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성지연 기자] "다들 감동해서 울 때 저희는 힘들게 빨래했던 게 생각나서 눈물을 흘렸죠."
영화 '명량'(감독 김한민, 배급 CJ엔터테인먼트)의 의상을 담당했던 권유진 디자이너가 영화를 본 이색 소감이다. 추운 계곡물에서 400벌의 의상을 빨아야 했던 의상 감독과 스태프들. 의상 준비만 6개월, 투입된 옷만 3000벌. 10일 누적 관객 1022만 6042명을 동원한 '명량'의 의상 속 숨은 이야기를 <더팩트>에서 자세히 알아봤다.
◆ '명량'속 최민식 갑옷, 광화문 이순신 동상과 왜 다르지?
권유진 의상 디자이너는 '명량'에 들어갈 의상을 위해 일본을 오가며 자료 조사를 한 것은 물론 출토된 유물, 18편 이상의 논문을 샅샅이 뒤졌다. 그는 '명량'속 최민식이 입은 갑옷으로 전국에 있는 이순신 동상의 의상을 모두 바꾸고자 하는 야심찬 계획도 있었다며 깔깔 웃는다.
권유진 디자이너는 그동안 사극에 나온 미늘 갑옷은 임진왜란보다 100년~200년 후에 나온 의장용 갑옷이란 점을 지적했다. 광화문 앞에 있는 이순신 동상이 입은 갑옷은 미늘 갑옷이다. 권유진 디자이너는 임진왜란 당시 미늘 갑옷을 입었다는 사실과 관련해선 학자들끼리 의견이 분분하기 때문에 '명량' 속 이순신의 갑옷은 찰갑과 두정갑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에게 두정갑은 입힐 수 없었다. 밋밋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순신 장군의 갑옷은 서애 유성룡 선생의 찰갑 갑옷 자료를 기초로 만들었다.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인 만큼 갑옷 어깨 부위엔 은으로 만든 견룡을 달아 장식했고 영화적인 미학을 위해 가슴 부분에도 용 문양으로 장식을 했다. 권유진 디자이너는 "견룡은 전문 디자이너가 만들었는데 400만 원이 들었다"며 "비싸기도 했고 옷 자체가 무거웠다. 2kg이 넘었다"고 설명했다.
◆ 구루지마 미치유키, 알고 보면 슬픈 이야기
'명량' 속 왜군 장수 구루지마(류승룡 분)의 의상은 어두운 색의 조선군 갑옷과 달리 강렬한 원색으로 디자인됐다. 금색, 붉은색 등 화려한 철제 갑주는 권유진 감독이 가고시마현에 있는 갑옷 공장까지 발품을 팔아 직접 공수했다. 하지만 권유진 디자이너는 "구루지마 의상은 발품을 파는 것보다 조사하는 게 더 힘들었다"고 강조했다.
이순신 장군은 국내에선 '성웅'이다. 그만큼 구루지마 미치유키는 일본 내에서 '굴욕의 역사'로 남았다. 이순신 장군의 손에 구루지마 미치후사-미치유키 형제 모두 죽음을 맞이한 뒤 구루지마 미치유키의 기록을 찾기란 '하늘에 별따기'였다. 권유진 디자이너는 "구루지마의 기록을 샅샅이 뒤졌지만, 단 한 줄 밖에 찾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그는 구루지마의 의상(옷, 투구) 고민을 깊게 할 수 밖에 없었다. 상상이 가장 많이 들어가야 했고 철저한 고증 또한 무시할 수 없었다.
권유진 디자이너는 구루지마가 일본 '전쟁의 신' 다케다 신겐과 동 시대 사람이란 사실에 착안해 그의 의상을 인용해 구루지마의 칼과 투구를 디자인했다. 하지만 문제는 다케다 신겐의 머리카락은 흰색이라는 것. 구루지마의 머리카락이 흰색인 게 이질감이 느껴질 듯 해 고민을 거듭하던 권유진 의상디자이너는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미용실로 달려가 검은색으로 다시 염색하며 고민을 거듭했다.
권유진 디자이너는 "의상이 많아서 제작진이랑 하루종일 빨래를 했던 걸 생각하면 아직도 눈물이 난다. 하지만 어머니가 영화 '난중일기'의상을 담당한 것에 이어 내가 '명량' 의상을 하다니 감개무량하다"며 "무척 행복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