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한림 기자]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하는 '블루웨이브'가 뚜렷해지자 한국과 미국의 주식시장 향방이 완전히 엇갈리고 있다. 공화당 진영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 패배 결과를 수용하고 투자자들이 정치적 불확실성이 끝났다는 점에 환호하며 뉴욕증시가 일제히 급등한 반면 국내 코스피 시장은 매도 사이드카까지 발동하면서 주저앉고 있다.
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코스피는 1.82% 내린 5580.09로 출발해 오전 11시 기준 4.02% 내린 5455.41에 거래되고 있다. 장중 최저가는 5400선마저 무너진 5392.24로 장중 한때 프로그램 매매 효력을 일시 정지하는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하기도 했다.
매도 주체는 외인이다. 같은 시간 외인 투자자들은 코스피 시장에서만 1조3000억원이 넘는 물량을 던지고 있다. 개인과 기관이 동반 매수세 나서며 지수 방어에 힘을 보태고 있으나, 외인의 무차별적인 매도 폭탄을 감당하기 어려운 모양새다.
이날 코스피 급락세는 간밤 뉴욕증시가 보여준 '안도 랠리'와 대조적이다. 4일(현지시간) 뉴욕증시는 3%대 상승 마감한 다우지수를 비롯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나스닥 지수가 각각 1%대 상승 마감하면서 축제 분위기를 연출했다. 선거라는 거대한 불확실성이 걷힌 데다, 민주당의 우세로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를 규제하는 움직임이 감지되면서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이를 비용을 아끼고 내실을 다질 기회로 받아들이면서 주가가 오른 결과다.
반면 메모리 반도체 공급사 중심인 한국 증시의 셈법은 전혀 달랐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시설 투자 속도를 조절하면 이들에게 핵심 부품을 파는 국내 기업들 입장에서는 주문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미국은 비용 절감으로 웃었지만 한국은 수요 둔화 시나리오를 마주하면서 폭락세를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이날 시장 분위기는 코스피가 그간 꾸준히 제기됐던 반도체 업종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는 구조적 한계를 다시 드러냈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다. 국내증시 시가총액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투톱'이 흔들리자 지수 전체가 맥없이 주저앉은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 진영의 패배로 장세가 바뀌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된 반도체 업종은 그야말로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들이고 있다. 같은 시간(한국시간)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전날보다 각각 5%, 7%대까지 출렁이며 지수 하락을 주도 중이다.
더 큰 문제는 미국 중간선거 결과 이후 증시 향방이 특정 업종에만 머무르지 않고 시장 전방위로 확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시장에서는 민주당이 의회를 지켜내면 트럼프 정부가 추진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폐지나 전기차 의무화 폐기 등 리스크가 사라져 관련 종목들의 강한 수혜를 점치면서 2차전지나 친환경 업종 등에서 호재가 예상됐다.
특히 2차전지의 경우 민주당 승리로 미국 정부로부터 받는 보조금 혜택(AMPC)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것이라는 중장기 호재에 따라 반등할 것으로 전망됐는데도, 시장 전체 투심이 차갑게 가라앉으면서 대형 배터리주인 LG에너지솔루션(-1.69%), 포스코퓨처엠(-1.71%), 삼성SDI(-4.22%) 등도 역시 마이너스 장세에 갇힌 상태다.
다만 증권가에서는 신중론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 중간선거 결과에 따른 AI 반도체 투자 규제 우려가 시장에 다소 과도하게 반영됐으며, 급락에 따른 가격 메리트와 업종별 순환매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데이터센터 규제가 AI 투자 사이클의 구조적인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지 않을 수 있다"며 "AI주 변동성은 높겠지만 10월 이후 몇 차례 출현했던 연쇄 급락이 반복될 확률은 낮게 가져가는 것이 타당하다"고 전망했다.
양현경 iM증권 연구원은 "반도체 대형주의 매도 압력이 이어지는 가운데 유가 하락에 따른 비용 부담 완화 기대가 항공·운송 등으로 확산되며 반도체 이외 업종으로 순환매가 나타날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며 "2차전지·태양광은 미국 정책 변화의 수혜 기대가 유지되겠으나 전일 급등한 종목에는 차익실현 매물이 출회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