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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팩트ㅣ성지연 기자] 정우성 주연의 영화 '신의 한 수'가 개봉 첫 날 관객 수 18만 1461명(이하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집계결과 기준)할리우드 대작 '트랜스 포머: 사라진 시대'(이하 트랜스포머4)를 제치고 박스오피스 정상에 이름을 올렸다. 할리우드 대작들의 연이은 개봉에 힘을 쓰지 못하던 한국 영화의 짜릿한 반란. '작은' 정우성이 '작은' 바둑돌로 거대한 로봇군단을 무찌른 것인 만큼 의미가 있다.
올 상반기 극장가에서 국내 작품들이 내놓은 성적표는 초라했던 반면 한층 진화한 할리우드 신작들은 화려한 성적을 자랑했다. 지난 1월 개봉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은 1000만 관객을 동원했고 이후 줄줄이 개봉한 할리우드 히어로물('엑스맨: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캡틴 아메리카: 윈터솔져'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은 가볍게 박스오피스 정상에 이름을 올리며 같은 시기에 개봉한 국내 영화를 따돌렸다.
하반기에도 극장상황은 달라질 것 같지 않았다. 지난달 25일 개봉한 외화 '트랜스포머4'는 개봉 전부터 88% 이상의 예매율을 보이며 올 한해 최고 예매율로 극장 점령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트랜스포머'는 시리즈 1편부터 3편에 이르기까지 세 편의 국내 관객 수만 총 2272만 명의 흥행 기록을 세운 인기 시리즈다. '어마무시한' 상영관 수 또한 기를 죽였다. 영화는 개봉 5일 차인 지난달 28일 전국 1596개의 스크린을 확보했다.
하지만 '반전'이 일어났다. 3일 개봉한 '신의 한 수'가 2일 연속 박스오피스 정상에 오르며 한국 영화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더욱 주목할 점은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가 1000개가 넘는 스크린으로 관객들을 만나는 반면, '신의 한 수'의 개봉 첫 날 스크린 수는 고작 664개 뿐이다. 또 '트랜스포머4'는 12세 관람가, '신의 한 수'는 청소년 관람 불가다. 상대적으로 불리한 조건임에도 할리우드 대작을 따돌린 것이다.
'신의 한 수'는 정우성 안성기 이범수 이시영 안길강 등 톱스타들이 대거 출연했다. 화려한 캐스팅이 관객들을 극장으로 끌어당기는 것에 한몫 했지만, 영화가 스타 캐스팅만 앞세운 작품이라면 '트랜스포머4'란 대작과 경쟁하기엔 역부족이다. 앞서 개봉한 '역린'이나 '우는 남자' 또한 현빈 장동건 등의 톱스타를 내세웠지만, 허술하거나 아쉬운 작품성은 초라한 결과를 내놨고 관객들에게 실망을 안겨줬다.
'신의 한 수'는 범죄로 변해버린 내기 바둑판에 사활을 건 '꾼들'의 전쟁을 그렸다. 그간 극장가에 홍수를 이룬 누아르나 범죄 로맨스와 다른 신선한 소재다. 흥행에 실패한 국내 작품은 거듭해서 비슷한 장르와 소재의 상업 영화로 승부수를 던졌다. 톱스타를 앞세우거나 비슷한 장르만을 고집했던 '물리는 영화'는 문화 소비 강국인 국내 관객에게 통할 리 없었다.
'신의 한 수'가 초반 흥행에 성공한 이유로는 정우성의 프로 연기를 들 수 있다. 20년 연기 경력을 바탕으로 내기 바둑판에 사활을 건 '꾼들'의 전쟁을 실감나게 그렸다. 두뇌 싸움과 액션을 결합한 소재를 마흔한 살의 정우성이 아니었다면 과연 누가 대체할 수 있었을까. '타짜'의 김혜수처럼 영화의 색깔을 정하고 스토리를 완성하는 하나의 축으로 그는 훌륭히 제몫을 해냈다.
'비트'(1997)와 '태양은 없다'(1999)에서 한국의 제임스 딘처럼 반항아적 이미지로 신선한 돌풍을 일으킨 정우성은 '내 머릿속의 지우개'(2004)로 멜로 연기에 도전했고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2008)으로 액션 연기의 절정을 찍었다.'감시자들'(2013)f로 담백한 연기를 보여주더니 '신의 한 수'에서 나이와 함께 무르익어가는 또 하나의 연기력을 보였다.
'신의 한 수'는 단순한 액션이 아니라 내기 바둑 세계를 소재로 액션을 가미한 액션 오락 영화다. '태석'(정우성)과 '선수'(최진혁)가 바둑판을 앞에 두고 웃옷을 벗고 근육을 드러낸 채 바둑을 두기도 한다. 정우성은 최진혁과의 냉동창고 결투 장면을 실제로 촬영하다 팔꿈치 부상을 입기도 했다. 정우성의 부상 투혼은 영화 제작 참여자들의 열정을 대변한다.
'신의 한 수'는 개봉일을 두고 '무리수'란 지적을 많이 받았다. "작품이 흥행하려면 시기를 조절해서 개봉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애정 어린 조언이 줄을 이었다. 하지만 "'신의 한 수'는 '트랜스포머'와 전혀 다른 장르다. 정면대결하고 싶다"며 주먹을 불끈 쥔 제작진들의 자신감은 100% 맞아 떨어졌다.
'트랜스포머4'와 대결한 '신의 한 수'는 마케팅에서도 역시 '신의 한 수'였다. 탄탄한 스토리와 안정적인 연기력을 겸비한 배우들, 즉 톱스타를 톱스타처럼 사용할 수 있는 '웰메이드 국내작'이라면 얼마든지 할리우드 대작 또한 꺾을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유행을 따르는', '배우만 믿는' 한국 영화가 아닌, '작품을 믿는 한국영화'가 대거 탄생하길 기대해 본다. '신의 한 수'같은 웰-메이드 작품이 할리우드 박스오피스를 위협하는 날이 오지 말란 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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