최인하도 박민영도 보통 사람은 범접도 못 할 미모를 가졌다. 하지만 패션은 비교 가능하다. 기자는 현장과 사무실을 오가며 빠르고 정확하게 기사를 써야 하는 직업. 기다리고 뛰고 취재하는 일상에 적합한 의상을 입은 사람은 누구일까.
사실 이번 라운드는 한 회도 채 다 볼 필요가 없었다. 최인하의 승리다. 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솔직히 채영신은 패션쇼 하는 줄 알았다.
전반적으로 칙칙한 최인하. 같은 날이냐고? 아니다. 위 사진 두 장은 기자가 되기 전, 아래 두 장은 기자가 된 후다. 언론계는 아직 보수적인 문화가 많이 남아 있는 곳. 때문에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검은색 회색 등 무채색 정장은 방송 기자 지망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옷이다. 저 정도 의상이라면 '베스트 드레서'는 아니겠지만 거슬리는 것 없이 무난하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수습기자가 된 후에는 편안한 바지에 점퍼를 겹쳐 입었다. 아무래도 현장 근무가 많은 사회부 수습기자들에겐 겨울엔 따뜻한 옷이 필수. 갑자기 새벽까지 취재를 해야 하거나 밤샘 근무까지 하게 되면 하루 이틀 쯤 제대로 씻지 못하는 일도 있는데 풀 메이크업은 해서 뭐하랴.
채영신의 패션은 이와는 너무 대비된다. 멋스럽게 두른 머플러에 비니(beanie)라니. 저대로 놀이공원에 놀러 간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복장이다. 연예부 기자이기 때문 아니냐고? 연예부 기자가 연예인은 아니잖나. 누가 봐도 캐주얼한 느낌이 나도록 멋 부린 채영신 패션은 NG.
2ROUND. 취재: 채영신 기자, 팩트(fact) 확인 안 해요?
YGN 보도국 사회부 일진 기자는 "몸무게는 51kg이라고 합니다"고 보고하는 수습 윤유래(이유비 분)에게 이렇게 소리 지른다. "네가 무슨 리포터야? 네가 확인한 팩트(fact)를 말하라고!" 그러자 윤유래는 이렇게 수정한다. "51kg입니다. 제가 직접 차트 기록 확인했습니다."
이건 사실 확인을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로 여기는 기자 생활을 잘 보여준다. 아무리 사람들의 관심을 모을만한 기삿거리라도 이게 사실로 확인되지 않는 이상은 보도할 수 없다. 불특정다수에게 전파되는 뉴스가 오보일 경우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자칫 잘못된 정보를 전달할 경우 해당 언론사에 대한 대중의 신뢰는 급격히 떨어진다.
이런 관점에서 채영신의 취재 과정은 너무 무모하고 위험하다. 그는 택배 기사로 위장해 여배우 집에 난입, 남자 신발 하나로 열애설을 만든다. 남자의 것으로 보이는 신발을 찍은 뒤 그는 데스크(신문사나 방송국의 편집국에서 기사의 취재와 편집을 지휘하는 직위, 또는 그런 사람을 뜻하는 말)에게 호기롭게 보고한다. "얼핏 딱 봐도 270mm는 넘어 보이더라. 사람들은 보통 이런 걸 보고 특종이라고 한다." 아마 보통의 데스크라면 이런 대답을 할 것이다. "그래서 어쩌라고. 팩트를 들고 와."
택배 기사나 경찰 옷을 입고 신분을 위장하는 것도, 사실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도 황당하지만 더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 바로 '노트북'이다. 채영신 뒤를 따라다니던 서정후(지창욱 분)는 그의 가방을 훔쳐 안에 든 물건을 조사한다. 가방 안엔 경찰 옷은 있었지만 노트북은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기삿거리가 생기면 사무실로 뛰어갈 건가? 미안하지만 취재노트에 적은 내용을 바탕으로 원고지에 기사를 적는 시대는 20년 전에 끝났는데.
3ROUND. 관계: 최인하 기자, 버텨요.
위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언론계는 보수적이다. 오타 하나가, 잘못된 정보 하나가 회사 자체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더 그렇다. 매일 터지는 새로운 사건을 대응하고 새로운 기삿거리를 취재하려면 어느 정도 긴장감은 필수이기 때문에 선배들은 수습기자에게 더욱 엄격하다. 나이보다 연차를 중시하는 문화는 군대와 닮았다.
그런데 '힐러' 채영신에게선 이런 긴장감을 전혀 느낄 수 없다. 그는 한 연예인 지망생이 강제로 성상납을 한 뒤 자살하려는 걸 발견, 관련 내용을 기사로 내고자 한다. 하지만 데스크는 이를 거부한다. 먼저 피해자의 말만 듣고 기사를 내는 건 위험하기 때문이며, 둘째 스타도 아닌 배우 지망생이 강제로 몸을 한 번 빼앗겼는데 자살을 한 것도 아니고 살해를 당한 것도 아니니 기삿거리가 되기 부족하며, 마지막으로 성상납을 받았다고 의심되는 사람이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라 사실인지 아닌지 애매한 상황에서 쉽게 실명을 거론할 수 없고 결국 기사에서 실명을 낼 수 있는 건 연예인 지망생뿐이니 더 안 좋은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그런 데스크에 채영신은 이렇게 말한다. "쫄았네 우리 부장. 연예인은 쥐 잡듯이 탈탈 털고 쪽쪽 짜내라 그러더니 정치인이라니까 쫄았어. 누가 하나 죽어야 봐주겠다는 거냐. 부장 인간성 봐라. 이러고 집에 가서 애들한테 아빠 소리 들으면 쪽팔리지 않냐." 여기에 무슨 말을 덧붙이리.
여기서 채영신은 한 발 더 나갔다. 그는 "네 블로그에나 실어라"는 데스크의 말을 무시하고 술김에 이 내용을 기사로 낸다. 자신의 언론사 이름을 걸고 도박을 한 것이다. 채영신이 작성한 기사가 사실이라면(물론 드라마니까 '사실'이고 이 '사실'이 채영신을 결국엔 정의로운 기자로 만들 테지만) 다행이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채영신은 자신이 벌인 이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피노키오'에 이런 내레이션이 나온다. "우린 사건을 못 찾으면 선배들에게 대차게 깨진다. 여기 와서 알았다. 세상에는 너무 다양한 욕이 존재한다. 자도 혼나고, 먹어도 혼나고, 밥을 안 먹어도 혼난다. 난 이 괴상한 세상에 왜 온 걸까." 이제 막 치열한 기자의 세상에 들어온 최인하에게 끝으로 이 말을 전한다.
"최인하 기자, 버텨요. 언젠가 혼나고 깨지고 밤을 샌 날이 뿌듯해지는 날이 올거예요."
한 줄 결론: '피노키오'는 드라마 속에 기자들의 현실을 녹여냈지만, '힐러'는 말만 '기자'일뿐 현실에선 찾기 힘든 '허니버터칩' 같은 기자를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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