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민의 이컷저컷] '미생', 시청자 탐정 만드는 숨은 '디테일' 찾기

tvN 금토드라마 미생이 화면에 담긴 세부적인 재미 포인트로 시청자들의 흥미를 끌고 있다. / 미생 공식 홈페이지

[더팩트 | 김경민 기자] "'미생'님이 보낸 '디테일'이 도착했습니다."

케이블 채널 tvN 금토드라마 '미생'은 '현실 드라마'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자극적인 요소 없이 잔잔하게 흐르지만 어느덧 자신의 모습을 비추고 있는 드라마에 시청자들은 엄청난 지지를 보내고 있다.

이러한 '미생'의 특장점을 더욱 잘 빛나게 하는 것은 드라마에 숨어 있는 '디테일'이다. 시청자들은 "'디테일'이 살아 있다"며 현실적인 내용을 정말 현실로 와 닿게 하는 세심한 연출력에 감탄하고 있다.

이러한 '디테일'은 단순히 내용을 실감 나게 그리는 것뿐 아니라 보는 이들에게 깨알 같은 웃음 포인트로 작용하기도 한다. 보는 재미와 찾는 재미를 동시에 주고 있는 것이다.

미생 11화에는 임시완이 사내 익명 게시판을 보는 장면이 그려졌다. / 미생 방송 캡처

매회 흥미로운 '미생'이지만, 최근 전파를 탄 회차 중에서 비하인드 '디테일'을 찾았다. 먼저 지난달 21일 방송된 11화는 영업3팀이 박 과장(김희원 분)의 비리를 고발하고 천 과장(박해준 분)을 새 식구로 맞는 내용이 다뤄졌다. 이날 방송 초반 장그래(임시완 분)는 박 과장이 징계를 받은 후 사내에서 영업3팀을 향해 쏟아지는 불편한 시선을 설명했다.

그 중 장그래가 사내 인트라넷에 접속하는 화면은 제작진의 숨은 센스가 녹아 있다. 인트라넷 공지사항에는 인사 발령 소식이 있고, 장그래가 살펴본 익명 게시판에는 영업3팀을 지적하는 글들이 올라와 있다. 여기에서 다른 글 제목과는 달리 굵은 글씨가 아닌 '읽은 표시'가 돼 있는 글 제목은 '영업3팀에 박수를 보냅니다'다.

장그래는 다른 비판적인 글은 읽지 않고 영업3팀을 지지하는 글만 읽은 것이어서 웃음을 자아낸다. 그 아래에는 계약직 사원 장그래를 칭찬하는 글도 있어 눈길을 끈다.

미생 12화에는 임시완의 메일함에 이성민이 보낸 것으로 추측되는 글이 있어 눈길을 끌었다. / 미생 방송 캡처

장그래의 컴퓨터는 '미생' 열혈팬들에게 보물창고다. 그의 컴퓨터가 화면에 나올 때 '디테일'이 늘 숨어 있기 때문이다. 같은 달 22일 방송된 12화에서는 장그래의 메일함이 공개됐다. 장그래는 영업3팀의 신년 아이템으로 박 과장의 요르단 사업건을 추천한 데 이어 PT 준비 마지막 단계에 PT 내용 순서를 뒤바꾸자는 도전적인 목소리를 냈다. 이를 받아들인 오상식 차장(이성민 분)은 장그래에게 PT 재작성을 지시했고 장그래는 밤새 여기에 매달린 끝에 완성했다.

만든 PT 초안을 오상식 차장에게 보내는 과정에서 화면에 등장한 메일함에는 업무 문서들과 함께 '장그래 팀장님께 자료 검토 의뢰 드립니다'라는 제목이 돋보였다. 바로 오상식 차장이 요르단 사업건을 제시했다는 이유로 부담을 느끼는 장그래에게 "장그래 팀장님"이라고 장난스럽게 말한 것이 반영된 것이다. 또 위에는 '장그래 요즘 왜 이렇게 바쁘고 그래'라는 제목이 있어 이 메일은 동기들 중 유독 부서들을 휘젓고 다니는 한석율(변요한 분)이 발신자가 아닐까 하는 추측들이 나오기도 했다.

미생 13화에서 변요한이 대가족을 위해 연하장을 쓰는 장면이 전파를 탔다. / 미생 방송 캡처

이달 28일 방송된 13화는 '미생' 신입사원들이 크리스마스에 연말을 보내고 새해를 맞는 시간 변화가 그려졌다. 이때 한석율은 조카들과 친척들의 선물을 여러 가지 늘어놓고 새해 감사 인사를 적은 편지를 만들었다.

앞서 한석율이 원인터내셔널 인턴 PT를 준비할 당시 그의 많은 친척이 현장에서 일하면서 서로에게 전화를 돌리며 한석율의 입사를 응원했던 장면이 전파를 탔다. 대가족에 끈끈한 가족애 아래에서 자란 한석율이 성심성의껏 친척들의 선물과 연하장을 준비하는 장면은 새삼 이전에 공개된 한석율의 배경과 어우러져 흥미를 끌었다.

미생 14화 속 사내 익명 게시판의 글 제목들이 재미를 선사했다. / 미생 방송 캡처

14화에서는 원인터내셔널의 익명 게시판이 다시 등장했다. 한석율이 성 대리(태인호 분)의 행태를 고자질하기 위해 이용한 것이다. 그가 글을 올리고 난 후 잠깐 화면에 나타난 익명 게시판에는 '모쏠(모태솔로)의 고민' '역차별이 더 문제다' '14층 남자화장실' '결혼정보회사 가입시 등급' '직장인이 월급하고 승진 빼면' '요즘은 신입 얼굴 보고 뽑나요' 등의 제목이 올라와 있다.

모태솔로, 결혼정보회사 등은 최근 맞선을 보며 결혼 준비를 시작한 김동식 대리(김대명 분)의 이야기와 겹쳤고, 역차별은 능력 있는 여자 신입사원 안영이(강소라 분)와 마 부장(손종학 분)의 갈등 에피소드와 관련이 있다. 월급과 승진 이야기는 지난 방송분에서 그려졌던 회사원의 숙명을 언급한 내용을 연상하게 했다.

마지막에는 신입사원들의 출중한 외모를 칭찬하는 글이 있고, 장그래 안영이 한석율 장백기(강하늘 분)를 가리키는 것으로 암시돼 웃음을 자아냈다. 또 한석율의 부서는 16층, 다른 신입사원들은 15층 사무실에서 일하는 가운데 '14층' 화장실은 어떤 비밀이 숨어 있을지 궁금증을 일으켰다.

미생 14화에서는 과거 회상 장면에서 옛날 컴퓨터가 설치됐다. / 미생 방송 캡처

'미생' 제작진은 과거를 그릴 때에도 작은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14화에서 오상식 차장이 계약직 장그래에게 정규직 전환 가능성을 단칼에 자르는 사연이 공개될 때다. 그는 과거 함께 일하는 계약직 여직원을 칭찬하며 희망만 심어줬던 것에 자책했다. 이 과정에서 오상식 차장과 여직원 뒤에는 최근 회사에서 사용하는 신식 컴퓨터가 아닌 옛 CRT 모니터가 설치돼 있어 놀라움을 자아냈다.

'미생'은 탄탄한 전개와 배우들의 연기력에 사랑을 받고 있다. 여기에 제작진이 이곳저곳 심어 놓은 숨은 그림들은 애청자들은 탐정으로 만들며 극에 더욱 깊숙이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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