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성지연 기자] 영화 '패션왕'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재기발랄한 포즈로 '간지'를 외치는 배우들이다.
지난 9월 동영상 재생사이트 유튜브를 통해 공개된 예고편과 캐릭터 포스터 덕분이다. 예고영상은 5일 기준 33만 뷰의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 그만큼 영화의 포스터와 예고편은 예비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을 만큼 독특하다.
하지만 베일을 벗은 114분짜리 '패션왕'은 예고편만큼이나 짜릿하고 쫄깃한 맛이 없다. 포스터는 '절대 간지를 보여주겠다' 장담했건만, 정작 영화는 '간지'가 빠진 모양새다.
6일 개봉한 '패션왕'(감독 오기환, 제작 와이랩, 배급 NEW)은 지난 2011년 네이버 웹툰을 통해 연재했던 웹툰작가 기안84의 동명 웹툰을 스크린에 옮긴 작품이다. 당시 각종 패러디 열풍과 신조어를 탄생시켰던 웹툰으로 영화화 소식은 화제를 불러모으기에 충분했다. 거기에 주원 안재현 김성오 에프엑스 설리 박세영 신주환 등 젊은 '라이징 스타'들의 캐스팅 소식은 더욱 기대감을 높였다.
'패션왕'은 촌스러운 패션감각을 지닌 '빵셔틀' 우기명(주원 분)이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는 남정(김성오 분)을 우연한 계기로 만나 패션에 눈뜨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재치있게 담았다.
시골에서 서울로 전학 온 기명은 학교의 '퀸카'로 불리는 혜진(박세영 분)에게 첫눈에 반하지만, 이미 혜진 곁엔 날 때부터 완벽에 가까운 비율과 남다른 멋스러움을 지닌 원호(안재현 분)가 남자 친구로 자리한다. 원호에 비해 촌스러운 패션 센스와 외모를 가진 기명이지만, 우연히 만난 전설의 '패션왕' 남정의 도움으로 패션에 대해 배워간다.
그는 창주(신주환 분)와 함께 남정의 쇼핑몰 사무실에서 혹독한 '패션 트레이닝'을 받는다. 자신감이 붙은 기명은 조금씩 변화한 자신의 센스를 전교생이 모인 체육대회에서 공개하고 학교의 킹카 원호와 맞붙게 된다. 두 남자는 운동장을 한순간에 런웨이로 만들며 서로 다른 매력을 어필한다. 이를 시작으로 기명과 원호는 본격적인 패션 대결을 시작하고 각양각색 의상과 아이템, 다양한 미션을 통해 '패션왕' 타이틀을 두고 경쟁한다.
한편 '패션왕'을 꿈꾸는 기명을 남몰래 흠모하는 여학생도 있다. 바로 '패션 테러리스트' 아랫집 모범생 곽은진(설리 분)이다. 그는 개성 넘치는 학생들이 대거 모인 기안 고등학교에서 얼굴과 패션을 모두 포기하고 오직 공부에 집중하는 유일한 인물. 하지만 기명을 만난 뒤 조금씩 외모에 신경을 쓰기 시작한다. 곽은진은 자신에게 선물로 참고서를 사다주는 기명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그는 습관처럼 "내가 못생겼느냐"고 기명에게 질문해 웃음을 자아낸다.
'패션왕'의 강점은 독특한 소재다. 과거 청소년들의 갈등과 경쟁 이야기가 학업과 사랑 등에서 비롯된 것이 전부였다면, 현재 10대들의 갈등과 경쟁은 패션에서 비롯된다는 독특한 시작점이 흥미롭다.
또 원작이 소재의 독특함을 10대 특유의 코드인 '병맛'으로 표현해 더욱 인기를 끌었던 만큼 영화 '패션왕' 또한 '병맛' 코드를 살리고자 노력했다. '병맛'이란 온라인 유행어로 정확한 의미를 규정하긴 어렵지만, 어이없고 맥락 없는 이야기를 의미한다.
강당 전체를 뒤덮는 망토를 두른 채 전교생 조회 시간에 등장하는 주인공 우기명(주원 분), 교복을 마음대로 리폼해 위풍당당하게 걸어오는 원호(안재현 분)와 혜진(박세영 분) 그리고 그 뒤에 떠오르는 태양 등은 지극히 현실적이지 못한 과장된 표현이지만, 특유의 '병맛' 코드는 관객들에게 신선한 느낌과 웃음을 동시에 선사한다.
우기명으로 분한 주원의 자연스러운 연기력, 원작 캐릭터와 '싱크로율 100%'를 자랑하는 김성오-신주환 두 콤비 또한 작품을 탄탄하게 하는 무기다. "간지가 생명이다"라며 눈을 부라리는 세 남자의 호흡은 유쾌하고 다소 어색할 수 있는 대사와 의상도 무난하게 소화한다.
하지만 '패션왕'은 원작에 100% 충실한 영화는 아니다. 러닝타임-스크린이란 한계 탓인지 감독은 각각의 캐릭터에 '사연'이란 조미료를 더했다. 여기서 '패션왕'이 시종일관 외치던 '간지' 즉, 멋스러움이 사라지는 아쉬움이 남았다. 영화는 중반부에서 부터 관객에게 '감동'이란 조미료를 더해 혼란을 준다.
피상적인 웃음 자체에 집중하던 이야기에 뜬금없이 끼어든 감동코드는 당황스럽다. 각각 사연이 있는 캐릭터들의 이야기가 공개되고 눈물을 흘린다. 애초부터 '패션왕'과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덕분에 '병맛'연기를 이끌어 가던 배우들 또한 길을 잃고 연기력마저 흔들리기 시작한다. 특히 안재현과 설리는 작품 내 비중이 상당하지만, 초반부터 아쉬움을 자아냈던 설익은 연기력은 말미에 갈수록 도드라져 관객의 몰입도를 떨어뜨린다.
'패션왕'을 꿈꾸고 '폭풍 간지'를 외치며 즐겁게 뛰어노는 10대 청춘에게 지나친 교훈과 메시지를 던진 것은 아닐까.
◆영화 '패션왕' 메인 예고편(http://www.youtube.com/watch?v=zvUO-E2cg1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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